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편, ‘임기’보다 ‘투명한 교체’가 본질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2026. 3. 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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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참호 구축’ 막으려면 이사회 독립성부터 강화해야  
사외이사 선임 구조 개선·주총 특별결의 등 견제 장치 필요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금융 당국이 금융지주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한다.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적 이후 금융 당국은 현 지배구조를 최고경영자(CEO)의 '참호 구축'으로 규정하며 개선 의지를 밝혔다. 이번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편에는 주주 추천 사외이사를 늘려 기존 CEO의 참호 구축 우려를 최대한 덜어내고, 지주 회장의 연임 여부를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안건은 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 찬성을 얻어야 하는 일반결의 절차로 처리된다. 특별결의 안건으로 분류되면 기준이 달라진다.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출석해야 하고, 이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CEO의 '참호 구축'(entrenchment) 현상은 경영자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나 지배구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소유자와 경영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대리인 문제'다. 참호 구축은 조직 내부 네트워크와 정보의 비대칭을 통해 형성된다. 경영자는 이사회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우호적인 인사를 임명하고, 복잡한 조직 구조나 전략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대체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보상 체계나 의사결정 절차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설계하는 방식도 활용된다.

2025년 12월10월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왼쪽 네 번째)과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왼쪽 다섯 번째), 농협·우리·하나·신한·KB 등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이 간담회를 가졌다. ⓒ연합뉴스

경영 안정성과 권력 견제의 딜레마

참호 구축의 핵심은 경영자가 자신의 교체 가능성을 낮추려는 행동이지만, 그것이 단순히 장기 재임이라는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금융지주 CEO의 장기 재임 문제는 본질적으로 지배구조 설계의 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를 단순히 임기 제한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은 일정한 장점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기업의 자율성과 경영 안정성을 훼손할 가능성도 있다.

근본적인 딜레마는 기업 경영에는 일정한 연속성과 안정성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잦은 경영진 교체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의사결정을 유도하고, 장기적인 투자와 전략적 경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참호 구축이 항상 부정적인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특히 금융 산업은 장기적인 위험관리 능력이 중요한 분야다. 결국 지배구조 설계의 핵심은 경영자의 권력 남용을 억제하면서도 장기적인 경영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균형을 찾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경영자의 권력이 과도하게 강화돼 이사회와 주주의 견제 기능이 약화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 동시에 전략적으로 필요한 경영 안정성도 유지해야 한다. 사실, 민간기업 최고경영자의 임기를 정부가 법이나 제도로 제한하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상법상 이사 선임과 연임 여부는 주주와 이사회의 고유 권한이다. 금융 산업이 일반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 달리 시스템적 위험(Systemic Risk)과 공공성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가진다고 하지만, 금융지주 회장만을 특정해 재임 기간을 제한하는 것은 경영 자율성 침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독립적이고, CEO 선임과 평가 과정이 투명하며, 주주가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 있다면 장기 재임 자체가 반드시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대로 이러한 장치가 존재하지 않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임기 제한만으로는 참호 구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임기가 아니라 경영자가 언제든 평가되고 교체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는 경영진의 권한을 규정하는 틀을 넘어,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신뢰를 결정짓는 핵심 장치다. 지배구조 논쟁은 이사회 구조와 CEO 선임 절차, 승계 계획, 주주 권한 행사, 정보 공개와 같은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문제는 임기 그 자체가 아니라 견제 장치의 붕괴다. 연임이든 단임이든 그 조건과 과정이 투명하고 엄격하게 설계돼 있는지가 본질이다. 바람직한 지배구조는 경영진이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되, 그 과정이 민주적이며 결과에 대해 엄중히 책임지는 구조다. 이해관계자 간 권한과 책임이 투명하게 분배되고 상호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핵심이다.

실질적 통제 가능한 제도가 뒷받침돼야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다. 핵심은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CEO를 평가하고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외이사의 선임 과정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지명위원회'(nomination committee)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사 후보의 경력이나 이해관계, 독립성 여부를 상세히 공시해 주주들이 이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CEO 선임과 평가 절차, 승계 계획(succession planning)은 체계적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가장 강력한 견제 동력은 주주의 압력에서 나온다. 주주의 권한 행사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많을수록 바람직하다. 무엇보다 시장의 자율적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정보 공개를 통해 투명성을 높이는 일은 집중된 경영권을 견제하는 핵심 수단이다. 이사회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을 상세히 공개해 시장과 주주가 이를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금융지주에 적용되는 엄격한 지배구조 원칙을 모든 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전통적인 제조 기업과 금융 기업은 요구되는 전문성과 지배구조의 유연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주 가치 보호와 이사회의 독립성이라는 핵심 가치는 모든 기업에 공통으로 적용돼야 한다. 금융지주 수준의 세밀한 규제가 아니더라도, 일반 기업 역시 지배주주의 독단적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 어떤 권력이든 견제하고 평가할 수 있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정부도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배구조 개편의 초점을 임기 제한에만 맞추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권력 집중의 원인이 오로지 임기 때문은 아니다. 바람직한 기업 지배구조의 본질은 견제와 균형이다. 문제의 핵심은 '무기력한 이사회와 형식적인 주주권'이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높여 실질적인 견제 기능을 확보해야 하고, 주주의 통제 역시 언제나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배구조 선진화란 결국 주주의 의지가 더욱 충실히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연임 여부와 관계없이 최고경영자가 항상 시험대에 오르도록 만드는 지배구조가 바람직하다. 금융지주사들은 대개 3월말 주주총회를 앞두고 있다.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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