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못 쓰고 자산가는 악용…가업상속공제의 역설[세상만사]

김정민 2026. 3. 1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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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무엇이 문제인가>②
장수기업 승계 지원 '가업상속공제'..30년 이상 600억까지 공제
사전·사후요건 까다로워 10곳중 7곳 공제 활용 유보
부동산 자산가 가업상속공제 악용…국세청 조사 착수
공제 대상 부적합 업종만 제외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이데일리는 한국세무사회와 함께 국민들의 세금 상식을 넓히기 위한 기획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금 상식, 만가지 사연’을 다루는 <세상만사>에서는 3회에 걸쳐 시대 변화에도 25년째 제자리인 상속세 문제를 짚어봅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홍석구 세무법인 정율 대표 세무사 ]장수기업 오너가 상속세 부담 때문에 경영권을 포기하고 회사를 시장에 매물로 내놓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기술력 있는 중소·중견기업이 대를 잇지 못하고 사모펀드나 대기업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반복되자,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가업상속공제’다. 이름 그대로, 오랜 기간 가업을 일군 회사가 상속세 때문에 무너지지 않도록 세 부담을 덜어주는 장치다.

정부도 꾸준히 이 제도를 활용하기 쉽도록 개정해 왔다.

현재는 가업을 10년 이상 20년 미만 영위한 경우 최대 300억원, 20년 이상 30년 미만은 400억원, 30년 이상은 600억원까지 공제가 가능하다.

적용 대상 기업 범위도 확대돼 매출액 5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까지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다.

상속 이후 기업이 일정 기간 요건을 유지해야 하는 사후관리 기간은 5년이다. 이 기간 동안 고용과 업종, 사업용 자산 등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한다.

먼저 고용 유지 요건은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충족하면 된다. 사후관리 기간 동안 정규직 근로자 수를 90% 이상 유지하거나, 총 급여액을 90% 이상 유지해야 한다.

가업 승계 이후 업종은 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 범위 내에서 변경이 가능하며, 필요한 경우 전문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범위를 벗어난 변경도 허용될 수 있다.

또한 사업용 자산 처분 제한이 있다. 사후관리 기간 동안 사업용 자산의 40% 이상을 처분할 수 없다.

상속세 납부 방식에서는 연부연납 제도가 적용된다. 가업상속재산의 비중과 관계없이 최대 20년 동안 상속세를 분할 납부할 수 있다.

까다로운 사전·사후 요건에 기업들 외면

그렇다면 가업상속공제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겉으로만 보면 증가세는 맞다.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 적용 건수는 2019년 88건에서 2023년 188건으로 늘었고, 공제금액도 같은 기간 2363억원에서 8378억원으로 증가했다.

5년 합계로 보면 총 639건, 2조 1856억원 규모다. 2023년 실적만 놓고 보면 역대 최대다. 그러나 2023년 전체 상속세 신고 인원이 1만8282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업승계 특례가 실제 상속 현장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 그럴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실태조사에서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활용한 승계 의향에 대해서는 66.2%가 ‘유보적’(계획 없음 17.0%·아직 잘 모르겠음 49.2%)이라고 응답했다. 가업상속공제를 활용할 계획이 없다고 답한 기업들은 그 이유로 ‘사전요건을 충족시키기 힘들어서’(40%)를 가장 많이 꼽았고, 그 다음으로 ‘사후조건 이행이 까다로워서’(25.9%)를 들었다.

실제로 현행 제도는 사전요건부터 만만치 않다. 피상속인은 10년 이상 계속 경영한 중소기업 또는 일정 요건의 중견기업을 보유해야 하고, 상속인도 가업상속 요건을 갖춰야 한다. 공제를 받았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상속 후 5년 동안 업종 유지, 지분 감소 및 자산 처분 제한, 고용 유지 등 사후관리 의무를 지켜야 한다. 제도 취지상 일정한 관리장치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산업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현실을 고려하면 모든 요건을 100% 지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동산 자산가 가업상속공제 악용…국세청 조사 착수

정작 기술과 고용을 이어가야 할 제조업·지역기반 기업은 요건을 맞추기 어려워 제도 활용을 고민하는데, 법의 빈 틈을 노려 가업상속공제를 상속세 절감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국세청이 2026년 1월 ‘자산 규모가 큰 수도권 대형 베이커리카페’에 대해 실태조사에 착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세청은 가업상속공제가 ‘명품장수기업 지원을 위한 제도’인데, 일부 대형 베이커리카페가 부동산 투기와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며 조사 이유를 설명했다.

커피전문점은 가업상속공제 대상이 아니지만 제과점업은 공제대상 업종에 들어가 있다는 점을 악용해 일부 자산가들이 소유 토지 등에 대형 베이커리카페를 세워 자녀에게 상속하는 편법이 횡행한다고 한다.

가업상속공제는 중소·중견기업의 기술과 일자리를 다음 세대로 연결하기 위한 제도이지, 토지와 건물을 세금 없이 자녀에게 넘기기 위한 통로가 아니다.

다만, 여기서 멈추면 반쪽짜리 처방이 된다. 악용 사례를 막는 것과 제도가 정말 필요한 기업이 쉽게 접근하도록 만드는 것은 별개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정상적인 기업은 활용이 어렵고 편법적인 악용사례가 나타나는가?”

문제의 핵심에는 업종 기준과 사후관리 기준이 있다.

공제 대상 부적합 업종만 제외…네거티브 방식으로

먼저 업종 기준부터 손볼 필요가 있다.

지금 가업상속공제는 시행령이 열거한 업종에 해당해야 적용된다. 문제는 이 방식이 산업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기업은 특정한 한 가지 업종으로 규정되기보다 산업간 이종교배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들어 모든 업종에서 AI 기술을 활용하면서 과거 관점으로 보면 가업승계로 보호할만한 업종이 아니더라도 실제로는 충분히 보호할만한 사업모델을 영위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런데 세법은 여전히 특정 업종을 나열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업종은 제도 취지와 무관하게 수혜를 받고, 어떤 업종은 장수기업 육성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데도 바깥에 남는다.

제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니 악용과 배제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가업상속공제 업종 요건은 가능한 업종을 열거하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벗어나, 원칙적으로 폭넓게 인정하되 투기성·사행성 업종 등을 정교하게 제외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사후관리 요건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제도 남용을 막기 위해 사후관리 장치를 두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분 감소 금지, 업종 유지, 자산 유지, 고용 유지 같은 기준을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적용하면 전략적인 경영 판단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한 인력 조정, 사업 재편에 따른 자산 교체, 시장 변화에 따른 업종 전환은 실제 기업 현장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제도는 가업의 생존과 성장을 지원해야지, 변화 자체를 봉쇄해서는 안 된다. 획일적 사후관리보다, 핵심 사업의 계속성, 실질적인 경영 유지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다.

셋째는 적용대상 판단에서 ‘형식’보다 ‘실질’을 봐야한다.

국세청이 이번 베이커리카페 조사에서 제빵시설 유무, 사업용 자산의 적정성 여부, 실제 경영 여부 등을 들여다보겠다고 한 것도 결국 형식보다 실질을 보겠다는 의미다.

같은 논리를 정상적인 가업승계 기업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형식적인 체크리스트를 모두 채웠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해당 기업이 가업승계 이후 지역경제 활성화 및 고용 창출, 기술 축적 등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사후관리 요건이 끝난 뒤에도 그 역할이 이어질 것인지까지 입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가업상속공제는 오히려 필요한 곳에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문턱은 높은데 구멍이 뚫려 있는 구조라면, 제조업과 지역경제의 허리를 떠받치는 기업은 제도 밖에 머물고 부동산 자산가의 편법적인 탈세 수단으로 악용되는 기형적 결과가 반복될 수 있다.

△세무법인 정율 대표 세무사 △한국세무사회 미디어홍보위원 △유튜브 ‘세금오락실’ 운영

김정민 (jm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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