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영끌’ 고개 젓던 중년들, 왜 ‘빚투’에 뛰어드나 [남인숙의 신중년이 온다]

남인숙 작가 2026. 3. 15.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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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처질까 두려운 심리에 기성 세대까지 투자 열풍
본업보다 투자 좇는 시대…집단적 불안심리의 반영

(시사저널=남인숙 작가)

3월을 맞아 서가를 정리하다 정확히 10년 전에 발간된 유엔미래보고서 도서를 발견했다. 10년 전 세계적으로 똑똑한 이들이 수집한 각종 데이터와 각계 전문가들의 연구가 얼마만큼 정확히 미래를 예측했는지 확인하고 싶어 책을 펼쳤다.

결론적으로, 비슷하게라도 맞힌 게 거의 없었다. 당시 예측대로라면 2026년의 우리는 3D 프린터로 장기를 복제해 이식할 수 있고, 알츠하이머는 완전히 정복되며,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몰디브가 사라져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야 한다. 생각만으로 이메일을 보내는 건 이미 몇 년 전부터 일상이 되었을 것이다. 보고서는 본래 틀리고 싶어도 틀리기 어려운 인구 예측 정도만 맞혔다. 

장기 미래 예측은 큰 구조적 변화에 주목하기 때문에 선구안을 가진 사람들은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이 2000년대 초반에 인공지능이나 전기차의 상용화를 언급한 자료 등을 보면 예언이라는 게 정말 가능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20년 전에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할 거다' 정도의 발언은 영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었을 법하다. 다만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을 뿐이다. 그런데 선구안이 있다는 일론 머스크조차도 그 '언제'를 맞힌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3월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등 시황이 표시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예측의 시대, 왜 우리는 더 불안해졌나

작년 이맘때만 해도 '미래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비관이 대세였던 코스피 지수가 두 배 넘게 상승했다. '어리석게 8층에서 샀는데 언제 탈출하냐'고 속을 끓이던 삼성전자 개미투자자들은 '20만 전자'를 목격했다. 누군가의 대박을 목격한 사람들은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기회 상실 우려)에 사로잡혀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런 장세를 곱셈을 하며 지켜본 이들 중 일부는 소위 '빚투'(빚내서 투자하는 것)라고 불리는 레버리지 투자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

주식투자는 예측에 베팅하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낡은 예언서를 통해 새삼 확인했듯 우리 인간은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누군가 미래를 맞혔다면 그건 우연이다. 다만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장기적으로 완만한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전설적 투자자 워런 버핏마저도 장기 투자를 통한 복리 효과를 노린 게 주효했고, 그나마도 종목 투자가 아닌 보험 구조 창출을 통해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투자의 의미와 방법을 모두 알고 있다. 저성장 시대의 인플레이션에 자산이 녹지 않도록 지수 투자, 원자재, 채권 등에 분산 투자하며 진득하게 버틸 것, 잃어도 되는 돈으로만 투자할 것, 예금 이자를 상회하는 정도의 수익률 정도만 기대할 것. 그러나 막상 몇 배의 차익을 실현했다는 인증글이나 주변 경험을 접하면 원칙은 쉽게 뒤집히곤 한다. 몇 년 전 '빚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을 때는 청년들의 무모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이 중심에 있었지만 최근 재테크 시장에서는 중년 이상 세대에까지 투자 열풍이 번지고 있다. 현재의 상승장을 견인하고 있는 유인이 정부 정책과 인공지능인 만큼 보수적인 투자자들까지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분위기가 과열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퇴직금을 미리 정산받는 등 노후 자금을 털어 도박판 위에 올려놓는 이들이 적지 않기에 이 변동성의 시기가 지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뒤처짐으로써 얻는 즐거움' JOMO도 있다 

우리가 어쩌면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중일지도 모를 이 투자 러시에 합류해야겠다는 충동을 느끼는 원초적인 이유는 거울신경세포 때문이다. 타인에게 쉽게 동화되고 다수가 달려가는 곳을 향해 덩달아 뛰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그 소중한 자산을 투자하면서 자신이 본능에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각자의 데이터와 논리가 있으며, 공부를 한 대가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10년간의 투자 수익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둔 계좌는 죽은 사람들, 혹은 비밀번호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계좌였다'는 피델리티발(發) 도시 괴담처럼 인간의 판단이 개입한 투자는 그다지 믿을 만하지 않다. 

몇 년 전부터 스토리텔링형 문화 상품에서 '회귀물'이라고 부르는 형태가 유행하고 있다. 회귀물이란 주인공이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인생을 다시 사는 이야기다. 이들은 원래 비루한 삶을 살지만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간 과거 세계에서 승승장구함으로써 독자나 시청자에게 쾌감을 준다. 이런 서사에 한번 익숙해지면 무능력에서 출발해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만약 현재의 40·50대가 청년 시절로 돌아가 엔비디아 주식을 200만원어치 산다면 지금쯤 30억원으로 불어나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세상의 변화 앞에서 몇 번이나 회귀자의 입장에 자신을 대입해 보았다. 그래서인지 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바로 지금이 미래의 내가 회귀하고 싶은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로 미래에서 온 게 아닌 이상 이런 종류의 확신이란 도박일 수밖에 없다.     

30여 년간 수많은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니 투자 개념이 없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일도 드물지만, 투자에만 몰입하는 사람이 자산가가 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포트폴리오 분석이 직업인 이들조차 감정 없이 운용하는 고객 돈은 불려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자산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부동산 투자에 가장 크게 성공한 그룹은 전업투자자들이 아닌, 그냥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산 전업주부들이었다. 자기 생살과 같은 돈으로 전업투자를 하는 이들은 오로지 투자 대상의 가치가 오를 때만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래프가 오르내릴 때마다 수시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삶은 질이 떨어진다. 

포모 이후에 나온 상대적 개념 중 조모(JOMO)라는 것이 있다. 포모가 '나만 뒤처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라면 조모는 '뒤처짐으로써 얻는 즐거움(Joy of Missing Out)'이다. 정확히는 뒤처진다고 느낄 법한 소외의 상황을 자처해 비교에서 오는 고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동안 주식창을 끄고 조모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일을 하면 얼마이건 돈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효능감도 따라오는 본업,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자신을 탐색하는 여유 등 '지금'에 집중할 수 있다면 주식시장의 회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과몰입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남인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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