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도 느리고, 스트라이크도 못 던지고

마이애미/양승수 기자 2026. 3. 16.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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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서 드러난 한국 마운드 민낯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야구 대표팀 주장 이정후(왼쪽 첫째)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이 14일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8강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에 0대10으로 7회 콜드게임 패배를 당한 뒤 굳은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벗어나고 있다. 한국은 이날 9명의 투수를 투입했지만 상대 타자들에게 난타당했고, 타선은 단 2안타에 그쳤다./연합뉴스

한국 야구는 2026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17년 만의 8강 진출이란 성과를 냈다. 김하성(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등 주요 선수의 부상이 이어지며 100% 전력을 갖추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14일(한국 시각) 미국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도미니카공화국과 벌인 WBC 8강전은 한국 야구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경기가 됐다. 39세 노장 류현진(한화)이 선발로 나와 2회를 버티지 못하고, 이어 8명의 투수를 투입하고도 9피안타 6볼넷 10실점으로 무너졌다. 타자들은 상대 투수진에 꽁꽁 묶여 11개의 삼진을 당하며 홈은커녕 3루 베이스조차 밟지 못했다. 한국은 WBC 역사상 처음으로 결선 토너먼트에서 콜드패(7회 0대10)를 당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한국의 이번 대회 최종 성적은 2승 3패. 그나마 2승도 ‘야구 변방’으로 통하는 체코(11대4)와 호주(7대2)를 상대로 거둔 것이었다. 한국 야구는 지난해 1200만 관중을 동원하며 최고 인기 스포츠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국제 무대에서는 여전히 뚜렷한 한계를 드러내며 적지 않은 과제를 남겼다.

그래픽=이철원

마운드의 힘에서 격차가 분명했다. 류지현 대표팀 감독은 대회를 마친 뒤 “대한민국 투수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학생 야구부터 차근차근 기반을 다져 경쟁력 있는 대표팀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참가국 20팀 중 한국의 패스트볼(포심·싱커·커터) 평균 구속은 시속 145.0㎞로 18위에 그쳤다. 한국보다 낮은 팀은 호주(144.4㎞)와 체코(139.0㎞)뿐이었는데, 공교롭게도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승리를 거둔 두 팀이다. 한국의 속구(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도미니카(153.2㎞)와 미국(152.1㎞), 일본(151.1㎞)은 물론 대만(149.5㎞)보다도 훨씬 느렸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강속구 기준으로 여겨지는 시속 93마일(149.7㎞) 이상 공을 64개 던졌는데, 8강 상대인 도미니카(318개)와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이다. 조별 리그에서 탈락해 한국보다 한 경기를 덜 치른 대만(160개)과 네덜란드(133개), 콜롬비아(110개)보다도 적었다. 메이저리그를 필두로 세계 야구가 이른바 ‘구속 혁명’을 본격화하면서 강속구를 기본값으로 삼는 동안 한국은 그 흐름에서 뒤처져 있다는 의미다.

구속이 느린데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던지지도 못했다. 한국 투수진은 조별 리그 4경기에서 볼넷 16개, 8강에서 6개를 내주며 고질적인 제구 불안을 보였다. 한국 투수 가운데 평균 속구 구속 100위 안에 든 선수는 두산 곽빈(시속 150.8㎞·94위)이 유일했는데, 그런 그도 도미니카전에서 볼넷 3개를 내주는 등 제구가 흔들리며 자신의 구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도미니카전에 39세 류현진과 42세 노경은(SSG)이 차례로 등판한 모습은 차세대 국가대표 에이스 육성이 시급하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한국 타선은 조별 리그에서 기대 이상 힘을 보여줬다. 팀 타율은 0.222로 전체 9위였지만, 득점(28점)과 홈런(7개), 타점(27점)은 모두 6위에 올랐다. 특히 문보경(LG)은 1라운드 4경기에서 11타점을 기록하며 한국 타선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들이 등판한 도미니카와 8강전에선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한국은 선발 크리스토페르 산체스(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알베르트 아브레우(주니치 드래건스)에게 7이닝 동안 삼진 11개를 당하며 무기력하게 물러났다. 이날 유일한 장타(2루타)를 친 안현민은 경기 후 “이번 대회를 통해 부족함을 느꼈고 생각이 많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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