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일본 망명 10년 좌절의 세월… 상하이서 자객에 피살
7) 갑신정변 주역 공주 출신 김옥균 (下)
가난·절망 속 놓지 않은 조선 혁명·개화의 꿈
일본 정부 냉대… 홋카이도 등으로 쫓겨다녀
불운의 혁명가·풍운아·이단아 등 다양한 평가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한 고균 김옥균은 10년간 실의와 좌절, 울분, 자포자기, 암중모색의 불우하고 험난한 삶을 살았다. 정변 당시 일본에 크게 의존했고, 망명 후에도 도움과 지지를 기대했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일본에게 그는 조선에 아무 기반이나 힘도 없고, 활용 가치도 없는 식객에 불과했다.

조선과 일본은 갑신정변을 처리하기 위해 한성조약을 맺었다. 조선정부가 일본에게 정변에 개입한 것을 추궁하며, 망명자를 송환하라고 요구했지만 회담의 결과는 되려 조선정부가 일본에게 사과하고 보상금 10만 원을 지불하는 것으로 타결됐다. 조선은 계속 김옥균 등의 신병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범죄인 인도 조약이 없고 정치범은 인도하지 않는다며 송환을 거부했다. 고종에게 김옥균은 왕조를 무너뜨리려 한 대역죄인이요, 명성왕후(민비) 일파에게는 민영익 등을 해친 가문의 원수였다. 청나라 역시 김옥균을 제거 대상으로 여겼다. 일본과 손을 잡고 친청 세력인 민씨 일파를 몰아 내려는 위험인물로 판단했다.
김옥균의 내내 암살의 위협에 시달렸다. 조선정부는 그를 죽이려 집요하게 자객을 보냈다. 이 때문에 그는 이와타 슈사쿠라는 일본 이름까지 사용했다.
첫 번째 자객은 의친왕의 생모인 귀인 장씨의 오빠 장은규였다. 무관 출신의 그는 1885년 일본에 입국, 김옥균을 암살하려 했으나 거동을 수상하게 여긴 일본 경찰이 체포하여 추방함으로써 실패했다. 두 번째 자객 지운영은 고종으로부터 '참간상등(斬奸上等 역적을 베는 것이 가장 큰 공적)'이라는 밀지까지 받고 움직였다. 김옥균에게 접근하려고 편지를 보냈으나 김옥균이 이를 눈치채고 일본경찰에 제보, 강제추방됐다.
쌀 장사꾼으로 위장하여 일본으로 건너온 이일직은 쓰다라는 일본인을 고용하여 암살을 시도했고, 권재형 이명상 등이 유학생이나 상인으로 위장하여 김옥균을 죽이려 했다.
◇망명객 김옥균을 도운 일본인들

(사진설명)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메이지유신을 이끈 인물로 망명객 김옥균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등 도움을 줬다. 고토 쇼지로와 이누카이 쓰요시도 김옥균을 계속 후원했고, 슈에이는 김옥균의 유배지까지 찾아와 바둑을 뒀다.
망명객 김옥균을 아끼고 도움을 준 일본인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후쿠자와 유키치이다. 후쿠자와는 개화기 일본의 사상가 계몽가 교육가로 메이지유신을 이끌었으며 일본의 1만엔권 화폐에 실렸던 인물이다. 조선의 개화파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유길준 서재필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갑신정변을 지원하려 했고,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 등을 적극 도왔다. 도쿄에 도착한 김옥균은 그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고 숙식을 해결했다.
김옥균은 일본에게 계속 골칫거리였다. 1885년 일본과 청나라는 텐진조약을 맺고 조선에 주둔 중인 군사를 공동으로 철수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조선문제에 관한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하지 않았다. 이노우에 가오루 외무대신을 만나 갑신정변 당시 일본군의 일방적 철수를 항의하고 정치적 망명과 신변보호 등을 요청하려 했다. 이노우에는 조선정부가 계속 신병인도를 요구하는 데다 청나라와 충돌이 빚어질까 우려하여 면담을 거부했다.
그는 망명객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정치인이나 청년들에게 조선을 건너가 부패한 조정을 개혁, 개화를 시키겠다고 호언하고 다녔다. 1885년에 일어난 오사카 사건은 그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켰다. 김옥균과 가까운 고토 쇼지로 등 오사카의 자유민권 운동가들이 병력을 이끌고 조선으로 건너가 민씨 정권을 타도하고 조선을 개화시키겠다며 거사를 추진한 것이다. 일본정부는 반정부적 혁명가들의 돌출행동을 위험하게 여겼고, 가담자 139명을 검거했다.
김옥균이 이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1886년 8월 일본 정부는 그를 도쿄에서 1000km 떨어진 대평양의 절해고도 오사가사와라 섬으로 추방했다. 1888년 5월에는 북쪽의 혹한 지역인 홋카이도로 이송됐다. 엄격한 감시 속에 각기병과 신경통 등에 시달렸다. 훗날 총리가 된 이누카이 쓰요시와 지인, 각계 인사들이 도움을 줬지만 늘 궁핍했고, 고독과 절망감에 싸여 지내야 했다.
궁핍한 망명객 처지였지만 각계 인사와의 교류는 끊이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그를 조선의 개화와 근대화를 시도한 혁명가요 학식과 인품을 갖춘 고매한 인물로 여겼다. 그와 대화를 나누고 글씨를 받아가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일본 바둑계를 대표하는 본인방(혼인보) 슈에이는 오가사와라까지 찾아와 수개월 동안 바둑을 뒀다.

일본정부는 김옥균을 너무 가혹하게 대한다는 여론이 퍼지자 1890년 10월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옮겨줬다. 허나 여전히 잊혀진 혁명가이자 감시받는 망명객에 불과했다. 조선에서 보낸 이일직과 권수 등의 암살자가 계속 주위를 맴돌았다.

그가 여러 여성과 사귄 점도 눈길을 끈다. 홋카이도에서 만난 스키타니 오타마는 김옥균의 유배가 해제되자 도쿄로 함께 올라와 살았다. 술집에서 만난 마쓰노 나카와의 사이에는 사다코라는 딸까지 낳았다. 도쿄 망명 초기 거처를 제공했던 집안의 여성과도 가깝게 지내기도 했다. 김옥균이 암살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동료인 박영효를 이를 매우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궁핍과 실의, 좌절의 시간을 보내던 김옥균은 1894년 귀에 번쩍 띄는 제안을 받는다. 홍종우라는 인물이 청나라의 최고 실세인 리훙장을 만나서 담판을 짓고 동양3국의 협력과 조선의 개화를 도모하자고 꼬드긴 것이다. 홍종우는 프랑스 유학생 출신으로 고종과 민씨 일파가 보낸 자객이었다. 홍종우는 상하이로 가는 비용을 대며 이홍장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김옥균의 충성스런 제자 와다 엔지로와 수행원 사사키 세이조가 중국행에 동행했다.


그러나 김옥균은 1894년 3월 상하이 미국 조계의 동화양행 호텔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일본인 2명이 모두 밖으로 나간 틈을 타 홍종우가 침대에 있던 그를 권총으로 쏘아 죽인 것이다.

청나라 정부는 홍종우를 체포했지만 조선인 개인 간의 문제라며 아무런 조치도 않았다. 되려 군함까지 내주며 김옥균의 시체를 넣은 관과 함께 당당하게 귀국하도록 도왔다.
배에 실려 송환된 김옥균의 시신에 끔찍한 형이 가해졌다. 고종이 영정조 이래 사문화됐던 능치처사형을 적용하여 잔인한 복수극을 펼친 것이다. 김옥균이 시신은 4월 14일 서울 양화진 나루에서 두손과 두발, 머리, 몸통 6 토막으로 잘린 뒤, 그 머리가 '대역부도옥균(大逆不道玉均)'이라고 쓴 글귀와 함께 매달렸다. 서울주재 외교관들을 야만적인 처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앞다퉈 본국에 보고서를 올렸다.


김옥균을 계륵처럼 여겼던 일본은 이 죽음을 적극 이용하기 시작한다. 그를 청나라 간섭에 맞섰던 조선의 혁명가로 추켜세우며 미개한 조선을 일본이 직접 개화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또한 이 야만적인 사건의 배후에 청나라가 있다며 청나라를 조선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여론이 등장했다. 반면에 청나라는 고종과 민씨 일파를 위협하는 김옥균이 사라짐으로써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재확인했다고 안심했다. 조선을 둘러싼 일본과 청나라의 이러한 욕심은 불과 4개월 뒤 동학농민혁명으로 빚어진 청일전쟁으로 연결된다.
한국 근대사 인물 중에서 김옥균 만큼 다양한 평가를 듣는 사람도 드물다. '혁명가' '풍운아' '이단아' 등등 숫한 낱말이 동원된다. 그 앞에는 대개 '불운의'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한국 근대사에 이처럼 불행하고 파란 많은 삶을 살다간 인물이 또 있을까? 개인 한 사람으로 인해 조선과 일본, 청나라 3국의 정치와 역사가 요동쳤다. 갑신정변의 동지 박영효는 도쿄 아오야마 김옥균의 비문에 이렇게 적었다.
"아! 비상한 재주를 갖고, 비상한 시대를 만나, 비상한 공적도 없이, 비상한 죽음만 얻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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