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 되어라” 스승의 가르침 받은 제자, 월정사 등불로
전국 돌며 낮은 자세로 법통 전해
불교법난 피해자 명예회복 앞장
원주불교대학개설 등 대중포교
본지 기고 연재·에세이 문학 활동

원행 대종사는 화려한 조명을 받기보다 묵묵히 오대산을 지키는 스스로를 ‘월정사 멍청이’라 낮춰 부르며 ‘산지기’이자 ‘일꾼’을 자처했다.
청년시절 스님은 성직자의 길을 고민했고, 불교에 심취했다. 약관의 나이에 세속을 떠나 ‘사상계’와 ‘창작과 비평’을 봇짐에 넣고 서울에서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했다. 길을 잘못 들어서인지 6박 7일 동안 서울에서 춘천, 홍천을 거쳐 오대산을 향해 걸었다. 그곳에서 스님은 한암스님, 탄허스님, 만화스님의 법맥을 이어받아 수행에 정진했다. 1970년 만화스님을 계사로 출가한 스님은 입산 초기 탄허스님의 시봉 소임을 맡았다.

스님은 1980년 10·27불교법난으로 고문을 당하며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전두환 신군부의 대표적인 국가 폭력 사건이었다. 당시 월정사 재무 소임을 맡고 있던 스님은 ‘부정축재자’라는 누명을 쓰고 원주 보안사로 연행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쇠몽둥이를 든 군인들은 당시 스님이 구독하던 ‘씨알의 소리’, ‘사상계’, ‘창작과 비평’에 밑줄을 그은 부분을 보고 “암호가 아니냐”며 고문 강도를 높였고, 발길질, 물고문 등을 강행하며 진술을 강요했다.
곧 풀려나온 스님은 시장에서 보살에게 돈을 빌려 진부행 버스에 올라탔다. 스님은 이 사건을 계기로 10·27 불교법난 피해자 모임 대표로 활동하며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썼다. 법난의 영향으로 스님에 대한 평가 또한 아직은 가려진 부분이 많다.
주지 임명권을 둘러싼 1981년 월정사 분규 때는 가장 앞장서 사찰을 지켰고, 문화재 불법점유라는 죄목으로 원주교도소에 6개월간 수감됐다.
스님은 1983년 탄허스님과 만화스님 열반 후, 해인사에서 성철스님을 만나 제2의 출가를 단행했고 장주 소임을 맡았다.
궂은일을 언제나 도맡았던 스님은 스승의 뜻을 잇는 ‘목수’이자 ‘불사의 달인’이었다. 만화스님을 보필하며 월정사 중창불사를 도왔고, 당시 큰 금액을 후원했던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과의 인연도 이때 맺게 됐다. 해인사 시절에는 탄허스님의 현몽으로 대전 자광사를 중창불사했다. 원주 구룡사 소임을 맡을 때는 대웅전이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천일기도를 봉행하며 다시 중창했다.
탄허스님과 한암스님의 생가 복원을 위해 노력했으며 2018년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안중근 의거 109주년 기념식에서 북한 조선종교협의회를 만나 한암스님의 수행처인 평북 맹산 우두암의 복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 동해 삼화사 주지를 맡아 노사나철불을 복원했으며 원주 구룡사 주지 시절에는 원주불교대학을 개설하고 경찰 불자를 위해 원주경찰서 경승실을 장엄하는 등 대중 포교에 힘썼다. 원주교도소를 중심으로 20년 동안 재소자 교정교화에 나선 공로로 2023년 법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특히 역사와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스님은 문학인, 예술가, 사회단체장 등 세속의 다양한 이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그들의 의지처가 됐다. 걸림이 없는 수행자로서의 엄격함과 인간적인 따뜻함, 자유로움을 동시에 갖췄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국 각지의 행사장마다 스님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시장의 노보살 등 고단한 민초들을 향한 깊은 연민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수행자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빈부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양을 제공했다. 일상에서 대중들에게 월정사를 더욱 친근하게 알리는 일이었으며 그 내면에는 늘 오대산의 깊은 능선을 품고 있었다.

스님은 본지에 기고를 연재했던 탁월한 문장가이자 7권의 책을 펴낸 에세이스트였다. 그는 불교의 교리와 탄허스님의 법문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글을 썼다. 수행자이자 문학가, 철학자로서 뚜렷하게 시대를 앞서나갔다. 변하지 않는 맑음으로 만 가지 변화에 대응하는 ‘이불변응만변’(以不變應萬變)의 실천이었다.
저서로는 ‘월정사 멍청이’, ‘월정사 탑돌이’, ‘10·27불교법난’, ‘눈썹 돌리는 소리’등이 있다. ‘탄허 대선사 시봉 이야기’, ‘만화 희찬 스님 시봉 이야기’, ‘성인 한암 대종사’ 등 오대산 3대 화상 3부작을 완간하며 ‘시대의 에세이스트상’을 수상했다.
지난 2월 3일자 강원도민일보에 실린 ‘질주하는 ‘심마(心馬)’를 멈추고 ‘본래면목’을 보자’는 스님의 생전 마지막 칼럼이다.
스님은 해당 글에서 “병오년의 강렬한 불기운은 잘못 쓰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산불이 되지만, 잘 다스리면 어둠을 밝히는 지혜의 등불이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엔진이 아니라, 날뛰는 심마를 멈추게 할 지혜의 고삐”라고 마지막 가르침을 전했다.
고형렬 시인은 “원행스님의 행보는 산의 능선 보다는 골짜기에서 회백색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늘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바다가 수평선을 넘어 산으로 올라온 것처럼 그분의 존재감은 더욱 크고 깊게 남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김진형 기자
■ 원행 대종사 열반송
耕罷投鋤五臺嶺(경파투서오대령)
杉林濤聲演法音(삼림도성연법음)
落葉歸根化作肥(낙엽귀근화작비)
莫謂貧僧今日歸(막위빈승금일귀)
밭갈이 마치고 오대산 고개에 호미 던져두니
전나무 숲 파도 소리는 여전히 법문을 설하네
지는 잎 뿌리로 돌아가 다시 거름이 되나니
빈승이 오늘 아주 떠난다고 말하지 마라
#월정사 #멍청이 #가르침 #오대산 #만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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