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두고 망신 주고 해고하고… 세브란스의 ‘민주노조 부수기’ 10년

신다은 기자 2026. 3. 16.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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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2016년부터 민주노총 가입 청소 노동자들에게 집요한 괴롭힘 이어와
1·2심 ‘부당노동행위’ 원·하청 유죄… 그래도 ‘전과’ 업체와 용역 재계약
2016년 7월13일 민주노총 산하 청소노조 출범식을 앞두고 사용자들이 한 공간에 청소노동자들을 모으고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그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시곗바늘이 오후 4시를 가리켰다. 송영이씨는 마음이 급했다. 곧 열릴 노동조합 출범식에 가야 한다. 세브란스병원에 최초로 민주노총 노조가 생겼음을 알리는 자리다. 하지만 하청업체 관리자들은 송씨와 동료들을 도통 놔줄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이상했다. 평소 ‘쉬지 말라’며 들들 볶던 관리자들이 그날은 퇴근 30분 전부터 송씨를 비롯한 청소노동자들을 강당에 모으고 문을 잠갔다. 이수진 한국노총 연세의료원 노조위원장(현역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마이크를 잡더니 ‘노조는 하나만 있는 게 좋다’고 일장연설을 했다. 그 모습을 원청 세브란스병원과 하청업체 태가비엠 관계자들이 지켜봤다.

‘4시만 돼봐라, 나는 나갈 거다.’ 송씨는 속으로 별렀다. 그때 밖에서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여사님들 얼른 나오세요! 거기 계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을 데리러 온 민주노총 활동가들과 연세대 학생들이었다. 송씨가 벌떡 일어났다. 쏟아지는 시선을 뒤로하고 출입문으로 내달렸다.

“계속 갇혀 있을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용기 내서 잠긴 문을 직접 따고 나왔습니다. 태가비엠과 병원, 한국노총이 짜고 벌인 일이었습니다. 결국 저와 동료들은 민주노총 발대식에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송씨 사실확인서 중)

달려나가는 송씨를 따라 100여 명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당황한 관리자들이 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날은 2016년 7월13일, 병원과 태가비엠이 그토록 막고자 했던 민주노총 노조가 설립된 날이다.

당시 병원과 태가비엠이 몰래 작성한 ‘민노 발대식 저지 태가비엠 대책 조사 보고’엔 이렇게 적혀 있다. “연세의료원 직원 노조(위원장 이수진) 중재로 7.12(화) 결정된 가칭 ‘비상대책위원회’ 1차 총회를 2016.7.13(수) 16시로 결정하여 (…) 민노 발대식으로(부터) 분리하도록 함.” 1·2심 재판부가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한 병원과 태가비엠의 “노조 설립 저지” 사건이다.

병원 사무국의 뿌리 깊은 ‘노조 혐오’

2016년 6월 병원 내 민주노총 노조 설립 소식을 접한 세브란스병원이 이를 ‘위기’로 규정하고 노조 가입 현황과 대응 전략 등을 소상히 정리한 파워포인트(PPT) 파일 갈무리.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2026년 3월10일로 하청노조의 교섭할 권리를 보장하는 개정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일명 ‘노란봉투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원청 사용자가 순순히 교섭에 임하는 대신 하청 사용자를 시켜 하청노조를 탄압하리라는 우려도 크다. 세브란스병원과 태가비엠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2024년 2월 1심 재판부는 두 회사의 노조 파괴 주동자 8명 모두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2026년 1월29일 2심 재판부도 같은 형을 선고했다.

한겨레21은 원청 세브란스병원과 하청 태가비엠이 주고받은 전자우편과 파워포인트(PPT) 파일, 보고자료 수천 건을 입수했다. “과장님민노탈퇴2명입니다” “노조 설립 동향 조치 보고” 등 하청노조 파괴를 목표로 원·하청이 긴밀하게 소통한 내용이 담겼다. 병원 사무국은 각종 노조 파괴 전략을 수립하고 수사 대비용 문답지를 만드는 등 노조 파괴에 깊이 골몰했다. 관리자의 대응이 늦으면 “민노 저지가 본분임을 잊었다”며 질책도 했다.

그 기저에 깔린 건 원색적 노조 혐오였다. “골든타임에 민노 침투를 방지”“단체행동 등으로 인한 세브란스의 청정 이미지 훼손”을 막으려 했다. 정작 노조 설립의 원인이 된 “타 병원 대비 고된 노동강도와 저임금”을 바로잡는 데는 무관심했다. 그저 하청노조를 없애 ‘위기’를 잠재우려는 원·하청의 집착이 자료 곳곳에 묻어났다.

고용노동부가 병원 사무국 관계자 컴퓨터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이메일 제목 리스트.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노조는 원래 차근차근 설립하거든요. 그런데 순식간에 100명이 가입하겠다니까 놀랐죠. 현장에 민주노조를 향한 갈망이 엄청나구나 싶었어요.” 최다혜 전 공공운수노조 조직차장이 말했다.

2016년 서울 소재 대학병원 곳곳에 노조 설립 바람이 불었다. 하루 10시간 격무에도 최저임금에 불과한 돈을 받는 현실에 분노해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려대 안암병원에 이어 세브란스병원에도 민주노총 산하 청소노조가 생겼다. 병원에 먼저 들어와 있던 한국노총 노조는 저임금과 과로 등 노동자의 불만을 해소해주지 못한 상태였다.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 ㅇ씨 등이 민주노총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노조 설립을 준비했다.

2016년 7월1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앞 인도에서 조합원들이 노조 출범식을 기다리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당시 병원은 민주노총 노조 설립을 극도로 경계했다. 하청업체 선정 때부터 태가비엠에민주노총 노조 설립 가능성을 물어볼정도였다. “(태가비엠이) 민주노총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고 (…) 그런데 계약 후 두 달도 되지 않아서 민주노총이 생겼다고 해서 당황했습니다.”(병원 권아무개 전 사무국장 진술)

병원 최아무개 전 사무국 파트장은 태가비엠 경영진을 불러 “대응 전략도 없냐”고 질타했다. “일전에 연세대학교 청소근로자들 사이에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결성되어 활동하면서 (…) 길을 막는 등 소란을 피웠던 경험이 있어서 저희 병원도 그런 일들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최 전 파트장 진술)

허위로 탈퇴시키고, 노조원 가두고

이때부터 병원과 태가비엠은 본격적인 노조 파괴 전략을 펼친다. 먼저 태가비엠 현장소장이 같은 학군단 출신임을 내세워 민주노총 노조 설립을 준비하던 ㅇ씨를 회유했다. “세브란스병원은 민주노총은 절대 안 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자체 노조를 만드세요.” 그는 ㅇ씨가 말을 듣지 않자 벌컥 화냈다. “너 나한테 쫄딱 맞아볼래?”

같은 학군단 출신 권아무개 병원 사무국장도 ㅇ씨를 만나 “너 (남은 조합원) 다 데리고 나가라”고 윽박질렀다. 곧이어 ㅇ씨는 퇴사한다. 최 전 파트장은 기다렸다는 듯 총무팀에 ‘○○○(ㅇ씨 이름) 사직일만 먼저 참고하세요’라는 전자우편을 보낸다. 병원과 태가비엠이 ㅇ씨를 회유·협박한 정황이다.

2021년 12월3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세브란스분회 조합원들이 병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병원장실 앞에서 연좌 농성을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곧이어 민주노총 사무실에 100여 명의 집단 탈퇴서가 도착했다. 병원 사무팀 팩스를 이용해 보낸, 탈퇴 사유도 없이 서명만 나열한 명단이었다. 정작 명단에 오른 민주노총 노조 가입자들은 탈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알고 보니 병원과 태가비엠의 회유에 넘어간 청소노동자 몇몇이 마구잡이로 동료들 서명을 모은 거였다.

“갑자기 그 사람들이 ‘나만 믿고 서명하라'고 해서 멋모르고 따랐죠. 나중에 병원 쪽을 따로 만났다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이 사람들도 휘둘리고 있구나’ 싶었어요.” 당시를 기억하는 서아무개 전 조합원이 말했다.

2016년 7월13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민주노총 산하 청소노조(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세브란스병원분회)가 설립되자 보안업체 직원들이 노조 출범식 개최를 방해할 목적으로 강당 문을 막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노조 출범식을 방해한 것도 병원과 태가비엠의 소행이었다. 한국노총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일부러 같은 시각에 비대위 총회를 열었다. 문건을 보면 최 전 파트장이 출범식 사흘 전부터 “7월11일 이수진 위원장 주도 관리자급 미팅” “7월13일 이수진 위원장 교육 관련 민노 측 방해작업” 등 당시 한국노총 연세의료원 노조위원장이던 이수진 의원과 긴밀히 소통한 내용이 적혀 있다.(‘세브란스병원 노조 관련 상황정리’)

당시 현장에 있던 조합원들은 “이수진 위원장님이 주로 노동조합은 하나로 가야 한다는 뜻이 담긴 이야기를 하셨다” “이수진 위원장은 세브란스병원에서 민주노총 가입하는 것은 안 된다는 듯이 이야기했고, 민주노총에 가입한 저는 철저히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1·2심 재판부는 그날 회의가 노조 출범식을 방해할 목적으로 열렸다고 판단했다.

2016년 7월13일 노조 출범식이 열리던 시점에 태가비엠 관리자들의 요구로 한국노총 비상대책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한 한 조합원이 당시 상황을 적어서 법원에 제출한 자료 갈무리.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복수노조가 설립되던 시점에, 사용자가 주도한 회의에서 ‘노조는 하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면 부당노동행위 가담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수진 의원은 “(당시) 간담회 일시, 개최를 담당한 실무진, 참여자 소속을 알지 못했다”고 법원 서면진술서를 통해 답했다. 그는 최근 한겨레21의 질의에도 “행사 며칠 전 당시 환경노조 위원장의 강의 요청을 받고 강의한 것일 뿐”이라며 “행사 배경을 정확히 알 순 없었고, 요청에 따라 노조의 필요성과 단결의 중요함에 대해 일반적 내용의 강의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민주노총에 있어서 재계약 어렵겠다”

“태가비엠이 그렇게 괴롭히는데도 끝까지 탈퇴 안 했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내보내더군요. 대표가 제게 ‘죄송한데 민주노총에 있어서 재계약이 어렵겠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예, 부자 되세요’ 하고 나왔죠.”

송영이씨의 정년퇴직 시기는 원래 2018년 4월이었다. 그러나 1년 빠른 2017년 4월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태가비엠은 송씨의 계약 해지 전까지 사소한 일로 송씨를 계속 질책했다. 수술실에서만 일했던 송씨를 민주노조 가입 이후 처음으로 일반 병동에 배치하기도 했다.

“시말서를 4장씩 썼죠. 관리자가 바닥을 물끄러미 보다가 ‘여기 더럽네요’ 하는 식이었어요. 왁스 청소를 매주 하는 수술실과 1년에 한두 번 하는 병동은 상태가 같을 수 없거든요. 다 알면서 그러는 거예요. 나중엔 ‘시말서 그냥 가져와, 내가 백 장 써줄게. 원하는 게 그거 아니야’라고 했어요.”

태가비엠 현장 관리자 주아무개씨 수첩에 적힌 민주노총 조합원 인신공격 전략. 민주노총 조합원을 겨냥해 각종 표적 징계와 망신주기식 전략을 펼쳤다고 한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제공

전 태가비엠 현장감독 주아무개씨의 수첩에도 송씨가 등장한다. 수첩에는 ‘송영이 바보 만들기 전략’이라고 적혀 있었다. 평소 주 감독의 수첩엔 ‘도○○ 탈퇴 유도 전략’ ‘오후조 병동 8명 탈퇴 유도 전략’ 등 조합원을 괴롭히는 수법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주로 민주노총 노조 조합원에게 고객 민원을 몰아주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 주는 식이었다.

“샤워실 청소하고 나면 벽에 물기 남은 걸 꼭 사진 찍어뒀다가 사람들 앞에서 망신 주는 거예요. 시말서도 몇 장을 썼는지….” 2018년까지 민주노총 노조 간부를 지낸 서씨가 말했다.

2022년 6월1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로비에서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청소 노동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녹색당 제공

특히 태가비엠은 고정 구역 없이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유동근무’를 강력한 수단으로 삼아 민주노총 노조 탈퇴를 압박했다. 유동근무를 하면 많게는 하루에 대여섯 번씩 청소 구역이 바뀌고 신입처럼 텃세도 겪는다. “그땐 ‘구역 빼버린다’는 말이 제일 큰 무기였어요. 다들 그게 힘들어서 (노조를) 많이 나갔죠.” 서씨가 말했다.

병원은 항복받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노조 탈퇴를 결심한 사람에게 조건을 달았다. ‘사무부장 민노 탈퇴 및 한노 가입조건 하 구역 유지 언급’ (‘구○○ 미화원 한노 전환배경 및 조치보고’ 중). 즉, 자기 청소 구역을 지키고 싶으면 민주노총 탈퇴만으론 안 되고 한국노총 가입까지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노총 가입시키려 현금 살포

사용자가 노조 파괴를 할 때 민주노총 노조 탈퇴와 한국노총 노조 가입은 통상 한 묶음이다. 특정 노조와의 교섭을 합법적으로 피하려면 규모가 더 큰 다른 노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한 사업장에 노조가 둘 이상일 때 사업주가 1개 대표 노조와만 교섭하면 법적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본다(‘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통상 수가 더 많은 쪽이 대표 노조가 되므로, 민주노총 노조를 상대하기 싫은 사용자가 일부러 어용노조 덩치를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현금 살포도 마다하지 않았다. 병원과 태가비엠은 손아무개 당시 한국노총 노조위원장에게 복리후생비 600만원을, 한국노총 조합원들에겐 후생기금 98만8천원을 따로 챙겨줬다. 수술실 근무자들이 한국노총 노조에 가입하면 위해(위험)수당도 1만5천원씩 올려줬다. 반면 민주노총 노조 조합원은 대놓고 배제했다.

“당시 김○○ 반장이 ‘민노를 탈퇴하고 한노를 가입해야 중환자실 위해수당을 2만5천원에서 4만원으로 올려줄 수 있다’ ‘민노 탈퇴하지 않으면 중환자실에서 뺀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적은 위해수당 4만원을 제가 계약서에 따라 적었더니 김○○ 반장이 ‘(당신은) 민노를 탈퇴하지 않는다’면서 제가 쓴 부분을 화이트로 지웠습니다.”(조합원 진술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세브란스병원분회 관계자들과 노동자연대 연세대모임 소속 대학생들이 15일 낮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용역업체 태가비엠 퇴출을 호소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신규 채용 땐 한국노총 위원장을 몰래 면접관으로 불러 입사자를 자동 가입시키기도 했다. 엄연한 불법이었지만 증거가 없는 한 어용노조 뒤에 숨은 사용자를 찾아낼 방도가 없었다. 문제가 생기면 ‘노조끼리 싸움’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사용자도 그걸 잘 알았다. “병원 입장에서는 ‘노노갈등’이라고 규정해버리면 됨. 병원(회사 포함)의 지시나 개입이 없다고 입장을 취하면 됨.”(2016년 7월 태가비엠 ‘비대위 처우개선 진행 보고’) “최다혜 한노 집행부 방문 소란은 (…) 실시간 전달하여 노노대응 유도 바랍니다.”(2016년 9월6일치 ‘업무일지’)

이런 일을 거치며 민주노조는 점차 힘을 잃었다. 100명 넘던 조합원이 50여 명, 20여 명으로 줄어갔다. “조합원들이 끈끈한 의리가 있어서 악조건 속에서도 잘 버텨줬거든요. 그런데 사 쪽이 우리(민주노총)랑은 계속 교섭을 지연하면서 한국노총하고만 계속 교섭하고 임금을 올린 것처럼 포장했죠. 거기다 관리자들까지 나서서 한명 한명 깨니 조금씩 먹힌 거예요.” 이류한승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이 말했다.

수사·재판 지연될 동안 피해 조합원 모두 떠나

노조는 이들 문건 중 일부를 2017년에 이미 확보했다. 특히 “민주노총은 안 된다”는 태가비엠 현장소장의 육성 녹취파일과 ‘노노갈등 유도 바란다’는 업무일지는 원·하청의 부당노동행위를 사실상 시인하는 문건이었다. 그러나 노동위원회와 고용노동부, 검찰 누구도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보지 않았다. ‘그럴 의도가 아니다’라는 사 쪽 주장을 수용해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고의성까지 범죄 요건으로 보는 부당노동행위의 특성을 십분 악용한 것이다.

“부당노동행위는 주장하는 쪽(노조)이 다 입증해야 하잖아요. 회사는 노조 파괴를 아주 은밀하게 하고 설사 들키더라도 ‘그런 의도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피해가요. 그걸 내부 정보에 접근도 못하는 노동조합이 계속 격파해야 하는 현실이 가혹했죠.” 최다혜 전 조직차장이 말했다.

노조가 끈질기게 증거를 모으자 노동부는 2018년 재수사에 나섰다.뒤늦게 병원을 압수수색했더니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세세하고 치밀한 병원과 태가비엠의 노조 파괴 전략 문건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 후로도 기소까지 3년이 더 걸렸다. 사건이 재판에 넘어간 것은 2021년 3월로, 노조 파괴 5년이 가까운 시점이었다.

“2019년에만 기소했어도 상황이 완전히 달랐겠죠. 그때도 조합원이 40명은 있었어요. 병원의 노조 탄압을 고스란히 겪은 분들이니 병원도 훨씬 곤란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시기를 놓치니 다들 퇴직하고 떠났죠. 저는 수사 자료 보고 화가 나서 잠도 안 왔어요. 이렇게 명백한 자료를 가지고 3년을 끌었다는 게요.” 이류한승 부장이 말했다.

실제로 수사자료를 보면 ‘하청 일에 관여 않는다’던 세브란스병원의 대외적 입장은 허울뿐임을 알 수 있다. 병원의 최 전 파트장은 태가비엠 보고자료를 검토하며 글씨 색깔까지 바꾸라고 요구했다. 권 전 사무국장은 매주 자신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태가비엠의 민주노총 대응 현황을 보고받았다.

태가비엠이 병원 보고 없이 인사발령을 내면 질책도 했다. 2017년 5월 태가비엠이 작성한 ‘상황공유’ 보고서를 보면 “이슈: (총괄감독을) 오후조 감독으로 발령하면서 병원(사무팀) 공유하지 않았다(?)”라고 적혀 있다. 당시 총괄감독이 “민노 조합원이 눈치챌 정도”로 티나게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가 경질됐는데, 태가비엠이 이를 미리 병원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태가비엠 쪽은 “향후 빠른 시간 내에 사무팀장, 국장님께 정보 공유되도록 하겠음”이라고 썼다.

현장의 모든 것을 샅샅이 통제하던 병원 사무국은 막상 수사가 시작되자 하급자와 태가비엠에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권 전 사무국장과 김아무개 전 사무팀장은 “태가비엠과 최○○의 개인 생각 같다” “(최○○이) 하지 말라는데도 말을 듣지 않았다”며 최 전 파트장 탓으로 몰았다.

최 전 파트장도 “실무팀이 좀 오버해서 윗분들께 보낸 것” “현장소장과 감독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것 같다”며 부하 직원과 태가비엠에 책임을 넘겼다. 반대로 태가비엠 이아무개 대표 등은 “최 파트장의 요구로 탈퇴 현황을 보고했다”며 민주노총 노조 파괴의 출발점이 병원의 욕망이었다고 진술했다.

병원 사무국, 태가비엠 탓하기에 급급

아슬아슬하던 원·하청 관계는 유죄 판결을 받은 뒤에 도로 원점이 됐다. 세브란스병원이 2025년 12월 공범 태가비엠에 재차 청소용역을 맡긴 것이다. “입찰자들 중 태가비엠 점수가 가장 높다”는 이유였다. 노조 파괴 전과는 입찰 기준에 반영하지도 않았다.

유죄 판결조차 원·하청 밀월을 끊지 못한 이유가 뭘까. 노조를 대리한 정병민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처럼 원청이 하청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청의 부당노동행위 전과도 결함보단 훈장으로 여겨지겠죠. 민주노총을 싫어하고 대신 나서줄 하청업체를 찾는 원청 니즈(수요)에 부합하니까요. 그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한 이런 관계는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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