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기획] 매와 교감하며 '호연지기'...도심서 전통을 잇다


[더팩트ㅣ이새롬 기자] 알면서 모른척 한다는 표현의 ‘시치미 떼다’는 매사냥에서 유래된 말이다. 시치미는 매의 꼬리에 다는 작은 표식으로, 주인(응주)을 구분하기 위한 일종의 이름표였다.
남의 매를 손에 넣으면 시치미를 떼어 내고 자신의 매인 것처럼 속이기도 해서 '어떤일을 자기가 하고도 아니한 체,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태도'를 뜻하는 말로 정착됐다.
매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데서 생긴 '매만지다', 부드럽고 반들거리는 매의 느낌에서 비롯된 '매끄럽다', 매의 눈빛처럼 날카롭다는 뜻의 '매섭다', 매가 꿩을 낚아챌 때의 사나운 모습의 '매몰차다', 매가 다리에 줄이 묶인 채 날아가려고하다 거꾸로 뒤집어지는 모습의 '매달다' 등 매에서 비롯된 우리말 역시 다양하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매사냥은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고급 스포츠로 성행했다. 매사냥은 잘 훈련된 매를 이용해 토끼, 꿩, 비둘기 같은 동물을 사냥하는 전통 방식으로, 잘 훈련된 매는 귀한 자산이었다.
고려 충렬왕은 매사냥 전담의 국가기관 ‘응방(鷹坊)’을 만들고 전문 사육사인 ‘응사(鷹師)’를 두었다. 서울 응봉동의 유래가 된 응봉산 역시 매가 많이 산다는 의미에서 매 응(鷹)자를 쓰고 있다.
매사냥은 겨울철 산간의 전통 수렵이자 공동체 민속으로 인정받아 지난 2010년 한국 등 11개국의 공동 노력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대전과 전북 진안 두 지역이 시도 무형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소수의 이수자를 통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옥천 (72)씨는 서울에서 유일한 매사냥 이수자다.
이달 초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 앞 공원에서 만난 이 씨는 왼팔에 앉아 있던 3살된 암컷 참매 '다래'를 근처 나무로 날렸다가 팔에 돌아와 앉으면 먹이를 주는 '날밥' 훈련에 한창이었다.


이 씨는 3년간 매사냥 교육을 받고 이수심사와 시험을 거쳐 2013년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에 ‘매사냥 이수자’로 등록됐다.
이 과정을 거쳐야 천연기념물인 매를 포획, 사육할 권한이 생긴다. 이 씨는 퇴직을 1년 앞당겨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국가유산청에서 허가하는 참매 사육 기한은 보통 3년이다.
이후에는 방사 허가를 받아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현재 같이 지내는 '다래'는 2년 전 가을, 포천에서 만났다. 매를 만난 곳 지천에 다래덩굴이 있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매를 길들이는데 있어 ‘주야불이수(晝夜不離手, 밤낮 손에서 떠나지 않게 하다), 인중다처(人衆多處, 사람이 많은 곳에 매를 둔다)’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매 훈련에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매사냥은 보통 10월에 시작해 이듬해 2월까지 겨울철에 주로 행해진다. 봄에는 매의 살을 올려 털갈이를 준비한다. 털갈이를 마치면 차츰 살을 내려 훈련에 임한다.




사냥 시즌이 끝난 요즘 이 씨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매의 똥 치우기부터 시작이다.
이 씨가 아침을 먹고 씻는 기척이 나면 매는 일찌감치 횃대에서 내려와 나갈 준비를 한다. 집 앞 공원에서 먹이를 이용한 훈련을 반복하고, 볕을 쪼이고 귀가하면 오후 2시가 훌쩍 넘는다.
매일같이 동네 공원에 매를 데리고 나타나는 이 씨는 주민들 사이에서 이미 '매 할아버지'로 불릴 만큼 유명 인사다.


매를 위한 양질의 먹이를 손질해 준비하는 것 역시 그의 몫이다.
그의 집 거실은 매사냥을 위한 용품과 먹이냉장고, 횃대 등으로 가득 차 있다. 베란다는 오롯이 매를 위한 공간으로만 쓰인다. 매와 지낸 뒤로 1박 이상의 외박,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한다.

"서울에서 매사냥을 보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웬만한 정신력 가지고는 못한다. 처음 매를 풀 때(매사냥에서 '매를 푼다'는 매의 마음을 얻는다는 표현으로 쓰인다) 불안함을 줄이기 위해 사람 많은 데를 데려간다. 동네 장터를 많이 돌아다녀 '저 사람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다. 안 그러면 못한다."
요즘은 아무 산에 나가 야생 꿩을 잡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훈련장 같은 데서 사육 꿩, 메추리 등을 이용해 매사냥을 한다. 체험 학습이나 시연 등 행사도 줄어드는 추세다.


매를 한낱 노리갯감으로 생각하거나,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일찌감치 이 일을 그만두고 사라진 이수자들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이 씨가 이 일을 이어가는 데는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마음과 자연에서 매와 함께 기르는 호연지기 때문이다. 두 다리 튼튼하고 건강이 다할 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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