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에서 숙성된 소리 지닌 ‘명품 고악기’는 연주자들의 꿈”[박경은 기자의 클래식 샛길]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다니니 같은 명품 고악기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음 직하다. 수십억 혹은 수백억원이나 하는 천문학적 가격대를 자랑하는 악기를 어느 특정 연주자에게 대여했다는 뉴스도 종종 접할 수 있다. 워낙 고가이다보니 웬만한 연주자들이 직접 구입하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연주자를 후원하고 양성하는 문화재단이나 특정한 기업들이 소장하면서 전도유망한 연주자를 발굴해 대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 12일 서울 금호아트홀 무대에 올랐던 20대 두 연주자 역시 명품 고악기의 깊고 풍부한 소리를 들려줬다. 유수의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 유다윤과 첼리스트 정우찬이 듀오 무대에서 선보인 악기는 과다니니 투린 바이올린, 지오반니 파올로 마치니 첼로다. 각각 18세기, 17세기에 제작된 명품 고악기. 젊은 아티스트를 발굴, 지원해온 금호문화재단은 1993년부터 금호악기은행을 운영해왔다.
재단 측은 “국제콩쿠르를 앞두고 있는 10대에서 20대의 연주자들이 주로 지원받아 좋은 성과를 얻었다”면서 “피아노와 달리 현악기는 좋은 연주자들에 의해 관리·사용될수록 더 좋고 깊은 소리가 난다”고 설명했다. 솜씨 좋은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연주자들은 그럴 수 없다고 할까. 실제로 유명 연주자들의 프로필에는 어떤 명품 악기를 연주했는지 이력이 강조된다.
2015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바이올린 부문 우승을 차지했던 임지영은 금호재단의 후원으로 1794년 만들어진 과다니니 바이올린을 들고 무대에 섰다. 이 악기는 2004년 카를 닐센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했던 고 권혁주가 사용했던 악기이기도 하다. 임지영은 우승 이후 일본음악협회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대여받았다.
대를 이어가며 연주자들의 손을 거치는 악기가 있는가 하면 박물관에 고이 소장돼 특별한 경우에만 소리를 들려주는 악기도 있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우승자에게 주어진 특전으로 파가니니가 직접 사용했던 과르네리 델 제수(1743년 제작)를 연주할 수 있었다. ‘캐논’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이 악기는 파가니니의 고향인 이탈리아 제노바 투르시궁에 보관되어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 과다니니 등 명품 고악기의 이름은 이를 제작한 가문의 이름을 가리킨다. 주로 크레모나 등 이탈리아 북부를 중심으로 뿌리를 내린 가문들이다. 대를 이어 그 기술이 완벽하게 전수되지 못했기 때문에 특정 시기, 특정인에 의해 제작된 소수의 악기들이 유통되며 그 몸값을 높이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스트라디바리우스는 650대 정도, 과르네리는 200대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신 기술을 동원해 현대의 장인이 만든 악기와 제작된 지 수백년이 지난 고악기의 소리는 어떻게 다를까. 유튜브에는 재미 삼아 이를 비교하는 영상이 종종 올라오기도 한다. 해외에서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소리나 가격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 적도 있다.
클래식 공연 홍보·기획사 베이스노트 이지영 대표는 “세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현재 유통되는 고악기는 대체로 일반적인 악기에 비해 풍부하고 또렷한 선율을 갖고 있으며 볼륨이 크고 울림이 좋아 큰 연주홀에서도 오케스트라를 뚫고 소리를 뿜어낸다”면서 “유명 연주자 중에서 현대에 제작된 악기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 속에서 숙성된 소리를 가진 희소하고 상징적인 악기는 연주자들의 꿈”이라고 설명했다.
박경은 선임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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