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월드컵 뒤 ‘귀국 거부’…국제대회 때마다 반복된 ‘탈출의 순간들’ [나우, 어스]

서지연 2026. 3. 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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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자축구 대표팀 일부 호주서 망명 신청
국가 연주 침묵 시위 뒤 귀국 거부 결정
올림픽·세계대회, 정치 망명 통로로 반복
냉전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스포츠 탈출’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참가 이후 호주 정부의 망명 신청을 수락했다. 사진은 경기 전 단체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 [로이터]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 여러 명이 호주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 참가 이후 귀국을 거부하고 현지에 머무르기로 하면서 국제 스포츠 대회가 정치적 망명의 통로가 되는 사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 중 일부는 대회 참가를 위해 호주 골드코스트를 방문한 뒤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호주 정부에 망명 의사를 전했다.

선수들은 대회 첫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침묵으로 항의 의사를 표시했다. 이 장면은 경기장 안팎에서 큰 관심을 끌었고, 이란 내부에서는 강한 반발도 이어졌다. 일부 보수 인사들은 선수들의 행동을 비판하며 처벌을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은 AFC 여자 아시안컵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제 스포츠 대회 참가 이후 선수들이 귀국을 거부하고 망명을 선택하는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반복돼 왔다.

국제 대회는 오랫동안 정치적 탄압이나 체제 문제로 고국을 떠나려는 선수들에게 사실상의 탈출 기회로 작용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이다. 당시 소련이 헝가리 민주화 봉기를 무력으로 진압한 직후 열린 이 대회에서 헝가리 선수단 일부는 귀국을 거부하고 서방 국가에 남았다. 당시 40명 이상의 헝가리 선수와 관계자들이 망명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 헝가리와 소련의 수구 경기에서 헝가리 선수 에르빈 자도르가 부상으로 피를 흘리고 있다. 이 경기는 냉전 갈등 속에서 벌어진 ‘수영장의 피’ 사건으로 불린다. [AP]

특히 헝가리와 소련의 남자 수구 준결승전은 냉전 긴장이 그대로 폭발한 경기로 기록됐다. 양 팀 선수들은 물속에서 발길질과 몸싸움을 벌이며 격렬하게 충돌했고, 헝가리가 4대0으로 승리했다. 이 경기는 피가 물속에 번진 장면 때문에 ‘수영장의 피(Blood in the Water)’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일부 헝가리 선수들은 올림픽 이후 호주에 남았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테니스 선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그는 1975년 US오픈 참가 도중 미국 망명을 선택했다. [AP]

개별 선수의 망명 사례도 이어졌다. 1975년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테니스 선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US오픈 참가 도중 미국 망명을 선택했다. 당시 18세였던 그는 체코 당국이 해외 대회 출전을 제한하려 하자 자유롭게 선수 생활을 하기 위해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나브라틸로바는 이후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로 성장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소련 다이빙 선수 세르게이 넴차노프가 대회 후 캐나다에 남겠다고 발표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다만 그는 몇 주 뒤 결정을 번복하고 소련으로 돌아갔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개막식에서 이라크 국기를 들고 입장했던 역도 선수 라에드 아흐메드가 대회 도중 미국 망명을 신청했다. 그는 당시 사담 후세인 정권 아래에서 종교적 박해를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도 국제 대회 이후 선수들의 망명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2018년 호주에서 열린 골드코스트 영연방 경기대회에서는 200명이 넘는 선수와 관계자들이 호주 체류를 신청하면서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로 카메룬과 우간다 등 아프리카 국가의 선수·임원들이 망명을 희망했는데, 이유는 자국의 정치적 불안·인권침해·박해 위험 등이었다. 카메룬은 대표단의 3분의 1가량이 선수촌을 이탈했고, 우간다도 최소 2명 이상이 경기 중 혹은 직후에 이탈해 망명을 받아달라 호소했다. 실제로 당시 카메룬은 정부가 영어권 분리주의 운동을 탄압하고 반정부 시위를 강경진압하면서 수만 명이 난민이 된 상황이라, 영어권 출신 선수·관계자들은 귀국 시 체포와 보복을 우려했다. 우간다, 시에라리온 등도 내전 후유증 등으로 귀국 이후 안전을 부장받지 못한다며 많은 선수·관계자들이 망명을 요청했다.

2019년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당시 망명을 신청한 230명 중 217명의 1차에서 거절됐다. 이 중 소수는 자진 귀국했고, 일부는 항소하거나 이민구금 상태에 남은 것으로 보도됐다.

벨라루스 단거리 선수 크리스티나 치마노우스카야가 2021년 도쿄 올림픽 당시 일본 공항에서 경찰 보호를 받고 있다. 그는 이후 폴란드로 망명했다. [로이터]

또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벨라루스 단거리 선수 크리스티나 치마노우스카야가 대표팀과 갈등을 빚은 뒤 폴란드로 망명했다. 당시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정권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와 야권, 언론 뿐 아니라 체제에 비판적인 운동선수까지 탄압해온 상황이었다. 올림픽 도중 치마노우스카가 인스타그램에 코치진과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자 벨라루스 올림픽위원회는 선수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경기 중 그를 데리고 나와 사실상 강제 귀국을 시도했다.

치마노우스카야는 귀국하게 되면 정부가 자신을 교도소나 정신병원에 보낼 것이라며 공항에서 일본 경찰과 공항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유엔 난민기구와 여러 유럽 국가 외교관이 개입하면서 폴란드로 망명하게 됐다. 그는 이후 세계육상연맹으로부터 예외규정을 인정받아 2023년 폴란드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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