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군함 보내라’ 하니…영국은 즉답 회피, 프랑스는 묵묵부답

천호성 기자 2026. 3. 1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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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구축함 ‘HMS 드래곤’이 지난 10일 영국 남부 포츠머스 해군 기지에 정박한 모습. 이 군함은 키프로스 영공 방어를 위해 동부 지중해로 이동할 예정이다. AFP 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요구에 유럽은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영국은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확답을 피했고, 프랑스는 중동에서 “방어적” 임무만 수행 중이라는 입장을 반복한다.

로이터 통신과 르몽드에 따르면, 영국 국방부 대변인은 14일(현지시각) “우리는 앞서 밝혔듯, 동맹국·파트너들과 함께 이 지역(호르무즈 해협) 해상 운송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 등도 함정을 보내 이 수로가 더는 위협받지 않도록 하기를 바란다”고 쓴 데 대해 영국 정부가 낸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 요구대로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낼지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영국은 이란이 이 해역에 깔고 있는 기뢰를 제거하기 위한 다른 지원은 염두에 두고 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영국군이 중동 주둔 영국 해군에 기뢰 제거용 드론(무인기)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이날 보도했다. 지난 12일 존 힐리 영국 국방장관은 “어떤 해역에서든 전쟁 중 기뢰 제거 작업은 매우 어렵다”며 “동맹국들과 함께 배치할 수 있는 추가적인 선택지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프랑스는 트럼프 대통령 요구에 별도의 반응을 내놓지 않은 채 신중한 태도다. 프랑스는 지중해 동부 키프로스 해역에 항공모함 샤를드골과 전투기 약 20대, 호위함 8척 등을 배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호르무즈해협은 배로 열흘 거리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 함대가 향후 다른 국가들과 함께 호르무즈해협 상선들을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지난 9일 밝혔다. 그러면서도 작전 시점은 전쟁 도중이 아닌 “분쟁의 가장 격렬한 단계가 끝난 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13일에도 “우리는 누구와도 전쟁 중이지 않다”며 “프랑스의 입장은 순전히 방어적이며 (프랑스군을 향한) 그 어떤 공격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전쟁이 한창인 호르무즈 해협 일대로 항모 전단을 당장 전개하거나, 이란 본토 공습에 동참할 계획은 없다는 얘기다.

그리스 해군의 프리깃함이 11일 키프로스 일대에서 초계 중인 모습. 그리스는 동맹국인 키프로스 영공 방어를 위해 군함과 전투기를 파견했다. AP 연합뉴스

다른 유럽 국가들도 군사력을 지원하는 데는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스위스 정부는 이날 성명을 내어, 미 군용기의 영공 통과 요청 두건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전쟁 당사국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중립국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게 한 국제법을 들어 미국 요청을 거부한 것이다. 이탈리아 역시 지난 12일 이라크 에르빌의 자국군 기지가 이란제 샤헤드 드론 공격을 받은 뒤, 이라크 주둔군을 본국으로 일시 철수시키고 있다.

유럽이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건 자국군 손실 위험이 큰 데다, 중동에서 장기전을 치를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리베라시옹은 “프랑스군 항공모함이 (호르무즈해협 보호를 위해) 당분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가능성은 낮다. (기동할 공간이 좁은) 운하에서는 항공모함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라며 “또 중동에서의 새로운 임무는 이미 부족한 프랑스군 탄약 재고를 크게 소모할 것”이라고 짚었다. 제롬 벨랑제 프랑스 항공우주군 사령관은 최근 “탄약 문제는 군 참모총장과 국방장관에게 최우선의 숙제”라고 말했다.

이 전쟁에 발 담그지 말라는 국내 여론도 각국 정부에 부담스럽다. 이날 이탈리아 로마에선 시민 수천명이 가두 행진을 벌이며 미국·이스라엘이 벌이는 전쟁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를 향해선 이 전쟁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여론조사 기관 유거브의 최근 조사를 인용해, 영국 국민 중 ‘영국군이 이란 공격에 동참해야 한다’고 밝힌 사람의 비율은 8%에 그친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치권에선 4월 말 예정된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미국 국빈 방문을 취소해 전쟁에 항의하자는 주장도 인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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