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출연연] "두렵다"…소설 쓰던 기관평가 끝이라지만 현장은 술렁

조가현 기자 2026. 3. 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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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연 평가가 3년, 6년 주기에서 매년 통합평가로 바뀌고 1000쪽 보고서가 30쪽으로 간소화된다. 평가 결과는 기관장 연임이 아닌 전 구성원 성과급, 예산과 연동된다. 현장에서는 간소화를 환영하면서도 23개 기관 동시 평가에 따른 줄세우기를 우려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편집자주] 이재명 정부 들어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을 둘러싼 정책과 대내외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30여년간 출연연을 옥죈다는 평가를 받던 연구과제중심제도(PBS)가 폐지됐다. 많게는 절반 이상의 연구자 인건비를 충당했던 PBS가 사라진 자리에는 출연연마다 판을 새롭게 짜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기관평가제도 변경, 행정통합 등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행정직과 연구직의 갈등 양상도 예사롭지 않게 전개되고 있다. 혼돈의 시기 출연연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변화를 살펴보며 방향을 짚어봤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 평가 결과는 성과급, 운영비에 영향을 준다. 출연연의 경우 기관장 연임제도와 맞물리며 기관평가 준비는 '혹독'한 관례가 됐다. 1000쪽짜리 보고서를 몇 달씩 써야 했던 정부출연기관(출연연) 평가가 올해부터 달라진다. 3년·6년 주기로 나눠 받던 평가는 1년 단위 '통합평가'로 통합되고 보고서는 30페이지로 줄어든다. 정부는 ‘글짓기 평가는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현장 반응은 엇갈린다.

● 공공기관 해제 후 "성과·책임은 어떻게 점검하나"

개편의 출발점은 출연연의 공공기관 해제다. 공공기관 해제 이후 기존 평가체계 유지가 어려워지면서 평가체계 개편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새 체계에서는 기관이 자율 선정한 '대표 연구성과' 3건 이내를 중심으로 질적 평가를 받는다. 경영 40점·연구 60점을 합산한 통합평가로 전환되고 보고서는 30쪽으로 제한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연구자 자율성을 확대하되 성과에 대한 책임성은 분명히 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시범평가도 받은 한 출연연 관계자는 "보고서 분량이 확 줄어 부담이 덜하다"며 "예전에는 몇 달씩 걸렸는데 지금은 초안 작성에 일주일이면 된다"고 말했다.

간소화가 모두에게 반가운 건 아니다. 평가를 담당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관계자는 "스토리로 포장할 수 없게 되니 출연연 부원장 간담회에서 '두렵다'는 속내를 털어놓더라"고 전했다. 그는 "과거 평가서를 읽어보면 글은 잘 썼지만 기관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는 잘 안 보였다"며 "글짓기를 최대한 줄이고 객관적 데이터와 대표 성과 위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1년씩 쌓이면 10년 뒤에는 기관의 방향을 한눈에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 평가위원에 출연연 소속 첫 참여··· 절반 목표는 못 채워

통합평가부터 출연연 소속 박사급 연구자가 평가위원으로 처음 참여한다. 그동안은 우호적 평가 우려로 출연연 소속 평가위원을 배제해왔다. NST 관계자는 "출연연에 대해 잘 아는 전문성 있는 위원을 확보해야 내실 있는 평가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평가단은 총 71명으로 평가단장 1명, 분과장 14명, 평가위원 56명으로 구성됐다. 출연연 소속 평가위원은 16명으로 평가위원 전체의 약 28.6%를 차지한다. 분과는 연구 5개(국토·인프라, 기계·소재, 에너지·환경, 생명·의료, ICT·융합)와 경영 3개로 나뉜다. 연구 분과 출연연 소속 비중은 약 29.5%로 기계·소재 분과가 50.0%로 가장 높고 ICT·융합 분과는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됐다. 경영 3개 분과는 모두 25%로 동일하다.

당초 NST는 출연연 박사 비중을 절반 수준으로 구성하려 했다. NST 관계자는 "상피 제도 적용과 함께 전문 실적을 낸 분야와 관련 있는 인사를 선정하다 보니 지원자를 모두 활용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평가위원들은 평가 의견서를 작성 중이다. 3월 중순 해당 기관에 전달되면 기관은 소명 자료를 제출하고 평가위원들이 이를 반영해 재평가한다. 3월 말 최종검토회의를 거쳐 4월 초 NST 이사회 의결 후 과기정통부에 제출되며 5월 중순까지 확정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 성과급 전 구성원 연동··· PBS 폐지와 맞물려

새 체계에서는 기관장 연임 요건과 평가의 연계가 폐지되고 대신 평가 결과가 전 구성원 성과급과 기관 운영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양호 등급 이상 기관은 전 직원 성과급이 지급되며 성과 기여도가 높은 연구자에게는 ‘특별 상여금(STAR)’이 별도 지급된다. 매우 우수 기관 기준 최대 1억2000만원이다. 기술료 수입 중 일부도 상여금 및 우수연구자 유치수당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반면 '미흡' 등급을 받으면 경상경비가 감액되고 업무추진비도 5% 삭감된다. '매우 미흡'이면 경상경비·업무추진비 감액에 더해 기관 개선계획서까지 제출해야 한다.

개편은 연구과제중심제도(PBS) 폐지와도 맞물려 있다. PBS는 연구자가 외부 과제를 직접 수주해 인건비와 연구수당을 충당하는 구조로 30년 가까이 출연연 인센티브 체계의 근간이었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PBS 폐지로 연구수당이 없어지는 만큼 매년 평가로 성과급을 만들어 잘하는 사람에게 보상하겠다는 구조가 맞물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 23개 기관 동시 평가··· "줄세우기로 변질될 것"

이제는 23개 기관이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정부는 '절대평가'를 원칙으로 내세우지만 현장에서는 '상대평가화'를 우려한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정부는 절대평가라고 하는데 같은 보고서를 동시에 보면 비교할 수밖에 없다"며 "시간이 흐르면 줄세우기로 변질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출연연 관계자는 "연구는 긴 호흡으로 해야 한다. 연구 성과는 3년 전 원장이 뿌린 씨앗일 수도 있다"며 "매년 탁월한 성과를 뽑아내긴 어렵다"고 했다. 다만 "23개 출연연이 서로 벤치마킹하는 관점에서 경영은 매년 평가해도 괜찮지만 연구까지 매년 하는 건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새로 추가된 지표들을 둘러싼 잡음도 있다.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은 지난 1월 말 연구자 정보공개 지표에 대해 "의견 수렴 없이 밀어붙이는 형태"라며 성명을 내고 반발했다.

NST 관계자는 "학력·경력·논문 실적·연구 참여 실적을 공개하는 것으로 원하지 않는 연구자는 개인정보 동의를 받아 공개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며 "배점 비중도 2점으로 낮다"고 설명했다. 출연연이 무엇을 하는지 국민이 알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연구자들에게 홍보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도입한 지표라고 설명했다.

출연연 통합평가는 단순한 평가 방식 변경이 아니다. 공공기관 해제 이후 자율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지에 대한 첫 시험대다. 4월 초 NST 이사회 의결을 거쳐 5월 중순 최종 확정되는 첫 통합평가 결과가 그 답의 윤곽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조가현 기자 ga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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