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반도체 호황에 세수 늘자 ‘추경’ 속도전 ..전문가들 “급할수록 ‘핀셋’ 추경해야”
“묻지마 추경” 우려도 커져

정부가 중동전쟁발 유가 급등에 대응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들어갔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 세수 급증 전망을 바탕으로 추가 국채 발행 없이 10조~20조원 규모를 편성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 돈을 푸는 데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반도체 초호황이 만든 세수 여유
추경은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10일 이재명 대통령이 고유가에 따른 취약 계층 지원 등을 위한 조기 추경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구윤철 경제부총리도 “추경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활용해 충분한 민생 지원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13일 임기근 기획예산처 장관 직무대행 차관은 “주말과 휴일을 반납하고 추경안을 조속히 마련할 것”이라며 추경 속도전을 공식화했다.
정부가 추경 편성에 자신감을 갖는 배경은 반도체 기업 실적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3조6000억원으로, 정부가 지난해 8월 예산안 편성 때 상정한 예상치(28조8000억원)를 크게 웃돌았다. SK하이닉스도 시장 예상치가 44조5000억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두 회사 실적 호조만으로 법인세가 5조3000억원가량 더 걷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인세 외에도 세수 증가 요인은 더 있다. 증권거래세는 세율 인상과 주식 거래 증가가 맞물려 예상치(5조4000억원)보다 5조원가량 추가로 걷힐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국은행이 정부에 납입하는 잉여금도 기존 예상치(7조2500억원)보다 1조~2조원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작년 말 외환시장 개입 과정에서 상당한 외환매매차익이 생겼기 때문이다. 임 차관은 “추가 국채 발행 없이 초과 세수를 활용해 국채·외환시장 영향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과거 2016년(11조원), 2017년(11조2000억원), 2018년(3조9000억원), 2020년 2차(7조6000억원), 2021년 2차(33조원) 추경에서도 적자 국채 없이 초과 세수로 추경을 단행한 바 있다.
15일 국회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이번 추경 규모는 10조~20조원 정도가 거론된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2차관을 지낸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조~20조원 정도가 적절하다”고 밝혔다. KB증권도 최근 보고서에서 법인세와 증권거래세 초과 세수만 최소 10조원이라면서 추경 규모를 10조~20조원으로 전망했다. 2006년 국가재정법 제정 이후 총 18차례 추경의 총지출 순증 평균 규모는 13조7000억원 수준이었다.
편성 시기는 빠르면 4월, 늦어도 5월 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핀셋 추경·재정 비축” 신중론
전문가들은 대내외 불확실성을 감안해 재정을 급하게 쏟아붓기보다 꼭 필요한 곳에만 집중하는 ‘핀셋 추경’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당장 서둘러 추진할 시점은 아니다”라며 “유가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재정 확대 시기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추경을 꼭 해야 한다면 규모를 최소화하고 취약 계층 지원 등 꼭 필요한 분야에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힌다는 이유만으로 추경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돈이 남아서 쓴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중동 사태 대응이라는 추경 본래 목적과 무관한 사업에까지 예산이 풀릴 수 있고, 추후 국가 부채 부담만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저성장 시대에는 세수가 크게 늘기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 국채 발행에 의존해 늘어나는 재정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며 “단순히 현금을 나눠주는 방식보다는 내수를 실제로 진작시킬 수 있는 사업에 (재원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독교와 유교·불교 연구 통해… 동서양 문명 대화 촉구했던 철학자
- 하버마스는 누구… ‘살아 있는 고전’으로 불렸던 소통 이론의 대가
- 인류의 진정한 힘 무엇인지 묻는 21세기판 ‘E.T’
- [일사일언] 예술은 “저희 좀 살려주세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 대규모 정전에 항의… 쿠바 시위대, 공산당 사무실 불질러
- [신문은 선생님] [생각이 자라는 책] 침략 전쟁 반대, 능력 따른 인재 발탁… 2500년 전 묵자 주장
- [신문은 선생님] [명화 돋보기] 불안의 상징에서 영감의 원천으로, ‘잠’ 의미 변했어요
- [신문은 선생님] [식물 이야기] 산·공원마다 다른 생태계 마스코트… 생태·지리·문화 상징해요
- [TV조선] 배한성의 뇌 건강 비법 공개
- [제30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