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내민 '호르무즈 통행 청구서'…동맹국·中 동시 압박
美·이스라엘 작전으론 한계
'美공습·파견군함 호위' 구상
패권경쟁 中에도 이례적 제안
NYT "중동전쟁을 계기로
아태지역서 美영향력 감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한국과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을 지목하며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파견할 것을 요구한 것은 미국·이스라엘만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과를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패권 경쟁국인 중국에 '군사 공조'를 제안한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다른 숨은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또 불과 하루 전 김민석 국무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지만, 이 자리에서 전혀 언급이 없었다는 것은 이 같은 요구가 즉흥적인 결정에서 내려졌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우리는 이미 이란의 군사력을 100% 파괴했다"며 "그들이 아무리 처참하게 패배했더라도 해협 주변이나 내부로 드론 한두 대를 보내거나, 기뢰를 투하하거나, 근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한 공습으로 이란의 군사력을 무력화하는 데에는 성공하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은 해안선을 맹렬히 폭격하고, 이란의 함선을 계속해서 격침시킬 것"이라며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곧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고 안전하게,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고 SNS에 적었다. 이 같은 언급으로 미뤄 볼 때 미국이 이란의 군함을 공습하는 역할을 담당하되, 다른 나라가 파견한 군함이 유조선 등의 선박을 호위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으로 보인다.
명분은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거래 방식인 '수익자 부담' 원칙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 확대를 요구하며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 동맹국을 압박할 때 자주 목격돼 온 장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군함 파견과 관련해 두 번째로 올린 SNS 글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를 공급받는 세계 각국은 해협을 관리해야 하며(must take care of that passage), 우리는 이를 위해 아주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처음 올린 SNS 글에서는 '바라건대(Hopefully)'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두 번째 글에서는 군함 파견의 어조가 더 강해졌다.
군함 파견 요청을 받은 국가들은 이번 공격 결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에 대한 선제 공격이 궁극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을 더 안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요청에 의문점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동맹국도 아닌 중국에 군함 파견을 요청한 데 대해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공조'의 의미는 사실상 '공동 작전'을 펼치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현실성이 떨어지는 중국에 대한 군함 파견 제안은 이달 말 방중을 앞두고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에 중국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하라고 촉구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있다.
군함 파견 요청이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인 판단이었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민석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SNS 글을 올리기 하루 전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했지만 "이란과 관련한 구체적 논의나 지원, 도움 요청은 없었다"고 특파원 간담회에서 전했다. 김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J D 밴스 부통령과의 면담에서도 이란과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고 두 차례 말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총리를 만나기 직전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옛 국방부) 장관, 댄 케인 합참의장과 함께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김 총리에게 소개했다는 것이 김 총리의 설명이다.
이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사전에 보고받고도 이란 공격을 승인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이란이 먼저 굴복하거나 미군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중동 전쟁을 계기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NYT는 미군 지도부가 그간 인도·태평양이 미국의 안보 전략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매우 강조해 왔으나, 이번 전쟁을 계기로 이 지역 안보에 대한 미국의 약속에 이미 무리가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한국에 배치돼 있던 패트리엇 미사일과 사드용 요격미사일의 중동 반출, 남중국해에 배치돼 있던 항공모함 전단의 중동 이동, 호주군의 항공기·인력·공대공미사일 중동 지원, 일본과 대만이 주문한 무기의 인수 지연 전망 등을 그런 예로 꼽았다.
[워싱턴 최승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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