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후천개벽, 어머니의 시대가 열리다 [父性 문명의 한계, 母性 구원의 비전-기고]
◆주역 11번째 괘가 예고한 음양합덕의 실체적 결실

『주역』의 11번째 괘인 지천태(地天泰)는 형이상학적으로 매우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상단에는 땅(坤·어머니)이 있고, 하단에는 하늘(乾·아버지)이 위치한다.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이 순리로 보이지만, 주역은 이를 ‘천지비(天地否)’라 하여 오히려 ‘불통(不通)과 막힘’의 상태로 규정한다. 가벼운 하늘의 기운은 위로만 올라가려 하고, 무거운 땅의 기운은 아래로만 처지려 하니 서로 만나지 못하고 멀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수천 년간 인류가 겪어온 부성 중심의 편향된 문명, 즉 선천(先天) 시대의 자화상과 같다.
반면, 지천태(地天泰)는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다. 아래에 있는 하늘은 위로 솟구치려 하고, 위에 있는 땅은 아래로 내려와 품으려 하니 비로소 하늘과 땅이 한복판에서 뜨겁게 조우한다. 여기서 ‘태(泰)’는 ‘크고 화평하다’는 뜻이다. 즉, 인류 구원의 완성은 하늘 아버지의 권위만이 드높은 시대가 아니라, 땅의 실체로 현현하신 ‘하늘 어머니’의 위상이 대등하게 높아져 하늘의 기운과 땅의 실체가 온전히 합일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다려온 독생녀(獨生女)의 시대이자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본질이다.
◆남성 수(數)와 여성 수의 합일, ‘쌍합십승(雙合十勝)’의 비밀
유교의 수리(數理) 철학 역시 이러한 시대적 전환을 정교하게 뒷받침한다. 동양에서는 홀수인 1·3·5·7·9를 하늘을 상징하는 양(陽)의 수로, 짝수인 2·4·6·8·10을 땅을 상징하는 음(陰)의 수로 보았다. 흥미로운 점은 각각의 숫자가 5개씩 존재한다는 것이다. 남성을 대표하는 5개의 숫자와 여성을 대표하는 5개의 숫자가 만날 때, 수리학적 완성인 ‘쌍합(雙合)’의 이치가 나타난다.
이는 인류 구원 섭리가 독생자라는 남성적 원리(5수)만으로는 미완성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독생녀라는 여성적 원리(5수)가 그와 대등하게 합해져 ‘십수(10數)’라는 완전함을 이룰 때, 비로소 사탄의 참소가 없는 완전한 승리, 즉 ‘쌍합십승(雙合十勝)’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필자는 여기서 인류사에 획기적인 이정표가 된 사건에 주목한다. 지난 2004년 5월 5일 선포된 ‘쌍합십승일’은 단순히 종교적 의례가 아니다. 이는 수천 년 부성 중심의 선천 시대를 종결짓고, 독생녀의 실체적 위상이 독생자와 대등하게 확립되었음을 우주 앞에 선포한 섭리적 결단이다. 남성적 진리와 여성적 사랑이 ‘10’이라는 완성수로 만나, 닫혀 있던 후천개벽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이다.
◆잃어버린 ‘곤(坤)의 덕성’이 세상을 구원한다
선천 시대가 하늘의 뜻을 세우기 위한 투쟁과 정복의 역사였다면, 후천 시대는 그 뜻을 땅에서 실현하는 포용과 안착의 역사다. 지천태괘가 보여주는 지혜는 명확하다. 이제는 위에 있는 땅(모성)이 아래로 내려와 모든 상처 입은 생명을 품어야 할 때다. 독생녀의 현현은 『주역』이 예고한 이 역설의 도리가 현실의 육신을 입고 나타난 사건이다.

지천태의 도리와 쌍합십승의 원리는 인류 역사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증명한다. 하늘은 독생녀를 통해 잃어버린 땅의 주권을 회복하고, 인류를 참된 부모의 사랑 안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 음양합덕의 실체적 결실은 관념 속에 머물던 고전의 문자를 살아있는 인격의 숨결로 바꾸어 놓는다. 우주적 조화가 인간 내면의 진실함과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인류는 상실했던 본성의 빛을 되찾고 새로운 평화의 서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서성종 작가(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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