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정치판, OTT까지… 가히 무당들의 전성시대 [영화로 읽는 세상]

김상회 정치학 박사 2026. 3. 1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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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이코노무비
장미의 이름①
인간에게 추론 능력 없었다면
학문 · 과학 진보 없었을 것
가추법이란 제3의 추론 방식
넘겨짚기 남발 망상으로 추락

장 자크 아노(Jean Jacques Annaud) 감독의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ㆍ1989년)'은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ㆍ1932~2016년)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기호학 외에도 에코의 분야는 철학, 해석학, 중세학, 문화비평, 사회비평, 소설 등에 걸쳐 있어서 그의 '전공'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에코를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에코에게 썩 어울리는 별호別號일지도 모르겠다.

부정선거론자들은 어떤 반증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부정선거는 종교나 다름없다. 사진은 보수 유튜버 전한길씨. [사진 | 뉴시스]
이탈리아의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그 명민함으로 이름난 윌리엄 수도사(숀 코너리 분)가 교황청의 명을 받아 문제의 수도원으로 향하고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윌리엄 신부가 수도원 정문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원작 소설에서는 수도원에 도착하기 직전에 벌어지는 작은 에피소드를 담는다. 에코는 이 장면 속에 논문으로 치면 논문의 '문제 제기(research question)'를 담은 셈인데, 아노 감독은 이 장면을 과감하고도 난폭하게 쳐내는 이해하기 어려운 만행을 저지른다.

원작 속에서 윌리엄 수도사는 수도원에 도착하기 전에 길에서 수도승들과 마주친다. 수도승들은 어디선가 헐레벌떡 다급하게 뛰어온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난감한 모습으로 윌리엄에게 "혹시 오는 길에 말을 보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이들의 모습을 잠깐 지켜본 윌리엄 신부는 대뜸 "그대들이 찾는 브루넬로(Brunello)는 저쪽으로 갔다"고 일러준다.

윌리엄 신부를 모시고 가던 예비사제 아드소(Adso·크리스천 슬레이터 분)가 의아해서 "저들이 찾는 말의 이름이 브루넬로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으며, 그 말이 그쪽으로 갔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았느냐? 오는 길에 말을 본 적도 없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윌리엄은 자못 진지하게 아드소에게 '추론'의 가르침을 베푼다. "이토록 여러 명의 수도승들이 다급하게 찾는 것을 보면 그 말은 보통 말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아낀다는 명마名馬로 명성이 자자한 '브루넬로(Brunello)'라는 말임에 분명하다.

또한 오면서 진흙 위에 찍힌 말 발자국을 봤는데, 그 발자국 깊이가 깊고, 보통 말보다 높게 나뭇가지가 부러진 흔적들을 보았다. 풍채 당당한 브루넬로가 그쪽으로 간 것이 분명하지 않겠느냐?" 윌리엄 신부의 추론은 신들린 무당에 가깝다.

이 영화는 몇몇 장면을 통해 추론의 위험성을 경고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제 중세판 셜록 홈스라고 할 만한 윌리엄이 수도원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러 가고 있느니 모두들 이 살인사건은 이미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그러나 '브루넬로 알아맞히기'에서 신들린 무당과 같은 추리력의 맛보기 예고편을 보여줬던 윌리엄은 정작 수도원 살인사건 추리에서는 계속 '헛다리'를 짚고, 수도원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기호철학자 에코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추론推論이란 눈에 보이는 하나의 현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미뤄 짐작하는 작업이다. 아마도 인간들에게 추론의 능력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어떠한 학문이나 과학의 진보도 없었을 것이다. 흔히 추론은 연역법(deduction)과 귀납법(induction)으로 나뉜다는 것은 모두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연역법과 귀납법 외 '가추법假推法(가설추리ㆍabduction)'이라는 제3의 추론 방식이 있다. 어떤 현상이 나타났을 때, 알고 있는 유사한 상황에 대입해 가설을 세우고 그 현상의 근거나 원리를 찾는 논리적 추론 방식이다. 바로 윌리엄이 '브루넬로 찾기'에 동원했던 추론방식이다.

추론에서 연역적 결론은 너무 뻔하고 귀납적 추론으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너무 느리다. 오직 가추법만이 파편 몇개를 보고 새로운 과학적 법칙을 제안할 수 있는 창조적 에너지를 제공한다. 복잡한 논리학 용어까지 들먹일 필요 없이 가추법이란 우리말로 하면 '넘겨짚기'라고 하면 거의 정확하다.

윌리엄 수도사가 브루넬로를 알아맞힌 것은 완벽한 논리적 귀납이나 연역적 추론의 결과가 아니라 가추법의 승리다. 부러진 나뭇가지와 발자국이라는 파편을 보고 '아마 그럴 것이다'라고 넘겨짚은 것이다.

그러나 넘겨짚기식 추론이 항상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가추법은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사용자가 남용하면 망상으로 추락한다. 한마디로 넘겨짚다가 팔이 부러진다. 에코는 그렇게 셜록 홈스 같은 윌리엄의 가추법도 망상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에코가 윌리엄이 동원하는 가추법의 실패를 조명하는 이유는 넘겨짚기에 따르는 '과잉해석'과 '검증회피'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서다. 에코는 과잉해석과 검증회피의 덫에 빠진 가추법을 '암癌적인 추론(cancerous ideation)'이라고 규정한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가추법은 분명 지적知的 무기지만 잘못 사용하면 '추론의 암세포'가 된다고 경고한다.

부정선거론자들은 모든 선거를 부정한다. 그중엔 그들이 지지하는 진영이 승리한 선거도 있다. [사진 | 뉴시스]
추론과정에서 이 암세포가 자라면 자신이 세운 가설이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자신의 가설에 억지로 끼워맞추는 '추론암'에 걸린다. 어느 집 앞에서 삼각형 모양의 돌을 하나 발견하면 "이거 봐라. 이건 프리메이슨(Freemason)의 상징이다. 이 집 주인은 프리메이슨 단원이다"라고 추론한다. 단 하나의 단서(무의미한 것이라도)만 찾아내면 나머지 99개의 반증은 무시한다. 가추법이 타락한 넘겨짚기는 무당들의 한바탕 난리굿판이 된다.

부정선거론의 난리굿판은 10여장의 투표지 이상 문제를 갖고 삼각형 돌 하나로 모든 우연을 필연으로 둔갑시키고 중국공산당까지 포함된 프리메이슨과 같은 거대 음모세력이 남긴 범죄의 흔적으로 몰고 간다.

어떠한 반증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에코가 경계하는 암과 같은 추론이다. 에코의 경고처럼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는 가추법의 창조적 에너지가 망상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부정선거 선무당들이 굿판을 벌이고 오늘도 이쪽저쪽 가리지 않고 온갖 정치무당들이 가추법의 외피를 쓰고 온 나라를 뒤흔든다. 이 와중에 '운명전쟁49'라는 '무당예능'까지 인기몰이를 한다고 한다. 가히 무당들의 전성시대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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