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퍼사이클 2년 더... 中, 10년내 기술 완전독립”

김홍수 경제에디터 2026. 3. 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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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삼국지’ 저자 성균관대 권석준 교수가 본 기술전쟁
2022년 역저 '반도체 삼국지'로 경종을 울렸던 권석준 교수는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면서 "전 기술 영역에서 기술 업데이트 주기가 빨라지고 있어 10년 내 중국판 ASML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고운호 기자

지난 12일 막을 내린 중국 최대 정치 행사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정협)에서 2030년까지 ‘AI(인공지능) 경제 국가’를 만들겠다는 새 국가 목표를 수립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반도체 기술 자립’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며칠 앞서 중국 반도체 기업인들은 ‘전국의 힘을 모아 중국판 ASML을 만들자’는 내용의 정책 기고문을 발표했다. 미국의 제재로 수입을 못 하고 있는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대신할 수 있는 국산 장비를 기필코 만들자는 취지였다. 이들은 “EUV는 반드시 해내야 하는 목표”라면서 국가 지원과 반도체 기업들의 단합을 촉구했다.

철강, 석유화학, 조선, 배터리, 전기차… 주력 산업 대부분 중국에 뒷덜미를 잡혔고, 반도체 하나가 거의 유일하게 경쟁 우위 산업으로 남아 있는 한국으로선 중국의 결기가 무서울 정도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 역량은 어느 수준에 와 있고, 발전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반도체 전문가 성균관대 권석준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2022년 역저 ‘반도체 삼국지’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과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존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4월에 후속작 ‘차이나 반도체 라이징’을 발간할 예정이다.

◇’극복 대상 반도체 기술 리스트’ 하나씩 지우고 있는 중국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 수준이 어디까지 와 있나.

“10나노급 이상 레거시 반도체 기술은 거의 다 따라왔다. 반도체 소부장 산업이나 패키징 공정도 급성장했다. 하지만 한국 수준의 최첨단 공정은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판 ASML을 만들자”는 구호에 기술 도약의 염원이 담겨 있다.”

-반도체 기술 굴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중국 정부와 반도체 산업계는 극복 대상 기술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진척 정도를 주기적으로 체크하는데, 상당한 진전이 있는 것으로 안다. 비유하자면 10년 전에는 30개 목표 중 달성한 게 3~4개뿐이었다면, 지금은 거꾸로 안 되는 걸 찾기가 더 어렵다.”

-ASML의 EUV 노광 장비는 수십 년 업력을 자랑하는 5000개 공급업체가 만드는 10만개 이상 부품이 필요한데, 중국이 그런 장비를 만들 능력이 있나.

“매년 3월 중국의 반도체 장비 회사들이 신제품을 출시하는 ‘세미콘 차이나’라는 행사가 있는데, 2025년에 가보고 깜짝 놀랐다. EUV 이전 세대 노광 장비인 DUV(심자외선)를 자체 기술로 개량해 반도체 제조 장비로 쓰고 있었다. 레이저로 강력한 빛을 만들어 내는 ASML의 LDP 방식을 우회해 플라즈마를 광원으로 쓰는 LPP 방식의 반도체 제조 장비를 만드는 신생 기업도 등장했다. 지금 중국은 광원 기술, 광학 장비 제조 기술, 고정밀 기계공학 분야 등 최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에 필요한 기술을 동시다발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10년 내로 중국판 ASML이 나올 가능성도 이제는 무시할 수 없다.”

◇중국 공학자들, “시간은 우리 편이다. 버티면 이긴다”

-경쟁국들이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거 아닌가.

“경쟁국들도 기술 발전에 목을 맬 테니 기술 격차는 유지될 수도 있다. 그런데 중국 공학자들은 ‘시간은 우리 편이다’라고 말한다. 한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만든 주역은 70·80·90학번 세대들이다. 70년대 학번은 거의 은퇴했고, 80·90년대 학번은 2020년대, 2030년대에 대부분 은퇴한다. 이들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고숙련 엔지니어와 연구원들의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반도체 제조 노하우가 끊길 수 있다. 반면 현재 중국의 반도체 인력은 아주 젊은 편이다. 기초와 바닥부터 노하우를 축적한 30~40대 중국 엔지니어들은 20년 후 최전성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중국 반도체 분야 학자들은 ‘버티면 우리가 이긴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인력 양성 상황은 어떤가.

“한국은 반도체 전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지만, 중국은 차원이 다르다. 우한에 있는 H공대를 예로 들면, 반도체 관련 전공 교수가 160여명이고, 대학원생도 1800여명에 달한다. 반도체 계약학과가 있는 성균관대학엔 반도체 클린룸이 1개 뿐인데, 이 대학엔 클린룸이 3개나 있다. 반도체 제조장비 수백대가 가득차 있는 클린룸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데, 지방 정부가 전기도 사실상 거의 무상으로 공급한다. 이 대학에선 학생들이 자체 설계한 웨이퍼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보는 클린룸과 지원 시설이 24시간 365일 내내 돌아가고 있다.”

-중국 자체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많다는 점이 반도체 굴기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나.

“내수 시장이 크다는 것은 기술 개발 면에서도 엄청난 강점이다. 비교를 위해 배터리 산업을 살펴 보자. 중국 배터리 산업은 10년 전 한국보다 기술 수준이 낮아 한국 모델(NCM·니켈 코발트 망간)에 비해 성능이 떨어진다고 알려졌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주력 모델로 삼았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됐나. 기술 개발로 단점(낮은 에너지 밀도, 폭발 위험 등)을 극복하고 학습곡선과 규모의 경제 효과를 타고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세계 배터리 시장을 장악했다. 이제 한국 배터리 기업들도 부랴부랴 LFP 양산으로 따라가고 있다. 국가가 ‘인내 자본’ 역할을 하며 20~30년 계속 지원해주고, 기업이 많이 실패하면서도 계속 만들면서 기술 축적을 하고, 엔지니어가 훈련되고, 그 결과 원가를 계속 낮춰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중국식 모델은 결국 반도체에도 통할지 모른다.”

◇중국 큰 시장, 규모의 경제로 기술 업데이트 기간 압축

-반도체는 기술 난도가 훨씬 높지 않나.

“제품을 계속 많이 만들면 엔지니어들의 학습효과 곡선이 급속히 올라간다. 우리가 10개 만들 때, 중국 기술자들은 3교대로 끊임없이 클린룸을 100% 활용하면서 100개씩 만들어 테스트하면 기술 업데이트 주기가 훨씬 더 단축될 수 있다. ‘AI 경제국가’ 건설을 최근 국정 과제로 설정한 중국으로선 반도체 굴기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다른 산업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성공 체험을 했고 자신감을 얻었다. 중국 지도부는 반도체라고 안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AI 경제국가 전략이 미·중 패권 경쟁과도 관련이 있나.

“물론이다.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는 수단으로서도 이 전략은 중요할 것이다. 특히 중국의 대표 AI모델 개발 스타트업인 딥시크가 ‘오픈소스’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오픈소스를 만들면 러시아, 이란, 쿠바, 북한 같은 반서방 국가들이나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등 제3세계 국가들이 많이 쓰게 된다. 겉으로는 무료지만, 딥시크의 오픈 모델을 다운받아 사용하는 순간, 중국의 AI 생태계에 예속이 시작된다. 중국이 ‘버추얼(virtual)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 중심의 글로벌 경제 벨트 전략)’를 구축하기 위해 공짜 AI모델로 일종의 산업 알박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경제 모델에도 약점이 있지 않나.

“중국도 몇가지 난제를 안고 있다. 정부가 언제까지 인내 자본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2000년대부터 코로나 직전까지 거의 20년을 이어오던 경이적인 경제 성장률은 코로나 이후 많이 둔화되었고, 이제 5% 성장률은 달성이 매우 어려워졌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4.5% 로 낮췄지만, 이 성장률마저도 달성 여부는 불투명하다. 계속 저하되는 경제 성장률은 전형적인 중진국 함정의 신호 중 하나이다. 따라서 과거 10%를 넘나들던 경제 성장률을 상정하여 사실상 미래의 소득을 앞으로 당겨와서 투자하던 국가 산업 자본 투입 전략은 이제 지속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즉, 중국은 2020년대 후반 이후, 앞으로는 예전처럼 마냥 화수분처럼 재정을 쏟아부을 순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 여기에 더해 급속한 노령화, 1.0 이하로 떨어지는 출생률, 심각해 지는 청년 실업, MZ세대의 개인주의, 도농 간 빈부 격차 확대 등은 구조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과거와 확연히 다른 반도체 수퍼 사이클, 2027년 말까지 간다

-요즘 한국 반도체 산업은 AI발 HBM 수요 덕분에 초호황이다. 이번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언제까지 갈 것으로 보나.

“개인적으론 2027년 말까지는 갈 것으로 예측한다. 주관적 전망이라기 보다는 여러가지 예측 지표에 기반을 둔 것이다. 예전 수퍼 사이클과 이번 사이클이 확연히 다른 점 중 하나는 메모리 반도체 메이커들이 고객사들에게 테이크 오어 페이(take or pay) 방식의 계약을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 같으면 1년치 물량을 계약을 할 때 계약금만 내고, 나중에 경기 상황이 안좋아지면 계약을 취소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나 테이크 오어 페이 계약은 일단 고객사가 미래의 물량을 주문하고, 시간이 지나 물량이 생산되면 무조건 가져가든지, 인수를 포기하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의무가 따르는 계약이다. 즉, 메모리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과잉생산 및 매몰비용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훨씬 유리한 조건이다. 물론 계약시점보다 인도 시점에 칩 가격이 더 오르면 제조사 입장에서는 손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매몰비용이나 인수 불발로 인한 설비투자 비용 회수 불가라는 최악의 악재는 피할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1년 이상의 롱텀으로 고객사들의 물량을 확보한 계약 상황을 감안하면, 적어도 지금부터 2년 정도는 현재의 사이클이 적어도 다운턴으로 진입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반도체 기업과 정부는 뭘 준비해야 하나.

“과거처럼 범용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고 고객사들에게 공급하는 방식도 지속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구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 시장은 커질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에도 파운드리 개념과 유사한 환경이 조성되고, 그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고성능 AI 반도체와 연계될 수 있는 맞춤형 메모리 반도체 제조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HBM은 구글의 AI반도체 TPU에 바로 사용하기는 매우 어렵다. 빅테크들이 독자적으로 만들어갈 ASIC(특정 용도의 집적 회로) 기반 AI 반도체에 딱 맞는 맞춤형 반도체를 공급하는 ‘메모리 파운드리’ 기능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삼성전자, 하이닉스, 마이크론(미국 기업) 중에선 파운드리 라인을 갖추고 있는 삼성전자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메모리 파운드리’ 시대 개막, 새 생존전략 찾아야

-하이닉스·TSMC·엔비디아 삼각 동맹 구도가 깨질 수도 있나.

“하이닉스가 향후 더 성능 요구치가 높아질 고객사들의 맞춤형 메모리 공급에 대응할 수 있는 라인 확장, 기술 개발, 파운드리 기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면 잠재적 함정이 만들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몇 년 후 엔비디아의 주문에 따라 TSMC가 아예 메모리 전체는 아니더라도, 메모리와 GPU사이를 연계할 수 있는 HBM용 로직다이(logic die·AI반도체를 구동하는 핵심 엔진)까지 직접 만들어 엔비디아에 공급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TSMC는 기술적으로는 메모리까지 직접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TSMC가 메모리 제조에 뛰어든다는 신호는 아직은 없다). 엔비디아는 실제로 이르면 2027년부터 HBM4E 단계부터는 반도체 로직다이 설계에 직접 관여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HBM을 대체할 전혀 다른 개념의 반도체가 등장할 가능성은?

“2030년까지는 HBM이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후엔 HBM의 보완재는 확실히 등장할 것이고, 심지어는 대체재가 개발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선 ICMS(inference context memory storage)가 유력한 후보로 보인다. GPU 전용 HBM과 일반 대용량 메모리 저장장치 사이의 메모리 수직 계열화 구도에서 중간 지점에 위치해 ‘추론 과정의 맥락’, 즉, KV cache(AI 언어 모델에서 추론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이전 토큰들의 키<key>와 밸유<value>를 저장해 두는 기능)를 저장해 HBM이 다 소화하지 못 하는 KV cache 데이터를 분배하여 저장하고 데이터 접근 효율을 강화하는 새로운 개념의 메모리 장치다. 엔비디아는 추론이 대세가 되는 AI 산업에 대한 맞춤형 연산 장치로서 ICMS가 들어간 새 메모리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 같은 메모리 기업들이 ‘어떤 구조로 이걸 구현할 것인 지를 고민하고 있다.”

-중국이 새로운 개념의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 가능성은 없나.

“중국은 어차피 엔비디아 AI칩을 사실상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자신들 방식의 완전히 새로운 ASIC 기반 AI 반도체를 만들려 할 수 있다. 심지어 EUV가 필요없는 새로운 아키텍쳐를 실현하기 위한 모험을 시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트랜지스터를 2D가 아니라 3D 형태로 만들어, 10나노 이상의 성숙 공정으로도 연산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를 만들 수도 있다. 이 기술이 만약 실현된다면, 이는 반도체 업계를 뒤흔들 ‘파괴적 기술’이 될 것이며, 중국이 미국에 던질 수 있는 강력한 카운터펀치가 될 수도 있다.”

◇미국 ‘반도체판 존스법’ 만들어 철벽 칠수도

-수백조원이 투입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성공하려면 뭘 해야 하나.

“대폭 늘어날 생산 능력이 그림의 떡이 되지 않게 하려면 전력과 용수 문제, 반도체 인력 공급이 제대로 준비돼야 한다. 생산능력은 3배 늘어나는데, 인구 감소 추세 속에서 필요한 전문 인력을 어떻게 조달할지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반도체 산업도 무인화, 자동화가 진행되겠지만, 라스트 마일(last mile·마지막 마무리 의미)은 숙련된 장인과 전문가의 손길이 중요하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미국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우리에겐 큰 위험요소 아닌가.

“국내 일자리 창출, 세수 증대에 쓰일 돈이 빠져 나간다는 점에선 마이너스지만, 미국 반도체 생태계에 한국 반도체 기업이 메인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포석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 입장에선 미국에서 향후 ‘반도체판 존스법(미국산 화물선만 미국 항만에 들어올 수 있게 허용하는 법)’이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주요 AI프로젝트에 들어갈 반도체는 미국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서 만든 것을 써야 한다고 규제할 수도 있는 셈이다. 또 미국이 주도할 미래 반도체 기술이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양자컴퓨터 같은 새로운 기술의 최선단 라인에 한국이 주요 기술 파트너 국가로서 우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 기업의 미국 진출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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