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파병 압박에 깊어지는 고민… 李대통령, ‘노무현의 길’ 가나
2003년 노무현정부 이라크 파병 데자뷔
“명분보다 현실” 盧, 지지층 반발 뚫고 파병
李대통령, 동맹·국익·명분 사이 고민
항로 보호 넘어선 다국적군 성격 ‘국회 동의’ 변수
이재명의 실용주의식 절충안 찾기 관건
![중동에 파병된 병사들을 격려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연합뉴스 자료]](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5/dt/20260315173003706bqdw.png)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5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내라고 공개 압박하면서 이재명 대통령 앞에 23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주했던 ‘파병 딜레마’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진보진영의 강한 반발에도 ‘파병’을 택하는 실리를 택했다.
청와대는 15일 “한미 간 긴밀히 소통하고 신중히 검토해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동맹의 요구와 진보 진영의 반전 정서를 동시에 떠안게 됐다는 점에서 당시 이라크 파병 국면과 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무현 정부(참여정부)의 이라크 파병은 한 번에 이뤄진 결정이 아니었다. 시작은 2003년 3월 20일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개시 당일,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미국 입장을 지지하면서 공병·의료지원단 파병 방침을 밝혔다. 이어 3월21일 임시 국무회의와 국회 국방위 의결을 거쳐, 4월2일 국회 본회의에서 파병 동의안이 통과됐다. 당시 정부가 먼저 보낸 부대는 700명 규모의 서희·제마부대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4월2일 국회 연설에서 자신이 원래 명분을 중시해 온 정치인이지만, 이번에는 “나라와 국민의 운명”이 달린 문제라고 판단해 파병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정책브리핑에 정리된 당시 기록을 보면, 그는 미국과의 관계, 북핵 위기, 한반도 안보 환경을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명분만으로 버틸 수 없는 대통령의 선택이라는 논리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비전투병 파병으로 일단 봉합되는 듯했던 논란은 같은 해 9월9일 미국의 추가 파병 요청으로 다시 폭발했다. 정부는 10월18일 추가 파병 방침을 정했지만, 앞서 노 전 대통령은 10월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추가 파병 문제에 대해 “미국과의 우정, 경제에 미칠 영향, 비용과 명분, 한반도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면서도 “결코 조급하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개적으로는 신중론, 물밑에서는 결단 준비가 병행된 셈이다.
노무현 정부는 결국 12월17일 3000명 규모의 추가 파병을 확정했고, 12월23일 국무회의에서 3700명 규모의 추가 파병안을 의결했다. 이후 이 안은 2004년 2월13일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파병 부대의 성격을 ‘평화재건부대’로 규정하고, 한국군이 독자 지휘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명분과 현실 사이의 절충점을 만들려 했다. 미국의 전투병 1만명 파병 요청을 재건지원 임무 병력으로 낮춰 한국식으로 가공한 결과였다.
노 전 대통령은 훗날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이라크 파병을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보면서도 북핵 위기와 한미 공조라는 큰 판을 고려한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재명 정부가 마주한 장면도 구조는 비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한국·중국·일본·영국·프랑스 등을 거명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되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군함을 보내라고 공개 요구했다. 청와대는 이날 세계 원유 수송량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길목인 만큼 “국제 해상교통로의 안전과 항행의 자유는 국제법 보호대상”이라고 했지만, 아직 정부 채널을 통한 정식 요청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공식 청구서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 공개 압박부터 받은 것이다.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9일(현지시간) 아부다비 한 호텔에서 열린 아크부대 장병 격려 행사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대통령실]](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5/dt/20260315173005046eutk.png)
차이도 있다. 노무현 정부가 북핵 위기 속 한미관계 관리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번 호르무즈 파병 고민은 에너지 수송로와 실물경제 충격, 중동전 개입 논란이 한꺼번에 얽혀 있다. 앞서 2020년 문재인 정부 역시 미국의 호르무즈 파병 요구에 직면했을 때, 미국 주도의 호위연합(IMSC)에는 불참하고 청해부대 작전구역만 한시적으로 확대하는 ‘독자 파견’ 형식으로 실리를 택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2020년의 독자 대응과 달리 다국적군 성격이 강해 실제 파견이 이뤄질 경우 국회 동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아덴만 해역의 4400t급 대조영함(병력 262명) 투입이 거론되지만, 실질적인 교전 수역에 다국적군 일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부담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정치적 부담 역시 닮은꼴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민주노총이 거세게 반발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진보 성향 시민사회가 침략전쟁 부인 원칙을 내세워 파병 반대 입장을 냈다. 이재명 정부는 외교·안보 판단과 지지층 이탈 가능성을 동시에 계산해야 하는 처지다. 2003~2004년 참여정부는 ‘조급하지 않게 검토한다’고 말한 뒤 한국형 명분을 덧입힌 파병으로 선회했고, 2020년 문재인 정부도 이란 반발을 최소화하는 우회로를 찾고자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현재 청와대의 ‘신중 검토’ 입장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이재명식 절충안’을 모색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며 “무엇보다 파병에는 명분이 중요하고, 이란이 폭주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을 먼저 안심시킬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정 기자 kking152@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치매 앓는 손님 집까지 따라가 상습 추행…60대 콜택시기사 구속
- 바코드 스캔 않는 수법으로…1억2000만원어치 택배 훔친 30대 물류센터 직원
- “아들 명의 정부 비자금으로 갚을게” 60억 가로챈 부부 2심서 징역 15년·12년
- “단골 특징 기억하려고”…세신사, 남탕 손님 1000여명 불법 촬영
- ‘성폭행 의혹’ 뮤지컬배우 남경주…홍익대, 개강직전 교수직 직위해제
- 원안위, 국내 최초 원전 고리 1호기 해체 승인… 원전 해체 시장 열렸다
- "선생님, 보험 안 돼도 로봇수술로 해주세요"…수술 로봇 수입 1년 새 57% 증가
- 트럼프, 이란과 핵협상 한다면서 무력충돌 가능성도 제기
- 하반기 산업기상도 반도체·디스플레이 `맑음`, 철강·자동차 `흐림`
- `6조 돌파`는 막아라… 5대은행, 대출조이기 총력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