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지난 1월 14일 국민의힘에서 제명된 직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호형 기자
| 서울=한스경제 최형철 대기자 | 순 우리말 '어처구니'의 어원에는 여러 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맷돌에 박힌 나무 손잡이에서 유래됐다는 설명이다. 어처구니가 없으면 맷돌은 한낱 돌덩이에 불과하다.
한동훈 하면 어처구니가 떠오른다.
한동훈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검사로서 입신한 그는 20년 넘게 굵직한 수사를 지휘했다. 그 이력이 그를 정치판으로 불러들였다. 박근혜-최순실을 '경제공동체'라는 법리로 묶어 처벌했고, 그 공로로 문재인 정부 때 윤석열과 함께 발탁됐다. 그러면서 적폐청산 수사 맨 앞자리에서 칼을 휘둘렀다. 성과도 있었다. 다스 실소유주 이명박을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두 전직 대통령을 연이어 사법처리해 '조선 제일의 검'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윤석열의 어처구니로 평가했다. 윤석열이라는 맷돌을 돌리는 손잡이, 특히 보수 진영에서 '설명이 되는 얼굴'이라며 환심을 샀다. 그는 윤석열에게 부족했던 정치적 언어를 대신 말해주는 존재였다.
한동훈은 윤석열 집권과 함께 법무부 장관에 발탁됐다. 이어 집권여당의 얼굴로 현실 정치판에 본격 등판했다. 2023년 총선을 앞두고 그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지휘했으나 참패했다. 윤석열에 대한 중간평가였으니 한동훈에게 책임을 묻기엔 한계가 있었다.
한동훈은 자숙 대신 돌격을 택했다. 당 대표에 당선되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차기대권을 노리는 황태자급으로 몸값도 커졌다. 그러나 윤석열이라는 맷돌에 한동훈이라는 어처구니로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윤석열-한동훈 밀월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집권여당 대표였던 한동훈은 곧장 국회로 달려갔다. 보수 진영 지도자 가운데 계엄 선포에 즉각 반대한 인물은 사실상 그가 유일했다. 그는 계엄이 불법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 용기는 평가받을 만하다.
계엄 이후 윤석열 탄핵국면에서 한동훈은 탄핵에 찬성했다. 당 대표직을 사퇴한 그는 대선출마를 선언했으나 당의 최종후보로는 선택 받지 못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 한동훈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최근 국민의힘은 그를 제명했다. 6·3 지방선거가 80일 앞으로 다가왔다. '야인' 한동훈은 대구 혹은 부산에서 보궐선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 한동훈이 살아 남으려면 몇 가지 선결 과제가 있다.
첫째, 채널A 사건이다. 그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핵심 증거로 지목된 아이폰의 비밀번호 제공을 끝까지 거부했다. 비밀번호는 무려 24자리였다. 결국 수사기관은 이를 풀지 못했고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법적으로는 문제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특권적 태도라는 의문을 남겼다.
둘째, 비전의 부재다. 정치 지도자라면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정치 언어에서는 국가 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멸공이나 자유민주주의 같은 구호만으로 국가 전략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외교, 남북관계, 경제 정책에 대한 분명한 그림도 제시하지 않았다.
셋째, 희생의 경험이다. 검사와 정치인으로서 그는 줄곧 중심부에서 경력을 쌓아 왔다. 한직으로 밀려난 적은 있었지만 희생과는 거리가 있었다. 지도자는 때로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대의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모습이 있어야 신뢰가 쌓인다. '꽃길'만 걸어 온 한동훈은 기득권층의 얼굴로 승부를 하려하고 있다. 불을 보듯 백전 백패다.
21대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고 있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한스경제 자료사진
그는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정치하고 있었어도 코스피가 6000을 찍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국민의 수준을 낮춰보는 망발이다. 보수 논객 조갑제는 이런 한동훈을 우리나라 보수의 미래라고 말한다. 그는 한동훈의 지방선거 출마 지역으로 부산을 추천했다.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다. 진정한 심판은 험지에서 받아야 한다. 그것이 희생이다. 한동훈은 지난 13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를 발탁한 것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아닌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그 말을 증명하려면 험지로 나와야 한다. 텃밭에서의 당선은 대한민국의 선택이 아니라 특정 지지층의 선택일 뿐이다. '안방에서 잠시 웃을 것이냐', '대한민국의 선택을 받을 것이냐', 한동훈 앞에 놓여있는 양 갈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