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내 젊음은 어두웠고 / 권기호

송태섭 기자 2026. 3. 1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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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젊음은 어두웠고/ 오직 비 젖고 슬프기 위해/ 가슴은 있었다.

/ 이윽고 낯선 바다에 이르러/ 홀연히 투신하려는 나를/ 수평선은 한사코 만류하였고/ 발치에선 젖은 내 마음인 듯/ 파도가 거세게 울어 주었다.

/ 벅찬 새벽 바다의 갈림길 사연/ 나는 수신자 없는 엽서에/ 커다란 방점 남기며 돌아서는데/ 수평선은 내 가슴/ 햇살 실은 갈매기 하나/ 남몰래 조용히 띄워 주었다.

권기호(1937~, 대구 출생)의 내 젊음은 어두웠고는 방황과 불안이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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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시인·평론가)

그때 내 젊음은 어두웠고/ 오직 비 젖고 슬프기 위해/ 가슴은 있었다./ 무작정 떠난 밤 열차에서/ 김 서린 차창에 기대어/ 나는 상실과 허무를 쓰고 또 지웠다./ 이윽고 낯선 바다에 이르러/ 홀연히 투신하려는 나를/ 수평선은 한사코 만류하였고/ 발치에선 젖은 내 마음인 듯/ 파도가 거세게 울어 주었다./ 벅찬 새벽 바다의 갈림길 사연/ 나는 수신자 없는 엽서에/ 커다란 방점 남기며 돌아서는데/ 수평선은 내 가슴/ 햇살 실은 갈매기 하나/ 남몰래 조용히 띄워 주었다.

『시 희망을 노래하다』(2016, 만인사)

릴케는 젊은 시인 '프란츠 크사버 카프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오직 당신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고독은 회피가 아니라 '내면을 찾아가는 계단'이다. 시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깊이에서 길어 올린다. 고독이야말로 예술가의 숙명이다. 불안한 인간은 근원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다. 고독을 통해서 비로소 존재의 떨림을 만난다. 말하지 못한 것, 사라진 것, 잃어버린 것들이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올 때 시가 된다. 하여,젊은 시인에게 '투신'은 상징이다. 자기 존재 속으로 뛰어든 결단이며 알레고리다. "비 젖고 슬프기 위해" 온 "가슴"으로 세계를 짊진 시지프스다. 시적 영감은 실존의 불안이 언어가 되려는 몸부림이다. "바다"는 그 몸부림의 절규가 처음 들려온 장소다. 그래서 우리는 슬플 때 바다로 가고 외로울 때 시를 쓰나 보다.

권기호(1937~, 대구 출생)의 「내 젊음은 어두웠고」는 방황과 불안이 깔렸다. 아직 세계와 타협하지 않은 미완성의 순수가 보인다. 존재론적으로 말하면 '아직 아닌 존재'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품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젊음이란 '열림의 과잉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에게 바다는 이유 없는 심연이며, 떠 있는 부표이다. 어쩌면 젊은 시인에게 바다는, 언어 속으로, 고독 속으로, 자기 진실과 대면한 장소가 아닐까. 시를 쓰는 일 그 자체가 투신이다. 한 줄의 시는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일과 같다. 밑도 끝도 모르는 운명의 나락이다. 젊음의 질풍노도는 "무작정"이다. 젊다는 것은 아직 자신을 만들 시간이 무한하다는 뜻이다. 하여, 무작정은 '무지(無知)'가 아니라, 아직 규정되지 않은 희망이다. 시적으로 표현하면 완성되지 않은 언어이며, 쉼표로 이뤄진 행간이다. 고독과 자살은 청년기의 표징이다. "바다"는 죽음을 유혹하는 공간인 반면, 그 앞에 서면 개인의 절망은 무한정 작아진다. 바다는 그 자체가 부조리의 거대한 형상이다. 끝이 없고, 이유도 없으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죽음 충동은 '나만의 고통'이라는 극단적 의식에서 시작된다. 광활한 수평선 앞에서 비로소 젊은 권기호는, 삶을 향해 "수신자 없는 엽서"를 보낼 수가 있었다.

김동원(시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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