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종전 ‘희망고문’ 되나… 트럼프 ‘총공세’에 꺾이지 않은 이란
하르그섬 공습에 이란 해협 봉쇄 더 강화
이란, UAE 항구 타격… 非미국자산 첫 타깃
트럼프, 호르무즈 파병 요구… 장기전 그림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장기전 국면으로 빠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동 국가들의 중재 시도를 일축하고 군사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이란 역시 공습이 중단되기 전까지는 협상에 응할 수 없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 중이다. 조기 종전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양측의 공세는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지난주 제기됐던 조기 종전 기대가 ‘희망고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오만과 이집트 등 중동 국가들이 제안한 휴전 중재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복수의 소식통은 로이터에 “백악관이 현재 협상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한 미국 고위 당국자 역시 같은 매체에 “지금은 전쟁을 계속해 이란의 군사력을 약화하는 데 집중할 때”라며 협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란 역시 협상에 부정적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테헤란 지도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습을 중단하고 영구적 공격 중단 및 피해 보상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한 휴전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란 내부에서도 협상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강경파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알리 라리자니 최고지도자 고문 겸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과 아바스 아라그치 외교장관이 오만을 통해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의 협상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이란의 한 고위 소식통은 “이전에 외교 채널을 통해 전달됐던 내용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며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잃으면 전쟁에서 패배한다고 믿고 있어 어떤 외교적 노력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군사 충돌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미군은 최근 페르시아만 북부의 하르그섬에 있는 이란 군사시설을 대대적으로 타격했다. 미 중부사령부는 엑스(X)를 통해 “해군 기뢰 저장시설과 미사일 벙커 등 90개 이상의 군사 목표물을 정밀 타격했다”고 밝혔다. 하르그섬은 이란 원유 수출의 약 90%가 처리되는 핵심 거점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곳을 “이란의 왕관보석”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미군은 석유 인프라는 의도적으로 공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조치가 에너지 시설 파괴전으로 전쟁이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하르그섬을 폭격하자 이란은 곧바로 보복에 나섰다. 중동 현지 매체와 로이터에 따르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원유 수출 거점인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항구를 드론으로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석유 저장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선적 작업이 일부 중단됐다. 푸자이라 항구는 하루 최대 180만 배럴의 원유가 송유관을 통해 공급되는 전략적 수출 기지로, 아시아와 유럽으로 향하는 중동 원유의 주요 관문이다.
이번 공격은 이란이 개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 자산이 아닌 시설을 직접 겨냥한 사례라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이란 중앙군사본부는 성명을 통해 “이란의 섬과 영토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UAE 항구와 미군 관련 시설을 타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도 국영방송 인터뷰에서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이 계속된다면 중동 내 미국 기업 또는 미국이 지분을 보유한 시설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같은 시기 바그다드의 미국 대사관도 공격을 받아 긴장이 고조됐다.
전선이 확대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에너지 수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해협 문제를 국제적 사안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과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을 거명하며 군함 파견을 요구했다. 그는 “이란의 해협 봉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이 군함을 보내 항로를 안전하게 유지해야 한다”며 “미국은 그 과정에서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상선 호위 임무를 제3국에 맡기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이란의 해안 방어망을 공격하는 데 집중하고, 실제 유조선 호위 임무는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맡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아직 공식적인 요청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각국의 군함이 실제로 파견될 경우 분쟁이 국제적 충돌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 입장에서는 에너지 안보와 군사 개입 리스크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호르무즈해협의 군사적 환경이 매우 위험하다는 점이다. 해협 연안의 산악지대에는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기지가 산재해 있어 유조선을 호위하는 군함은 곧바로 공격 표적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군 내부에서도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군 당국자들은 전쟁이 최소 수주 이상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결국 미국은 이란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공세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고, 이란 역시 해협 통제권을 사수하며 맞대응하겠다는 것이 현재의 전황이다. 협상의 출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중동 전쟁이 장기전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규화 대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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