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기톱을 든 90세 예술가, 나무와 하나 되다
세계 누비며 작업한 70여년 화업, 175점 선보여
층층이 쌓은 수직 구조 ‘신앙적 믿음·열망’ 조각
여러 문화 흡수 ‘독특’… 호암미술관 내일 개막

90세 조각가 김윤신은 여전히 현역이었다. 1세대 여성 조각가인 김윤신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이 오는 17일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한다. 호암미술관이 국내 여성작가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의 70여년 화업을 조명한 이번 전시에는 무려 175점이 등장한다. 작가가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등 세계를 누비며 끊임없이 작업한 결과다.
작가의 조각은 아래에서 위로 상승한다. 독립 운동을 나간 오빠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어머니는 새벽마다 물을 떠놓고 기도했고, 어린 김윤신은 그옆에서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어릴 적 기억은 작가가 대표작인 ‘기원쌓기’ 시리즈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 조각을 층층이 쌓아 만들어내는 수직 구조에는 신앙적인 믿음과 작가의 예술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다. 1970년대 중후반 ‘기원쌓기’ 조각 시리즈는 이번 전시 1층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작가는 “나무는 바로 나”라고 말한다. 작업 과정에서도 나무가 품고 있는 목소리에 집중한다. “모든 삶이 찰나이듯 나무를 지긋이 살펴보다가 톱을 든다”는 작가는 구상 없이 나무 조각을 완성해나간다. 이런 직관적인 통찰은 오늘날까지도 작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런 작가의 예술관은 ‘재료와 내가 하나 되니, 그 속에서 작품이라는 또다른 하나가 탄생한다’라는 뜻을 담은 전시명에도 반영됐다. 작가는 이번에 선보이는 여러 작품 중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7-88’에 가장 마음이 간다고 했다. 이 작품은 나무 밑동과 옹이, 껍질, 접기톱이 깊게 팬 홈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품으로, 호암미술관이 전시를 위해 특별히 대여해왔다. 이 작품은 김윤신 작가가 “이곳에는 기차게 좋은 나무가 많다”는 조카의 한마디에 이끌려 아르헨티나로 이주했을 때 조각한 것이다. 그길로 김윤신 작가는 대학교수라는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자연을 품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만든 작품이에요. 버려진 나무를 밀고 또 밀어 간신히 집 안으로 끌고와 작업했죠. 나무가 일반 톱으로는 작업을 하기 어려울만큼 육중해서 공구 가게에 가서 전기톱을 구해와 작업했어요.”
전기톱을 든 후로 김윤신의 작품 세계는 한층 더 넓어졌다. 단조롭게 단을 쌓던 방식에서 보다 역동성이 더해진 것이다. 나무 조각은 단순히 켜켜이 올라가는 구조에서 벗어나 수평으로 길게 뻗거나 얽히고설켜 무언가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작가의 작업에는 색채도 더해진다. 2층 전시실에서 살펴볼 수 있는 채색된 나무조각들은 마치 런웨이 위에 자리한 듯하다. 거리두기 탓에 작업실에 머물러야했던 작가는 폐목재에 눈길이 갔고, 이를 모아 조각을 만들어 알록달록한 색을 입혔다고 한다. ‘회화인가’ 싶을 정도로 화려한 색감을 뽐내는 이 조각들은 김윤신 작가가 새롭게 개척한 ‘회화-조각’ 작품들이다.
마지막 전시 공간에는 아르헨티나 안데스산맥을 형상화한 ‘합이합일 분이분일 2013-16’이 자리한다. 팔을 벌려 무언가를 끌어안으려는 듯 가로로 쭉 뻗은 나무조각은 산맥을 그려낸 듯하다. 그 위로 솟아있는 파란 나무조각들은 안데스산맥의 유빙을 표현한 것이다.

호암미술관 측은 “김윤신은 화업이 두 세기에 걸쳐져 있고 한국과 유럽,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문화를 흡수해 독특한 예술 세계를 피워낸 작가”라며 “현대적이면서 자연에 가깝고 한국적이면서 이국적인, 지역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 작품들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유사한 예를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자연과 깊은 교감 속에서 삶과 예술을 하나로 이어온 작가의 여정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6월28일까지다.
/이시은 기자 se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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