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적 민주시민 교육 확장을 위한 조건, 시민사회와 연대

이정원 2026. 3. 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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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문화] 다원적 민주시민 교육의 조건인 새로운 ‘헤게모니’
-제주4.3평화인권교육을 중심으로<2>

1967년 출범한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은 제주대학교 최초의 법정연구소라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 특히 학술지 '탐라문화'는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지 선정, 인문사회연구소지원사업선정 등 제주에 대한 연구를 세상을 알리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했다. [제주의소리]는 탐라문화연구원과 함께 '탐라문화' 논문들을 정기적으로 소개한다. 제주를 바라보는 보다 넓은 창이 되길 기대한다. 연재분은 발표된 논문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제주4.3은 오랜 시간 국가가 강제한 '반공주의'의 헤게모니에 묶여 있었다. 헤게모니에 대한 시민사회의 투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계기는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이다. 4.3특별법 제정, 진상조사보고서 발간 등의 성과를 거둔 2000년대 이후부터 4.3은 평화와 인권으로 상징되는 '화해·상생' 담론이 4.3의 관념을 구성하는 헤게모니가 되었다.

시민 사회의 활기와 달리 교육계는 새로운 헤게모니를 교육 과정에 반영하는 데 주저하였다. 가장 큰 이유는 오랫 동안 교사들의 삶에 누적된 '반공주의' 헤게모니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 이후 반세기 동안 4.3 역사 인식은 '공산 폭동론'이어서 국가 교육에서 일절 언급되지 못하였다.

4.3교육은 진보·민주 성향의 이석문 교육감이 교육감으로 취임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제주도교육청은 2015년부터 매해 3월말부터 4월까지 약 1개월 동안 '4.3평화·인권교육 주간'을 운영하고 있다.
오름중 4.3평화인권주간. 사진제공=오름중학교

교육 주간 동안 학교는 4.3교육과정을 편성, 시행하고 있다. '4.3 동백꽃 배지 달기', '체험 중심 4.3평화인권교육활동', '4.3추념식 참석 및 마을 연계 4.3유적지 기행', 문화예술과 접목한 4.3교육 및 4.3유관행사 연계 활동' 등도 실시한다.

2017년에는 교육청 차원의 '초·중등 4.3평화·인권교육 교재'를 발간하여 초·중·고 교육 과정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4.3유족회와 연계하여 4.3유족을 명예교사로 위촉, 4.3교육 주간 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4.3을 교육하는 '4.3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제'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 교사와 함께하는 4.3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 수업. 사진제공=제주도교육청

그러나 제주4.3평화인권교육도 지배 이데올로기에 묶여 한계를 드러냈다. 이데올로기를 관철하려 하는 경제적 상부 구조, 정치권에서부터 4.3교육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정치권은 낡은 헤게모니를 소환하기 위하여 '교육의 객관·보편성', '교육의 균형'이라는 다른 형태의 담론을 생산했다.

4.3과 '반공주의'를 동일시하기 위한 전략으로 4.3교육과 '통일·안보 교육'을 대비하는 담론을 구성하기도 했다. 이러한 헤게모니 소환 전략은 다양한 관점의 4.3평화인권교육 가능성을 교육청이 스스로 차단하는 한계로 나타났다.

제주도교육청은 4.3의 역사적 사실을 '4.3진상조사 보고서'에 근거해 기초적인 부분만 가르치기로 하면서 다양한 담론과 헤게모니가 생성·교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이는 '다원적 민주시민 교육'으로 진전을 위해서는 다른 차원의 헤게모니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시민 사회의 헤게모니 투쟁은 4.3 헤게모니의 전환과 진보·민주 성향 교육감 당선, 4.3평화인권교육 지형 조성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낡은 교육 헤게모니 투쟁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4.3교육이 기대 만큼 확장하지 못하고 교육 현장과 시민사회의 인식 괴리가 벌어지는 문제가 나타난다.

'다원적 민주시민 교육'은 아이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다양한 사회 및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적 총체성을 내면화하고 성찰하는 과정이다.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사 스스로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내면화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거쳐온 역사적 과정과 지금 나타나는 다양한 현안·사건에 대해 양극단을 포함한 다양한 관점을 교사들이 경험·성찰하면서 민주 역량을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다양한 관점과 입장을 수용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것이 기반이 되면 교사는 역사·정치 사안에 대해 아이들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의 안내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교사들의 민주적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연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가운데 독일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를 준용한 '한국형 민주 시민 교육 원칙'을 수립하자는 제안도 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세 가지 원칙으로 구성되었다. ①주입 금지 ②논쟁성 재현 ③이해관계 인지 및 학생 중심 원칙이다. '주입 금지'는 어떠한 수단을 동원하여 학생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거나 학생의 자율적 판단을 방해해선 안된다는 원칙이다.

'논쟁성 재현'은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에서도 역시 논쟁으로 나타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해관계 인지 및 학생 중심 원칙'은 학생들이 특정한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익을 분석하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비추어 주어진 정치 상황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한국에 적합한 대안인지에 대한 논쟁도 있다. 탈이념·탈근대가 가속화하고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따라 '초인류' 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되는 지금에도 보이텔스바흐 협약이 유효할지에 대한 질문이 있다.

결국 한국 사회에 맞는 민주시민 교육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충돌하며 낡은 헤게모니와 성공적으로 투쟁했던 경험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다원적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새로운 헤게모니를 만들어야 한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교육계와 시민사회의 연대에 의한 강력한 저항·투쟁으로 인하여 국가 주도의 반공주의적 역사 교육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4.3집필기준 반영된 2020 한국사 교과서 발간 내용. 동아출판사

연대의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행 역사 교과서 발행제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공론장을 만들었다. 이를 통하여 역사 교과서를 포함한 초·중·고 교과서를 '자유발행제'로 편찬해야 한다는 합의점을 도출하였다. 이 합의는 정부의 정책 방향을 바꾸는 새로운 헤게모니가 되었다.

낡은 헤게모니는 해방 후 지금까지 한국 역사 전체에 영향을 미친 구체제적 산물이다. 촛불 혁명 이후에도 교육의 진보,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결정적인 권위의 장벽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대-투쟁을 통한 헤게모니의 전환은 숙명처럼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제주 4.3, 여순 10.19 평화 인권교육 직무연수. 사진제공=제주도교육청

참고문헌

논문

고성만, '제주4‧3 담론의 형성과 정치적 작용', 제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곽태진, '그람시 사상에 나타난 사회변혁과 교육의 관계', 마르스크주의 연구, 2017.
구본만, 「정권의 변동에 따른 지배 이데올로기의 변천에 관한 연구: 제5‧6‧7차 고등학교 정치교육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8.
김동춘, '한국형 신자유주의 기원으로서 반공자유주의', 경제와사회, 2018.
김종엽, '교육에서의 87년 체제: 민주화와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경제와사회, 2009.
박해경, '이승만 정권기 반공 이념 교육과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 성신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서영표, '갑작스러운 타자의 출현: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 진보평론, 2018.
설규주,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관점에서 살펴본 2015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 시민교육연구, 2018. 
양유석, '제주4‧3서술의 과거와 현재', 4‧3과 역사, 2018.
조희연, ''헤게모니 균열'의 문제설정에서 본 현대 한국 정치 변동의 재해석-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의 재해석에 기초하여', 마르크스주의 연구, 2008.
최  현, '시장인간의 형성-생활 세계의 식민화와 저항', 동향과 전망, 2011.
현진호, '제주4‧3 공교육의 필요성과 교육적 접근 방향」, 4‧3과 역사, 2007.

단행본

안토니오 그람시, '그람시의 옥중수고 1: 정치편', 이상훈 역, 거름, 1986.
안토니오 그람시, '그람시의 옥중수고 2: 철학‧역사‧문화', 이상훈 역, 거름, 1993.
필립 스미스, '문화이론: 사회학적 접근', 한국문화사회학회 역, 이학사, 2008.

이 글은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학술지 『탐라문화』 제61호(2019)에 '다원적 민주시민 교육의 조건인 새로운 '헤게모니' -제주4⋅ 3평화인권교육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게재한 논문을 [제주의 소리]에 싣기 위해 요약 정리한 것이다.

이정원

제주대학교 강사(사회학 박사)

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를 졸업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지역언론의 담론 및 생산구조 분석: 제주지역 신문의 '제주해군기지' 관련 사설을 중심으로'로 석사 학위를, '한국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23년에는 저서 '회색교실-교사는 정치에서 자유로워야 한다'(한그루)를 출간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4.3 트라우마 재현이라는 역사 교과서 저항 방식에 대한 성찰적 고찰: 한국사 교과서 4.3기술 근거 삭제 논란을 중심으로', '마을공동체미디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연구: 제주특별자치도 아라동 <아라신문>의 사례를 중심으로', 'AI 앵커 도입에 대한 내부종사자 인식: 제주지역 민영방송 JIBS를 중심으로', '지역 언론인의 솔루션 저널리즘 실천 조건 탐색: 2024년 장마 보도한 JIBS제주방송 기자 내러티브 분석', '4.3 서사의 행위자, 음식: 영화 <지슬>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