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한국인 “까만 ‘기름 비’ 내려…주민 90% 떠나 시위 올스톱”

지난 8일 아침 9시, 이란 테헤란에 사는 정시훈(31)씨가 잠에서 깼을 때 잠시 혼란에 빠졌다. 아침인데도 창밖이 매우 어두웠다. ‘내가 밤까지 잠을 잤나’ 생각했지만, 핸드폰 시계는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보니 하늘은 어둡고, 비를 맞은 차들에 검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인터넷을 뒤졌지만, 전쟁 첫날부터 차단돼 있어 뉴스를 볼 수 없었다. 소식이 밝은 이웃 이란인들에게 물어서야 전날 밤 테헤란 인근의 석유 저장고 4곳이 공격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연료 저장고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고 비가 되어 내린 것이다. “전쟁이 난 뒤로 폭격음이야 매일 들려서 그리 무섭진 않았는데, 생전 처음 검은 비를 보니 당황스러웠다.”
정씨는 지난 2022년 10월부터 테헤란대에서 페르시아어문학을 전공해 현재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지난 12일 주이란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이란을 빠져나오기까지 지난 1월 이란 반정부 시위와 최근 시작된 미·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을 모두 겪었다.
지난해 6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벌인 ‘12일 분쟁’ 이후 이란인들의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처음 이란에 교환학생으로 왔던 2018년보다 달러 대 이란 리알화 환율이 40배가 뛰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가 “석 달 전보다 생수값이 70% 올랐다” 같은 물가 이야기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가뭄이 심각해져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단수가 됐다.
이란 전역에 가득했던 물가에 대한 불만이 결국 시위로 번졌다. 테헤란시장 상인들이 시작한 시위는 지난 1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로 번졌다. 시위 당시 정씨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피해 최대한 집에 머물렀다. 시위에 휘말렸다가는 3년 반 동안 매진해온 학업을 접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있어도 도시를 울리는 시위대의 구호는 명확히 들려왔다.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같은 구호는 그간 여러 시위에서 들을 수 있는 평범한 구호였다. 하지만 “레자 팔레비 만세”라는 구호는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구호였다. 레자는 1979년 이슬람 혁명 당시 미국으로 망명한 팔레비 왕조의 왕세자로, 이란 내에선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인물이다. 정씨는 “왕정이 돌아오길 바란다기보단 제대로 된 야당이나 시위의 구심점이 없는 시위대가 현 정권을 반대해서 외치는 구호로 들렸다”고 말했다.
특히 1월 8~9일 시위가 격렬했다. 레자 팔레비가 모두 모이라고 한 그 시각이었다. 사람들이 광장이나 사거리 같은 거점들에 모여 구호를 외치면 총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30분이 지나면 사람들은 다시 모여 구호를 외쳤다. 다시 총격이 벌어지면,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가 창문을 열어놓고 구호를 외쳤다. 정씨가 사는 지역은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시위 열기가 뜨거웠다.

반정부 성향인 사람들은 희망에 차 있었다. 그들은 “이슬람 정권이 무너지는 역사의 현장에 우리가 도달한 것 아니냐.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낙관적인 말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유혈진압으로 수천명의 사람이 죽은 뒤(정부 3117명, 인권활동가통신 7007명), 시위는 잦아들었다.
지난달 28일, 전쟁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삼엄해졌다. 군인과 경찰이 나타나 검문을 했고, 대공포를 실은 차 등 군용차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매일 폭격음과 전투기 소음, 무인기가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씨가 머무는 지역에 폭탄이 떨어지진 않았다. 정씨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 정확도가 매우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전쟁이 터졌는데도 테헤란 시민들은 침착한 모습이었다. 전쟁 발발 당일 상점에서 수백통 쌓여 있던 물과 생필품이 금방 사라지기는 했지만 생수는 금방 보충됐고, 이후 사재기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슬람 안식성월인 라마단 기간이라 낮에는 식당들이 운영하는 곳이 많지 않았지만, 밤이 되면 문 여는 음식점이 꽤 있어 식사를 해결하기 어렵지 않았다. 배달을 시켜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정씨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많아서 전쟁에도 배달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곧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테헤란 시내에서 차량 통행량이 90% 이상 줄었다. 주민들은 국외로 가거나 지방으로 떠났다. 같은 건물에 사는 지도교수도 가족들은 전쟁 전에 제2도시인 마슈하드로 떠났다. 식당에서 정씨를 만난 이란인들은 “왜 너는 안 떠나고 남아 있느냐”며 의아해했다.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다고 했다가, 결국 이란력 새해 1월1일(양력 3월21일)까지 수업을 하지 않는다고 공지했다. 이란이 공습당한 지난달 28일 밤부터 구글, 유튜브, 인스타그램 같은 국외 인터넷 서비스 연결이 끊겼다. 이란 국내망으로 이란 언론사 뉴스를 보거나, 배달·택시 호출 서비스 정도만 이용할 수 있었다.

전쟁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엇갈렸다. 친정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전쟁 전부터 전의를 다졌다. “이번에 전쟁이 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6월 ‘12일 분쟁’ 때처럼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중동 전체로 확전될 것이다. 중동의 미군기지와 이스라엘은 공격받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반정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이스라엘이 이번 전쟁으로 이슬람 정권을 무너뜨려주길 바랐다. 정씨는 “이라크나 리비아의 사례를 봤을 때 외세의 힘을 빌려 정권을 바꾸는 건 장기적으론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이란 3대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에 대해서도, 친정부 성향 사람들은 아버지이자 2대 최고지도자였던 알리 하메네이가 순교한 것으로 모즈타바에게 집권의 정당성이 있다며 충성을 다짐했다. 반정부 성향의 사람들은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다. 기대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쟁을 시작하며 이란인들에게 정권을 전복하라고 종용했지만, 오히려 시위가 더 어려워졌다. 정씨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투기가 테헤란 어디를 폭격할지 모르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시위에 나오겠냐”며 “90%의 사람들이 테헤란을 떠나서 시위에 나올 사람들도 없다”고 했다.
애초 정씨는 학업을 놓을 수 없어 지난 2일 대사관이 주도한 1차 교민 탈출에 합류하지 않고 테헤란에 남았다. 거주 지역에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목표가 될만한 군사 시설이나 공공기관이 없어 크게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지난 5일 한국 외교부가 이란 전역에 여행과 체류를 금지하는 최고 수준의 여행경보 4단계를 발령해 어쩔 수 없이 테헤란을 떠나야 했다. 그는 지난 11일 새벽 테헤란을 출발해 동쪽 마슈하드에서 1박을 하고, 12일 투르크메니스탄으로 이동했다. 이어 타이 방콕을 거쳐 15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씨는 “대사관 직원들이 본인들은 떠나지 못하면서도 버스 대절에 호텔 숙박까지 도와줘 교민 7명이 안전하게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전쟁이 끝나면 다시 학업을 마치기 위해 이란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그는 “이란 정부가 결사항전 의지를 다지고 있어서 전쟁은 길어질 것 같다”며 “시민들은 안 그래도 고물가인데 일하러 나가지도 못하고 이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빨리 전쟁이 종식돼서 일상을 되찾길 바란다”고 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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