모아이 석상·마추픽추 유적에서 만난 ‘감각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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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상호(80) 사진작가는 2023년 남미를 다녀왔다.
라 작가가 하나하나 실현해 온 '세계문화유산 사진 여행'의 다섯 페이지 중 마지막 페이지였다.
5월 29일까지 창원 송원갤러리(경남스틸 본사 사옥 5층)에서 열리는 <돌_시간을 기억하다> 는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과 페루 마추픽추 유적을 포착한 사진을 통해 라 작가의 감각과 사유를 마주하는 전시다. 돌_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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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상호 사진작가 <돌_시간을 기억하다>전
앙코르와트부터 이스터섬까지 이어진 사진 여행
관람객에게 ‘인간은 무엇을 남기는가’ 질문 던져
“오래된 문명의 숨결 전달할 수 있다면 충분”

라상호(80) 사진작가는 2023년 남미를 다녀왔다. 77일간에 걸친 여정이었다. 라 작가가 하나하나 실현해 온 '세계문화유산 사진 여행'의 다섯 페이지 중 마지막 페이지였다. 그는 200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2008년 미얀마, 2012년 경북 청도 운문사를 주제로 전시와 사진집을 선보였다. 2019년에는 네팔 히말라야 전시를 열었지만 사진집은 내지 못했다.


숨 쉬는 듯한 모아이 석상과 마추픽추 유적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보다 시간이 남긴 흔적 앞에 오래 머무는 사람에 가깝다. 앙코르의 성벽, 미얀마의 유적, 운문사의 새벽 예불, 히말라야 만년설과 남미 고도 그리고 태평양 한가운데 제일 고독한 섬에 이르기까지 나의 렌즈는 언제나 사라지지 않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향해 있었다." (작가 노트 중)
작품마다 마주하는 것은 돌이다. 그러나 단순한 돌이 아니다. 라 작가는 구도, 빛의 양과 방향, 촬영 각도 등을 달리하며 숨 쉬는 듯한 모아이 석상과 마추픽추 유적을 포착했다. 이 작업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향한다.
라 작가가 선택한 답은 침묵이다. 이는 그의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빛이 스스로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관람객을 '감각의 사유'로 이끈다. 관람객이 전시 공간을 나설 때,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질문이 남기를 바란다.
"사진은 기록이지만, 동시에 사유의 시작이다. 나는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기다린다. 빛이 스스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침묵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이 작업이 과거의 영광을 말하기보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으로 남기를 바란다. '인간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작가 노트 중)


세계문화유산 사진 여행은 '미완의 완성'
라 작가는 19살에 주한 중국대사관 뒤편의 한 서점에서 핸드북을 집어 든 것이 세계문화유산 사진 여행의 시작이었다고 돌아봤다. 일본어로 가득한 책 속에서 마주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와 칠레 이스터섬은 '세계문화유산 사진집 출간'이라는 씨앗을 그의 마음에 심었다.
당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것이 업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마산수출자유지역(현 마산자유무역지역)의 한 업체에 취업하며 마산에 정착한 그는 1년 후 전업 작가로 전향하면서 한국어판 세계문화유산 사진집 출간 계획을 꺼내 들었다.
세계문화유산 사진 여행의 첫 페이지는 캄보디아였다. 라 작가는 1999년 2월 캄보디아 땅을 처음 밟은 것을 시작으로 7년간 앙코르와트를 오가며 촬영해 2006년 사진집 <오래된 미래 - 성벽도시 앙코르>를 냈다. 2008년에는 당시 미얀마 정부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 고대 도시 '므락우'를 담은 <붓다의 나라 미얀마>를 출간하며 두 번째 페이지를 채웠다.
세 번째 페이지는 청도 운문사다. 2010년대 초 약 3년간 운문사 안팎을 담은 사진 500장을 엮어 2014년 <운문세상>으로 펴냈다. 네 번째 페이지는 네팔 히말라야다. 2009년 인연을 맺은 진주 산악인들과 함께 오르내리며 촬영해 2019년 전시를 열었지만 사진집 발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마지막 다섯 번째 페이지는 라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는 사진집 <오래된 미래_신비의 섬 모아이·태양신의 제단 마추픽추>에 '미완의 완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소회를 밝혔다.
"인류 문화유산은 나의 사고를 통해 시간의 숨결이 되었고, 사진여행은 나를 세계 곳곳의 고대 문명 속으로 이끌었습니다. (중략) 사진집들은 단순한 풍경의 기록이 아닙니다. 인간의 역사와 신화, 자연과의 조화 등 내가 본 것, 느낀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인간의 위대함과 덧없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들이 누군가에게 먼 오래된 문명의 살아있는 생명의 숨결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끝으로 라 작가는 "사진집 다섯 권을 만든다는 것이 처음 생각할 때는 별것 아닌 것 같았는데,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며 "한글로 된 세계문화유산 사진집을 내놓겠다는 꿈을 이제야 이뤘다"고 밝혔다.
/류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