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빠진 189㎝, 눈이 먼저 반했다

권재현 기자 2026. 3. 1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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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보니 | 르노 ‘필랑트’
르노 필랑트 주행 이미지. 르노코리아 제공

‘별똥별’ 뜻…후면부 맵시에 담아
세단·SUV 장점 딴 파격 디자인
가속에 날렵하고 부드럽게 반응
하이브리드 불구 모터음도 작아
AI 비서 ‘에이닷 오토’ 개선 필요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을 하루 앞둔 4일 니콜라 파리 르노코리아 대표이사 사장이 국내 기자들을 경주로 초청해 대규모 시승 행사를 열었다. 시승 차량은 이달부터 고객 인도를 시작한 ‘르노 필랑트’. 프랑스 르노그룹이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을 비유럽 시장 공략을 위한 수출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추진 중인 신차 개발 계획 ‘오로라 프로젝트’의 두 번째 모델이다.

유럽 시장은 친환경 규제 강화, 가성비로 무장한 중국 전기차의 공습 등 여파로 경쟁이 날로 격화되는 터라 한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 거는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 가을 르노코리아 사령탑에 오른 파리 사장으로서도 취임 후 처음 선보이는 신차인 만큼 필랑트는 중요한 승부처로 꼽힌다. 2년 전 출시돼 한국 시장에서의 침체를 딛고 반등에 성공한 오로라 프로젝트 1호 모델 ‘그랑 콜레오스’의 흥행을 넘어서는 일도 과제다. 그만큼 공을 들였다. 시승 지역도 직접 골랐다고 한다. 파리 사장은 환영사에서 “여러 후보지를 검토하던 중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비즈니스 포럼 참석차 방문한 경주의 매력에 끌려 최종 개최지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디자인이 다 했다.’

이날 시승을 기다리던 르노 필랑트를 마주하고 처음 든 생각이었다. 세단이라기엔 전고가 높았고, 스포츠유틸리티차(SUV)라기엔 루프라인부터 전면부까지 이어지는 곡선이 유려했다. 회사 측은 “세단과 SUV의 장점을 결합한 준대형 크로스오버”라고 설명했다. 특히 별똥별 꼬리를 형상화한(필랑트가 프랑스어로 ‘별똥별’이라는 뜻이다) 각진 실루엣의 후면부가 눈길을 끌었다. 여느 SUV에선 보기 드문 파격적인 디자인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이질감 없이 어우러졌다. 폭이 1890㎜에 달하는 전면부는 웅장하다.

‘빨리 타보고 싶다.’

봄이라고 하기엔 아직 쌀쌀했지만, 기대감에 마음은 금세 달아올랐다. 실내도 외관 못지않았다. 깔끔한 D컷 스티어링 휠과 운전석부터 동승석까지 좌우로 길게 뻗은 오픈알(openR) 파노라마 디스플레이, 운전자의 머리와 어깨를 감싸며 지지하는 감각적인 시트까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시동을 걸고, 지그시 가속페달을 밟았다. 부드럽게 반응한다.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당당하게 나아가는 모습이 매끈하게 빠진 외양을 쏙 빼닮은 느낌이다. 공도를 지나 고속도로에 몸을 실었다.

이제 르노 필랑트와 본격적으로 교감할 차례다. 속도를 올리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폭발적인 가속력을 과시했다. 그런데도 외부 소음은 거의 없다. 엔진음은 물론 하이브리드 특유의 모터음도 크게 들리지 않았다.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전 트림에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적용했고, 강성 소재를 사용한 글라스 루프, 이중접합 창문 및 흡차음재 덕분에 정숙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와인딩 구간에선 조향감이 돋보였다. 운전대를 따라 차체가 민첩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구불구불한 오르막인 추령재 코스를 거뜬히 통과할 정도로 힘도 좋았다. 르노 필랑트는 250마력의 최고출력과 25.5㎏·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울퉁불퉁한 도로의 요철 또한 잘 걸러냈다. 노면 진동을 감지해 감쇠력을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주파수 감응 댐퍼 기술이 고속 주행에서도 안정적으로 달리는 효과를 낸다. 긴급 제동 보조 기능을 적용해 주행 중 앞차와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부드럽게 제동이 걸렸다.

신호등 앞에서 시승 행렬이 일제히 멈춰 섰다. 앞서 달리던 다른 기자의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덩치가 컸다. 전장이 4915㎜로 긴 편이지만 차체가 낮게 깔리는 설계를 적용한 까닭에 날렵한 세단 같은 느낌을 준다. 동급 차체가 좀처럼 채택하지 않는 파격적인 디자인 또한 한몫했다. 준대형 크로스오버인데도 언뜻 봐선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실내는 넉넉하다. 320㎜의 무릎공간(레그룸)은 물론이고, 높아진 전고(1635㎜) 덕분에 헤드룸(874㎜)도 충분히 확보했다. 2열에 앉아 하늘을 보면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 구조가 탁 트인 개방감을 선사한다. 솔라 필름이 적용된 글라스 루프는 자연광을 감지해 투명도를 자동으로 조절하며 탑승객의 눈부심을 줄여준다. 여름에는 단열, 겨울에는 보온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르노코리아는 설명했다.

운전석 앞부터 동승석 앞까지 12.3인치 스크린 3개를 연결한 디스플레이는 음악 재생부터 뉴스 검색, 레이싱 게임까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동승자가 운전자의 화면을 볼 수는 있지만, 운전자가 동승자의 화면을 볼 수는 없도록 설계한 건 안전 때문이다. 운전하다가 실제로 옆으로 살짝 눈길을 돌려봤지만, 새까맣게 보일 뿐 동승자가 뭘 보는지 전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룸미러는 후방 카메라를 활용한 풀 디지털 방식이어서 후방 와이퍼 없이도 선명한 후방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차량용 인공지능(AI) 비서인 ‘에이닷 오토’ 기능은 다소 아쉬웠다. 생성형 AI의 놀라운 답변에 길들어져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 탓일까. 날씨 확인, 창문 개폐 등 단순 작동을 넘어 나도 모르게 질문의 내용이 점점 복잡해져 갔다. 그럴수록 답변은 신통찮게 흘러갔다.

‘음성 비서는 결국 자율주행 환경 기술의 성숙도에 비례해서 발전할 것 같다. 완전 자율주행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일단 운전에 집중하자.’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필랑트 기술 개발에 참여한 한 연구원은 실제로 이런 분석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중간 기착지에서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면서 “거대언어모델 학습을 통해 차량 내 음성 인식 성능도 점점 고도화시켜 가고 있지만, 현재로선 운전 중이라는 특수 환경 그리고 주행 안전이 최우선 가치라는 점을 고려해 가급적 답변이 80~100글자 범위 안에서 이뤄지도록 의도적으로 제한을 가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시승은 경주에서 출발해 울산의 한 카페를 찍고 복귀하는 왕복 140㎞ 구간에서 펼쳐졌다. 카페에 도착하니 연비는 13.1㎞/ℓ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심, 산길, 고속도로, 국도, 곡선주로 등 코스가 다채로웠고, 차량의 성능을 체험한답시고 급가속, 급정거를 반복했던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기착지에서 교대한 동승자는 15.8㎞/ℓ를 기록해 공인 연비 15.1㎞/ℓ를 넘어섰다. 연초부터 불어닥친 중동 사태로 유가가 널뛰는 상황에서 이는 필랑트의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빼어난 디자인에 비해 외장 색상은 단조로운 편이다. 새틴 유니버스 화이트를 포함해 모두 5가지 색상을 운영하는데, 전반적으로 차분한 톤이어서 디자인의 개성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느낌이다.

권재현 선임기자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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