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안으로 파고드는 불확실성의 공포 《차임》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불확실성은 그 실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기에 더욱 두렵게 다가온다. 그저 평온해 보이는 수면 아래 고요히 잠자고 있던 것들이 떠오를 때,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들, 현실과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뒤섞이며 남기는 잔흔들을 감지하는 일.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공포 영화들은 언제나 이 지점에 자리한다.
영화가 만든 좌표 사이를 부지런히 탐색하다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 이전과는 다른 공기를 느끼고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쩌면 그때부터가 구로사와 기요시의 세계와 진정으로 마주하는 시작의 순간일지 모른다.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부문에서 첫선을 보였던 《차임》은 그의 연출 초기작으로의 진화된 회귀이자 감독의 영화 영토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터널 같은 작품이다.

광기의 전염, 오작동하는 사람들
강사 마츠오카(요시오카 무쓰오)의 시연과 수강생들의 실습으로 분주한 요리교실 한구석에 타시로(고히나타 세이이치)가 있다. 그는 마츠오카의 지도를 거의 무시한 채 우두커니 서있거나 제멋대로의 칼질을 멈추지 않는다. "선생님은 들리세요?" 귓가에 들리는 차임벨 소리가 자신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타시로의 말을 마츠오카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알 수 없는 광기를 보이던 타시로가 이윽고 스스로 칼을 들어 자기 자신을 해한 순간, 요리교실 안에서는 수강생들의 비명이 터져 나온다.
이즈음 마츠오카는 한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 자리를 제안받고 몇 번의 면접을 봤다. 자신의 수업과 타고난 미각에 자부심을 가지고 설명하던 그의 태도는 점차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의 강박으로 바뀌어간다. 그리고 요리교실에서 또 한 번의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엔 마츠오카가 타인을 향해 칼을 쥔다. 타시로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마츠오카에게만 이상행동이 시작된 걸까. 그렇게 보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예컨대 카페 안 자리에서 말없이 일어나 다른 테이블로 저벅저벅 걸어간 뒤 다른 손님을 해하려다 제지당하는 한 남자는 마츠오카와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시작된 일종의 전염과 같았다. 그것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고, 미리 적절한 대응책도 찾지 못해 무력하게 오작동하는 사람들. 태연하게 시작된 폭력과 공포에 잠식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차임》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초기 대표작인 《큐어》(1997)와 《회로》(2001) 같은 작품을 떠오르게 한다. 이들의 이상행동은 새로운 동기가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들이 어떤 발화점을 만나 폭발력을 갖는 것에 가깝다. 사람들에게 "의식을 퍼트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며 망가진 세상을 치유하겠다는 목적을 가졌던 《큐어》의 마미야(하기와라 마사토). 평범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마미야가 그들을 만나서 했던 행동은 단 하나였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 물음은 곧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야쿠쇼 고지)에게도 돌아온다.
가족 공동체는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처음에는 단란한 세 식구의 평범한 식사 시간처럼 보이던 풍경도 《차임》의 카메라 안에서는 돌연 이질적인 공기로 뒤바뀐다. 아들은 갑자기 멈추지 않는 웃음을 터뜨리고, 아내는 갑자기 밖으로 나가 한가득 모아둔 캔을 분리 수거하기 시작한다. 재활용함으로 떨어지며 부딪히는 금속성이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하는 가운데서도 마츠오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게 밥을 먹기만 할 뿐이다. 한 공간에 있지만 함께한다고 말할 수 없는 개인들이 각자의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이 무심하게 화면을 가로지른다.

무엇을 듣고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영화 초반에 타시로가 차임벨 소리를 언급한 것은 《차임》이 관객에게 자동적으로 거는 주문과도 같다. 어쩌면 소리를 통해 살의가 전달될지 모른다는 오인이 마츠오카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몫으로 주어진다. 독특한 것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은 문제의 차임벨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마츠오카와 타시로가 같은 소리를 들은 것인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을뿐더러, 또렷한 사운드로 차임벨의 존재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는 역설적으로 소리를 향한 민감한 반응을 촉발한다. 들리지 않음으로써 인지하려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청각적 긴장감의 부여는 《차임》의 중요한 장치다. 요리교실 건물 밖으로 지나는 전차의 덜컹거림, 나란히 줄지은 스테인리스 테이블에 무언가가 부딪힐 때 발생하는 소리와 날카로운 요리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 마츠오카의 아내가 쏟아내는 알루미늄캔과 아들이 손에 쥔 금속 큐브의 소리는 무수한 일상적 소음에 불과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게 귀에 와닿는다. 애초에 차임벨 자체는 몹시 평범한 소리다. 타시로가 들었다는 소리는 그의 환청에 불과한가, 아니면 명확하게 들리는 소리지만 그것이 관객에게까지 닿지 않는 것인가. 혹시 작은 소리라도 잡아챈 누군가가 있는가. 이미 곳곳에서 우리에게 울리는 경고음은 아닐까.
적나라한 과시 하나 없이 음습하고 초자연적인 공포를 연출하는 것 역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오랜 장기 중 하나다. 텅 빈 의자 하나로 사람들을 비명 지르게 하는 존재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4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최대한 간결한 청각과 시각 요소들을 배치했지만, 그 안에서 발휘되는 연출의 밀도는 탁월하다. 거울과 인터폰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는 마츠오카에게 그 순간은 자기 인식의 경험일까, 그 너머에 있는 미지의 존재 혹은 설명할 수 없는 정념과 조우하는 순간일까. 《차임》의 세계관 안에서 명확한 인과를 지닌 일관성의 법칙은 개인과 공동체를 구원하는 데 무용하다. 세상의 많은 일은 그저 우연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회의적이고 서늘한 실감이야말로 이 모든 공포를 갈무리할 수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그 무엇이다. 그러니 당신은 무엇을 선택해 듣고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세계 안에서 여전히 유효한 게임의 법칙이다.
한국에서는 본편에 감독의 대담 형식을 더해 80분짜리 장편 형태로 개봉했지만, 앞서 일본에서는 '로드스테드'에서의 판매와 일부 미니시어터 개봉을 거쳤다. 로드스테드는 온라인 플랫폼이지만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니라 일련번호를 매긴 본편 영상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구매자는 재판매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대여할 수도 있다. 일련번호 판별을 통해 수익금 중 일부의 배급권료가 배급사에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한국에는 근 몇 년 사이에 극장에서 짧은 단편을 2000원 내외의 금액을 지불하고 관람할 수 있는 '스낵무비' 형태가 등장했다. 《밤낚시》(2024)가 대표적인 예다. 긴 러닝타임을 고수하는 대신 핵심적 아이디어를 밀어붙이는 영화적 실험들의 개봉 사례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전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극장가에 찾아온 새로운 풍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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