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만들 ‘복선’에 대하여 [편집국장의 편지]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배우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개념이 참 흥미로웠다.
작품 속 '나'가 말하는 1인칭 시점, 작품 바깥의 화자가 객관적 사실을 주로 이야기하는 3인칭 관찰자 시점과 달리, 전지적 작가 시점은 "신과 같이" 모든 등장인물의 마음속과 그들의 과거, 미래를 다 꿰뚫는다는 설명을 오래 곱씹었다.
'복선'이라는, 작가가 배치하는 이야기 속 예언 장치까지 더해 생각하면, 글 쓰는 이는 그가 창조해낸 세계 속에서 여지없는 신(神)이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배우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개념이 참 흥미로웠다. 작품 속 ‘나’가 말하는 1인칭 시점, 작품 바깥의 화자가 객관적 사실을 주로 이야기하는 3인칭 관찰자 시점과 달리, 전지적 작가 시점은 “신과 같이” 모든 등장인물의 마음속과 그들의 과거, 미래를 다 꿰뚫는다는 설명을 오래 곱씹었다. ‘복선’이라는, 작가가 배치하는 이야기 속 예언 장치까지 더해 생각하면, 글 쓰는 이는 그가 창조해낸 세계 속에서 여지없는 신(神)이었다. 그 모든 걸 더 위에서 관조하는 ‘독자’는 그보다 더 높은 신이고.
소설뿐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일부 적용이 가능하다. 미래의 독자는 과거에 쓰인 글, 특히 시사(時事)를 다룬 옛 기사를 읽을 때, 지나간 현실 세계에 대해 “신과 같은” 위치에 종종 설 수 있다. 그리고 글쓴이 당사자도 모른 채 배치한 복선을 뒤늦게 발견한다. ‘아, 이때 이미 강력한 징조가 있었구나’ 하고.
이번 호, 6년 전 시작하고 3년 전 해제된 코로나19 팬데믹의 후유증을 다룬 기사가 여럿 실렸다. 엊그제 같건만 벌써 코로나19 발생 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만치 시간이 흘렀다. 과거의 세세한 시사를 떠올리는 데 〈시사IN〉 과월호 보기(www.sisain.co.kr/cover/coverList.html)만 한 효율적 방법이 없다. 1년에 50권 발간되는 각 호수의 커버스토리와 주요 기사 제목만 훑어봐도 그때는 몰랐던 미래의 ‘복선’이 발견된다.
2021년 설 합병호(제700·701호) 커버스토리는 ‘1년의 교육 공백 100년의 빚’이었다. 텅 빈 학교 운동장을 홀로 걸어가는 어린이가 표지 사진을 장식했다. 5년여 지난 이번 주 커버스토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2020년 11월 첫 주에 제작한 제687호 커버는 ‘트럼프 끝나지 않았다’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때였다. 하지만 기사에서 예언한 대로 트럼프 시대는 정말 끝나지 않았고, 지금 온 세계가 그의 광기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 바로 전 주 제작한 제686호 표지 제목은 ‘백신을 흔드는 사람들’이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접종이 시작되기 3개월 전이었다. 매년 늦가을 시행되던 독감백신 접종을 두고 유독 음모론이 들끓었다. 정치권과 언론이 한몫했다. 그 현상은 5년 반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대로 반복되어, 이번 호에서도 관련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제686호에, 쿠팡 산재 사망 노동자 고 장덕준씨의 생전 운동화 사진도 실려 있다. 아직 대중 앞에 얼굴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어머니 박미숙씨는 기사 속에서 “청년들을 갈아 넣는 이런 노동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덕준이 동생들도 훗날 그런 곳에서 일할지도 몰라요. 그걸 막아야지요”라고 말했다. 5년 반이 지나는 사이 정말 제2, 제3의 장덕준이 발생했다. 쿠팡은 그때보다 훨씬 더 크고 힘센 기업이 되었다.

이번 호 기사 중 어떤 문장들도 수년 뒤 되돌아보았을 때, 그때 겪고 있는 우리 사회 고통과 절망의 ‘복선’으로 발견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변수가 있다. 장덕준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그때 덧붙인 문장을 다시 보자.
“그걸 막아야지요.”
거스르기 힘든 물결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 이것 또한 더 나은 결말을 만드는 ‘복선’이 될 수 있다. 현실의 ‘해피 엔딩’은 신이 아닌 우리가 만든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