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아빠 메달 따면 내 목에 걸어줘"…정구 전설 김진웅, 두 딸 위해 다시 뛰는 아시안게임

김종석 기자 2026. 3. 1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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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2관왕 이후 8년 만의 도전
-남자 대표 88% 30대. 고령화 속 베테랑의 책임감
-하드코트 약점 극복이 금메달 열쇠
한국 정구의 전설 김진웅이 히로시마 피스컵 국제정구대회 출전했다. 2년 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단 김진웅은 9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한국 정구의 전설로 불리는 수원시청 김진웅(35)은 코트에 서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15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피스컵 국제정구대회 남자 단체전(3 복식) 준결승과 결승. 그는 관중석에서 6·7번 코트와 9·10번 코트를 오가며 선수들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봤습니다. 9월 일본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다툴 가능성이 높은 일본과 대만 국가대표 선수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김진웅은 지난해 전국체전 4연패를 달성한 수원시청 소속으로 이번 대회에 출전했지만, 부상 악화로 코트에는 서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았습니다.

  "올해 첫 국제대회이고 일본과 대만 에이스들이 모두 나왔습니다. 겨울 훈련 동안 상대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현장에서 확인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복식 포메이션을 집중해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간판 우에마츠 도시키를 언급하며 웃었습니다.

  "솔직히 약점이 잘 안 보입니다."

9월 나고야 아이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5개 싹쓸이는 일본 대표팀 포스터.

우에마츠는 2023년에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도 3관왕에 오른 당대 정구 최강자입니다. 우에마츠는 이번 히로시마 대회에서도 소속팀 서일본 NTT 유니폼을 입고 출전해 요넥스팀을 꺾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김진웅 역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세계 선수권에서 2연패를 달성했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을 차지했습니다. 우에마츠가 코트를 지배한 항저우아시안게임에는 김진웅이 국내 대표선발전에 탈락하면 출전이 불발됐습니다.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에 오른 김진웅.

김진웅은 우에마츠와 아시안게임에서 격돌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최근 전남 순천에서 열린 2026 정구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남자 단식 1위를 차지하며 2년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습니다.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선발전 막판 왼쪽 무릎과 꼬리뼈 통증이 심해졌고 결국 진통제까지 먹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패자부활전을 거쳐 최종 1위까지 올라섰습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승에서 0-2로 뒤졌는데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한 포인트에 집중한 끝에 4-2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 패자전으로 밀리면 결승에서 두 번을 연이어 이겨야 1위가 되는 불리한 조건을 결국 극복했습니다. 

  김진웅은 이번 선발전 통과를 위해 지난겨울 그 어느 보다 훈련에 매달렸습니다. 오전 오후 코트에서 공을 친 뒤 매일 저녁 400m 트랙을 15바퀴, 약 6km를 달렸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병행해 근력을 보강했습니다. 식이요법으로 키 180cm, 몸무게 68kg. 10년 넘게 체중 변화도 없습니다. 임교성 수원시청 감독은 "김진웅 선수는 오히려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걱정될 정도다. 철저한 자기관리는 후배들의 모범이 되고도 남는다"라고 칭찬했습니다.

김진웅의 안정된 플레이. 

김진웅의 이런 모습은 앞으로 정구 국가대표팀 훈련 과정에서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정구의 국제경쟁력은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일본과 대만의 전력은 빠르게 올라왔지만, 한국은 뒷걸음질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히로시마 대회에서도 대만팀은 4강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한국 남자 정구는 2023년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문경 아시아선수권에서도 남녀 모두 금메달 0개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기록했습니다. 게다가 이번 아시안게임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하드코트에서 열립니다. 정인선 대한정구협회 회장(연세아이미스템의원 대표원장)이 최근 대표선발전에서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못딸 경우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라고 특단의 정신 무장을 강조하는 내용의 폭탄선언을 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김진웅은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하드코트는 클레이보다 공이 변칙적으로 옵니다. 랠리도 길어지고 체력 부담이 훨씬 큽니다."

  이번에 대표선발전을 통과한 남자 선수 8명 가운데 7명은 30대입니다. 김우식(서울시청)만이 27세입니다. 김진웅은 "20대 후반 선수들이 치고 올라와 세대가 반반 정도 되면 좋을 텐데 선수층이 매우 부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학생 선수 감소도 문제입니다. "요즘 전국대회를 보면 중고 선수들이 계속 줄어듭니다. 수업과 운동을 병행하다 보니 훈련 시간이 부족한 것도 현실입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 김진웅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한국 정구의 롤 모델로 뭔가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커 보입니다. 김진웅은 하드코트 전문가로도 통합니다. 금메달 2개를 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코트도 하드코트였습니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같은 수원시청에서 뛰다 헤어진 후네미즈 하야토를 만난 김진웅.

그는 히로시마에서 반가운 얼굴도 만났습니다. 지난해 수원시청에서 함께 뛰었던 일본 스타 후네미즈 하야토(29)입니다. 두 선수는 서로 안부를 묻고 웃으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후네미즈는 짧은 한국어로 말했습니다. "진웅이 형 두 딸이 너무 귀엽습니다. 아시안게임 때 응원하러 가겠습니다."

  김진웅에게는 두 딸이 있습니다. 정구 선수 출신 김미선 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7세와 2세 딸입니다. 요즘 큰 딸의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아빠 메달 따면 꼭 내 목에 걸어줘."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을 때는 아직 세상에 없던 아이들입니다. 김진웅은 내년 문경 세계 선수권을 마지막 무대로 은퇴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하나만 바라봅니다. 8년 만에 다시 찾아온 아시안게임. 딸에게 약속한 메달을 목에 걸어주기 위해, 부상을 털고 다시 달릴 코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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