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아이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릴 때[이수진의 이혼 이야기]

이수진 2026. 3. 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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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소송에서 양육권 협상 카드로 내몰리는 아이들의 현실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남도일보·AI 생성 이미지

이혼 소송에서 양육권 분쟁이라고 하면 보통 서로가 키우겠다고 다투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아이를 내 소유라 생각해서 양육권을 무조건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상대방이 간절하게 원하니까 괜히 심술이 나서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는 반대편의 조금 낯선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서로 키우지 않겠다는 싸움입니다.

"저는 못 키워요. 상대가 키우라고 해요." 의외의 말을 뱉는 의뢰인들이 있습니다. 언뜻 들으면 아이를 포기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본인만이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다고, 상대방이 데려가봤자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이를 데려가면, 저는 평생 애를 키우며 희생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저 사람은요. 훌훌 털고 홀가분하게 새 삶을 시작하는거잖아요. 누구 좋으라고요?"

이들이 견딜 수 없는 지점은 바로 억울함과 상대방을 향한 원망이었습니다. 이혼 후의 삶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데서 오는 분노였습니다. '나는 편부모 가정으로 아이를 키우느라 용을 쓸텐데 상대방은 싱글이 되어 가볍게 다음 인연을 찾아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 처음에는 원망이었다가 내 처지에 대한 한탄이 되고 이내 아이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게 됩니다. 특히 상대방의 부정행위로 이혼할 때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집니다. 어차피 저 사람은 못 키운다. 결국 내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재산분할을 더 얹어주든가, 위자료를 더 주든가. 그것도 싫다면, 그럼 네가 한번 키워봐라. 나는 이래서 못키우고 저래서 못키우고 변명이 이어집니다. 마치 물건처럼 "얼마냐"고 묻듯, 그렇게 아이는 협상의 카드가 되어 테이블 위에 올라갔습니다.

이제 치킨게임으로 변해버린 이혼소송에서 양쪽 모두 벼랑 끝에 도달할 때까지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 차에는 아이가 타고있는데도요. 상대방이 나보다 괴로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아이에 대한 사랑보다 커진 탓입니다. 그리고 그 치킨게임 한가운데서 아이는 그늘 아래 피해자가 됩니다. 부모들 모두 악의는 없다 하겠지만 그들의 미숙함으로 찌르는 상처가 악의로 찌르는 것보다 덜 아프라는 법은 없습니다.

법원은 이혼 과정에서 자녀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렇기에 부모들이 서로 양육권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다투는 상황을 누구보다 법원이 내켜하지 않습니다. 누가 양육권을 가져갈지 부모들이 계속 미루면 이혼 소송도 끝내지 않겠다며 못을 박는 재판부도 있습니다. 키우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양육자에게 판결문으로 양육권을 강제한들 자녀에게 더 잔인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아이처럼 고집을 부릴 때, 법정이 진짜 아이의 편에 설 수 있는 방식이 때로는 그것뿐일 때가 있습니다.

이혼 소송에서 아이는 '사건본인'이라고 불립니다.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법률적 영향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절차 안에서 '본인'은 협상 테이블 위의 카드로 오르내립니다. 재산은 나눌 수 있고, 위자료는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협상의 무게추로 소비된 아이의 정서는, 그 어떤 판결문으로도 복구될 수 없습니다. 아이는 이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고, 이 이혼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사를 물어본 적 없는 어른들의 테이블 위에, 그 아이의 이름이 올라가야 할까요?
이수진 변호사 ·법무법인 수림
이수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