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절반 기부하겠다”던 억만장자들 우르르 탈퇴, 왜

성주원 2026. 3. 1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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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츠·버핏 주도 자선 서약, 비판·탈퇴 잇따라
머스크·틸 등 억만장자들 "자선은 홍보" 비판
서명자 수 줄어...2024년 신규 가입 4명 그쳐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억만장자들의 자선 서약 프로젝트인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재산 기부 서약)’가 점차 동력을 잃고 있다. 일부 서명자는 탈퇴했고, 친(親)트럼프 기술 억만장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010년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재산 기부 서약)' 캠페인을 시작한 빌 게이츠(왼쪽부터),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 워런 버핏. 기빙 플레지는 세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동원하자는 취지였다. 이후 30개국에서 세계 최고 부호 자선가 250명 이상이 이 서약에 동참했다. (사진=기빙 플레지)
“자선 기부하겠다” 캠페인…서명자 급감

기빙 플레지는 2010년 워런 버핏이 빌 게이츠,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와 함께 시작한 자선 서약 캠페인이다. ‘자산의 절반 이상을 자선에 기부하겠다’는 도덕적 서약이다. 마이크 블룸버그(전 뉴욕시장), 맥킨지 스콧(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전 부인), 샘 올트먼(오픈AI 최고경영자(CEO)) 등 250여 가족·개인이 서명하며 초부유층의 자선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서명자들을 직접 만날 만큼 미국 사회 전반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5년(2020~2024년) 신규 서명자는 43명에 그쳤다. 2024년에는 4명만 새로 서명하는 데 그쳤다. 출범 첫 5년(2010~2014년)의 113명과 비교하면 현저한 감소다.

비영리 부문 자문사 브릿지스팬의 톰 티어니는 “지금은 거액을 기부해도 칭찬보다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진단했다. 극단적 부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심화된 것이 배경이다.

자발적 탈퇴에 이어 탈퇴 권유까지도

반발은 탈퇴로까지 이어졌다. 2019년에 서명했던 코인베이스 공동 창업자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2024년 중반 기빙 플레지 웹사이트에서 자신의 서약 편지를 삭제하며 탈퇴했다. 기빙 플레지 역사상 전례 없는 자발적 탈퇴였다.

초기 서명자인 래리 엘리슨도 자신의 서약을 “수정하겠다”며 일부 자금을 비영리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영리 프로젝트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가장 직접적인 반대 목소리는 팔란티어 창업자 피터 틸에게서 나왔다. 그는 약 12명의 기빙 플레지 서명자에게 탈퇴를 권유했다고 밝혔다. 대화를 나눈 서명자 중 대부분이 서명을 후회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틸은 기빙 플레지를 “엡스타인과 엮인 가짜 베이비붐 세대 클럽”이라고 직격했다. 심지어 2012년 서명자인 일론 머스크에게도 탈퇴를 권유했으며, 머스크의 돈이 “빌 게이츠가 선택하는 좌파 비영리 단체들에 흘러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재무장관 스콧 베선트도 이 서약을 “선의는 있지만 매우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피터 틸 팔란티어테크놀로지 회장 (사진=로이터)
“자선은 홍보”…시대정신의 변화

비판의 근저에는 자선 자체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다. 머스크는 ‘자신의 사업이 곧 자선’이라는 입장이다. 벤처투자가 마크 안드레센은 “부자가 돈을 기부하면 죄가 씻겨나가는 식의 암묵적 거래가 깨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빙 플레지를 연구한 사회학자 에런 호르바스는 이 서약이 2010년대 초의 ‘타임캡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요즘 억만장자들이 “조용히 돈이나 더 벌면 그만이지, 이 자선 쇼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고 분석했다.

주창자들의 엇갈린 현실

기빙 플레지를 주창한 억만장자 3명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95세의 버핏은 이메일을 통해 “기빙 플레지를 굳게 믿으며 꽤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건강상의 이유로 연례 모임에는 더 이상 참석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게이츠는 미성년자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 연루 스캔들에 따른 평판 훼손과 씨름하고 있다.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는 2021년 빌 게이츠와 이혼 후 2024년 게이츠재단을 떠났다. 그녀는 최근 와이어드 인터뷰에서 기빙 플레지가 “지금까지의 성과보다 훨씬 더 성공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약 이행 여부 불투명”

기빙 플레지는 서명자들의 실제 기부 이행 여부를 추적하지 않는다. 법적 구속력도 없다. 지난해 여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자신의 순자산을 줄일 만큼 빠르게 기부하는 서명자는 극소수였다. 대부분의 기부는 자신의 재단 등 중간 기관을 통하거나 사후에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빙 플레지 운영자 타린 젠슨은 많은 서명자들이 “이미 서약을 이행했거나 꾸준히 노력 중”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앤스로픽 공동 창업자 다리오 아모데이는 지난 1월 “기술 업계를 중심으로 자선이 사기이거나 쓸모없다는 냉소가 퍼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모데이 본인도 아직까지 기빙 플레지에 서명하지 않았다.

사진=기빙 플레지

성주원 (sjw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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