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왕사남과 흔들리는 사법 신뢰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 2026. 3. 1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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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죽는다. 이 내용을 시작 전에 외쳐도 무해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가 천만 영화가 되었다길래, 그 거대한 흐름에 합류했다.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를 바라보는 내 심정은 복잡했다. 각오했던 것보다 짜임새가 훨씬 엉성했다. 캐릭터는 지나치게 평면적이었고, 극의 전개는 시종일관 느슨했다. 딱 하나, 단종의 사망 장면만이 인상 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의 의도대로 울컥했고, 분노했으며, 울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를 사실상 이끌었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소재와 관점의 힘이 컸다.

그 시대의 질서와 명분을 힘으로 뒤집는 무도함과 그 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소년의 목숨, 단종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시대를 초월하는 비극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조선 초기의 이야기를 현대의 관점에서 풀어냄으로써 그 시대를 현대로 순간이동시킨다. 단종과 태산이 공유한 희망, 즉 무지렁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는 희망은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기본 이념에 가깝다. 영화를 보면서, 이들은 최소 400년(동학은 단종 사망으로부터 약 400년 후에 태동한다)을 앞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단종의 복위는 당대의 명분인 왕조의 정통성을 살린다는 측면에 부합할 뿐 민초의 삶과는 상관없는 주제인데, 영화에서 단종의 복위를 꾀하는 이들은 백성을 외친다. 이 또한 공동체는 주권자인 국민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민주주의적 관점에 가깝다. <왕사남>의 주제의식은 단종의 각오, 즉 ‘우리의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불의에 저항했다는 기록을 남겨 조선의 미래가 힘에 굴복하지 않게끔 하겠다’는 각오로 집약되는데, 이 각오는 폭력과 불의에 저항한 사람들의 각오와 맞닿는다.

고증의 실패로 보이기는 하지만, 소재와 관점 덕분에 우리는 <왕사남>을 보며 숙부로부터 배신당해 죽은 불쌍한 왕만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군부독재로 대표되는 무도한 무력통치에서부터 가깝게는 헌법질서를 군으로 짓밟으려 했던 12·3 비상계엄 사태까지 떠올리게 된다. <왕사남>은 그렇게 시대정신을 담았고, 시대정신은 엉성한 만듦새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 울림이 <왕사남>을 천만 영화로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위 ‘사법 3법’의 입법 과정은 판사들에게 깊은 충격과 자괴감을 안겼다. 법왜곡죄,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 모두 이번에 처음 논의된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사법체계와 재판 제도, 법원 조직의 구성을 크게 변화시키는 내용이기에 그 도입을 논의할 때에는 재판 실무를 담당하는 판사들도 논의의 주체로서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예전 사법개혁 논의와 같이 수개월에 걸친 공론화 및 숙의 과정이 이어질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그런데 그 믿음과 예상이 무참히 깨졌다. 사법부는 개혁의 대상이 되어 입법 논의에 참여하지 못했고, 판사들의 의견은 존중받지 못했다. 판사들이 철저하게 배제된 상태에서 사법 3법이 전격적으로 공포, 시행되었는데 사회는 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법 신뢰가 무너졌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법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사법 신뢰 저하를 큰 문제로 인식하며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느슨한 만듦새에도 시대정신을 담아내어 깊은 울림을 주며 천만 영화에 등극한 <왕사남>을 보며 문득 그 생각에 다다랐다. 우리 법원은 만듦새가 정교한 재판들을 신속하게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시대정신을 담아내진 못하는 것 아닐까. 불의 앞에서 저항하겠다는 각오를 보여주었던가. 나는 여기에서 법원이 신뢰를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군부독재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고요했던 법원의 모습과 사법 3법 입법 과정에서 분주했던 법원의 모습이 크게 대비된 것도 사실이다.

이례적으로 정교하고 신속했던 재판만큼이나 헌법 침해에 단호히 대응하는 태도도 함께 보여주었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 법원이 지금의 시대정신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는지 성찰하지 못하고, 현재의 사법불신을 단순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재판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데 그친다면, <왕사남>이 천만 관객을 훌쩍 넘어서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법원은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

류영재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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