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갑부’ 꿈 이뤘는데…거리예술가 뱅크시 정체 드러났다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6. 3. 1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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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미술계 최대 미스터리 파헤쳐
英 그라피티 예술가 로빈 거닝엄 지목
뉴욕 체포기록·뱅크시 동선 일치 근거
2008년 폭로 후 데이비드 존스로 개명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인 ‘이브닝 스탠다드’와 ‘메일 온 선데이’가 2004년 공개한 그라피티 아티스트 로빈 거닝엄. 로이터 통신은 이 남자를 뱅크시로 추정했다. [엑스]
비밀에 싸인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의 정체가 영국 브리스톨 출신 그라피티 아티스트 로빈 거닝엄일 가능성이 크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로이터가 13일(현지시간) 수십 년 동안 신원을 숨기고 활약하며 미술계 최대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뱅크시의 실체를 밝히는 탐사 보도를 게재했다.

로이터는 수년에 걸친 조사 끝에 “뱅크시로 알려진 익명 거리 예술가는 1973년생 브리스톨 출신 로빈 거닝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라고 밝혔다. 로이터는 경찰 기록, 여행 기록, 인터뷰, 기업 공시 자료 등을 종합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제시했다. 다만 뱅크시 본인이나 그의 법률 대리인은 이번 보도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뱅크시는 1990년대 영국 브리스톨의 그래피티 문화에서 등장한 뒤 정체를 철저히 숨긴 채 활동해 온 인물이다. 그는 스텐실 기법을 활용한 정치적 풍자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전쟁, 소비주의, 난민 문제 등을 다룬 작품들은 거리 벽화에서 시작해 현대 미술 시장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정체는 수십 년 간 베일에 싸여 있었다. 영국 방송인 닐 뷰캐넌, 뮤지션 로버트 델 나자(매시브 어택 멤버)라는 설부터 여러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가명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로이터는 이번 조사에서 특정 개인을 지목하는 데 필요한 문서와 기록들이 상당 부분 축적됐다고 설명했다.

로빈 거닝엄이 2000년 뉴욕 허드슨 스트리트 675번지에서 그라피티 작업을 하던 중 체포된 미완성 패션 광고판. 그의 전 매니저가 게시한 사진에 담긴 모습이다. [스티브 라자리데스의 인스타그램]
로이터가 제시한 가장 유력한 증거는 뉴욕 체포 기록이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2000년 9월 뉴욕 맨해튼에서 광고판을 훼손한 혐의로 체포된 남성이 있었다. 사건은 패션위크 기간 중 맨해튼 허드슨 스트리트의 한 건물 옥상 광고판에서 발생했다. 경찰은 당시 광고판을 변형하려던 남성을 현장에서 체포했으며 피해액은 1500달러 이상으로 추정됐다. 사건은 초기에는 중범죄로 처리됐지만 이후 경범죄로 감경됐다. 문제의 인물은 경찰 조사에서 광고판에 “유머러스한 수정”을 가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문서에 남은 이름이다. 경찰 기록과 자필 진술서에는 로빈 거닝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로이터는 당시 사건과 관련된 사진과 장소, 시점 등을 분석한 결과 이 인물이 뱅크시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했다.

2008년 영국의 두 타블로이드 신문 ‘이브닝 스탠다드’와 ‘메일 온 선데이’가 뱅크시의 정체로 폭로한 로빈 거닝엄. [각 언론사]
거닝엄은 2008년경 자신의 신원에 대한 추측이 확산되자 법적으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이름은 데이비드 존스로 추정된다. 당시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메일 온 선데이와 이브닝 스탠다드는 뱅크시의 정체로 로빈 거닝엄을 지목한 바 있다.

2017년에는 음악 프로듀서 골디가 뱅크시를 언급하며 ‘롭(Rob)’이란 이름으로 지칭해 화제가 됐다. 당시에는 뮤지션 로버트 델 나자의 애칭이라는 추측에 불을 붙였지만, 로빈 거닝엄 역시 롭으로 부를 수 있어 로이터의 분석에 힘을 보탰다.

로이터는 이후 기업 문서와 여행 기록 등을 분석한 결과 거닝엄과 같은 생년월일을 가진 데이비드 존스라는 인물이 뱅크시 주변 인물들과 함께 이동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대표적 사례가 2022년 우크라이나 벽화 작업 당시의 이동 기록이다. 뱅크시가 우크라이나에서 작품을 제작하던 시기 그의 협력자들과 같은 일정으로 이동한 인물 가운데 데이비드 존스가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우표로 발행한 뱅크시의 ‘푸틴 엎어치기’ 벽화. 해당 벽화는 우크라이나의 파괴된 건물에 그려졌다. [EPA연합뉴스]
로이터 보도는 뱅크시의 정체뿐 아니라 그의 사업 구조도 함께 조명했다. 조사에 따르면 뱅크시는 최소 7개의 영국 기업과 연결돼 있으며, 이 가운데 핵심 조직은 2008년 설립된 페스트 컨트롤 오피스(Pest Control Office)다.

이 기관은 뱅크시 작품의 진위를 인증하는 유일한 공식 기관이자 사실상 작가의 사업 운영 조직 역할을 한다. 모회사는 과거 런던에서 갤러리를 운영했던 픽처스온월스(Picturesonwalls Limited)다. 기업 공시 자료에 따르면 페스트 컨트롤의 자산은 2009년 약 24만 파운드(약 4억7500만원)에서 2024년 약 570만 파운드(약 113억원)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현금으로 기록돼 있다.

뱅크시 작품은 지난 20여 년 동안 미술 시장에서 폭발적인 가격 상승을 경험했다. 미술 시장 조사기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이후 뱅크시 작품의 재판매 시장 규모는 약 2억4880만 달러(약 3729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재판매 시장은 작품이 최초 판매된 이후 다시 거래되는 시장을 의미한다.

이 거래액 가운데 작가가 직접 얻는 수익은 제한적이다. 대신 뱅크시는 VIP 컬렉터들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 판매를 통해 직접 수익을 얻는 것으로 알려졌다.

뱅크시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꽃을 던지는 사람’ (2003).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베이트사후르 근처의 쓰레기장 한편에 그렸다. [미술문화]
로이터는 2024년 런던 쇼디치의 한 지하 공간에서 열린 비밀 전시에서 일부 작품이 최대 50만 파운드에 판매됐다고 보도했다. 이 행사에 초대된 구매자들은 일정 기간 재판매 금지와 비밀 유지 계약에 서명해야 했다.

그러나 로이터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뱅크시의 정체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뱅크시와 그의 변호사, 그리고 관련 기관들은 이번 보도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한편 1990년대 브리스톨 거리에서 활동을 시작한 뱅크시는 스텐실 그래피티를 통해 빠르게 주목받았다. 전쟁과 권력, 소비주의를 풍자하는 작품들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그의 작품은 이후 세계 주요 도시 벽면과 미술관, 경매장에서 동시에 등장하는 독특한 현상을 만들어냈다. 2018년 런던 경매에서 작품이 낙찰 직후 액자 속 장치로 자동 파쇄된 사건은 미술 시장을 뒤흔든 대표적 퍼포먼스로 기록된다.

2018년 16억9000만원에 낙찰된 직후 파쇄기에 의해 절반가량 잘려 나간 뱅크시의 작품 ‘풍선과 소녀’. 해당 작품은 3년 뒤인 2021년 20배에 가까운 1840만 파운드(약 304억원)에 팔렸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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