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총 수장된 수학교육학자 “비주류 출신의 창조적 혁신 보여 줄 것”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6. 3. 16. 06:1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권오남 신임 한국과총 회장
과총 최연소·두번째 여성 수장
“낡고 견고한 장벽 무너트리고
다름이 힘 되는 생태계 만들것”
[이승환 기자]
“저는 비주류 출신입니다. 수학교육을 연구하는 수학자이고, 또 여성이지요. 그런 제가 500만 과학기술인을 대표하는 과총의 수장이 됐습니다. 우리 과학기술계가 변화와 혁신을 갈망하고 있다는 강력한 방증 아닐까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의 60년 역사에 새로운 물길이 열렸다. 지난 9일 취임식을 하고 제22대 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한 권오남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65)가 그 주인공이다. 과총 사상 최초의 현직 교수 출신이자 최연소이며 역대 두 번째 여성 수장이다.

권 신임 회장은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현직 교수로서 지금도 강단에 서고 연구실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연구 현장의 온도와 청년 과학자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가깝고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다”며 “낡은 관행과 중심부의 견고한 벽을 허물고 변방의 작은 목소리까지 하나로 엮어내는 ‘공명(共鳴)’의 리더십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제 다양성은 시혜가 아니라 대한민국 과학계가 한 단계 스케일업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필수 생존 전략”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권 회장은 13년 전 한국수학교육학회 대표로 선출직 이사로 선출되면서 과총의 문턱을 처음 넘었다. 당시 이사회 내에 몇 안 되는 젊은 여성이었던 그는 원로 중심의 전통적 네트워크에서 이사로 활동하며 현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당시만 해도 여성 이사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이번 제22대 회장단에는 임원 88명 중 여성 비율을 25%까지 늘렸다”며 “과거 중앙과 남성 중심이었던 과총에 지역과 청년, 여성 인재를 적극 등용해 현장의 역동성을 불어넣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설명했다.

권 회장은 과총의 새로운 비전을 화학의 ‘벤젠고리’에 비유했다. 벤젠의 육각형 고리에서 단일결합과 이중결합이 서로 경쟁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다름이 함께할 때 가장 견고한 구조가 되듯, 604개에 달하는 과총 회원 단체들이 규모나 학문 분야에 상관없이 서로 융합하며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권오남 신임 과총 회장이 9일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그가 과총 수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지게 된 계기는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2023년 열린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 당시 수많은 단체장이 모여 찍은 기념사진 속에 여성 리더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이 사진을 본 어린 여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과학기술계는 여성이 최고 리더로 성장할 수 없는 곳’이라 지레 짐작할까 봐 마음이 무거웠다”며 “대중에게 주는 메시지를 바꾸기 위해 직접 리더로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털어놓았다. 권 회장은 “사실 나는 연구실에 앉아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내향형(I)’ 인간”이라며 “하지만 후배들의 롤모델이 되고 과학계의 낡은 생태계를 바꿔야 겠다는 생각에 ‘사회적 외향인’이 됐다”며 웃었다.

글로벌 무대에서 권 회장은 굵직한 발자취를 남겨왔다. 그는 작년부터 백인 남성 중심의 주류 학계를 뚫고 아시아 여성 최초로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PME)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권 회장은 몸소 부딪히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과총 차원의 ‘글로벌 리더십 지원 시스템’ 구축을 약속했다. 그는 “미국의 선진 대학들이 자교 교수의 국제 학회 임원 출마를 조직적으로 돕는 것처럼,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이 단순한 국제학회 참가자를 넘어 글로벌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리더로 성장하도록 실질적인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대중과의 과학 소통 패러다임도 크게 바뀔 전망이다. 가짜뉴스와 비과학적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과총이 ‘진실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권 회장은 “지난해 대형 산불 당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정보가 빠르게 퍼졌을 때, 전문가 집단이 신속하게 균형 잡힌 팩트를 제공했다면 국민 불안이 크게 줄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자들이 정치적 오해를 우려해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학술 활동 평가 시 대중 소통 기여도를 가점으로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은 과총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에 대해 권 회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과학 정책 생크탱크’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는 “1966년 과총 창립 당시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종합연구기관 하나 없었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처음 문을 열었다”며 “6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5.13%로 세계 2위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다음 60년의 질문은 예산을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환 기자]
권 회장은 과총이 이 시대적 물음에 해답을 제시할 유일무이한 조직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평소 교류하던 각국 대사들과의 일화를 소개하며 “과총이라는 조직은 기초과학부터 응용공학, 보건, 농수산까지 아우르는 단체들이 모여 있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엄청나게 특이하고 독보적인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총에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과학기술계 각 분야의 고수들이 다 모여 있지만, 그동안 이 604개 단체의 엄청난 지혜를 선제적인 정책 제안으로 모아내는 데는 다소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권회장은 또 “이 최고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을 제대로 엮어내기만 한다면 어떤 기관보다 뛰어난 국가 과학 생크탱크가 될 수 있다.현안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넘어, 과총이 먼저 대안을 내놓고 국가 정책이 이에 맞춰 움직이는 진정한 생크탱크의 역할을 해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매주 15㎞를 꾸준히 달리는 마라토너이기도 하다. 그는 “풀코스를 뛸 때 ‘30㎞의 벽’이라는 한계가 찾아온다”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 나를 다시 뛰게 만드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옆에서 묵묵히 함께 달리는 동료의 발소리”라고 밝혔다. 권 회장은 “ 혼자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500만 과학기술인 모두가 동료의 발소리에 귀 기울이며 함께 멀리 가는 3년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