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걸, 저럴 걸’ 껄무새가 되지 않으려면

‘이런 상태로 마라톤을 뛰는 게 의미가 있을까?’ ‘대회에 참가할 게 아니면 장거리 훈련도 무리할 필요가 없는데.’
‘2026 서울마라톤’을 한 달 앞둔 지난달 LSD 훈련(천천히 달리는 장거리 훈련·long slow distance)을 어떻게 할지 고민되었다. 42.195㎞ 완주를 위해선 대회 한 달 전 35㎞ 이상의 장거리를 소화해내어야 한다. 십 년 넘게, 50차례 이상 매년 봄, 가을로 마라톤을 완주해왔다. 영하 10도 이하 기온이거나 눈이 와도 상황에 맞춰 달리기를 지속했는데, 올겨울엔 한동안 달릴 수 없었다. 강도 높은 달리기가 누적되어 부상으로 이어졌고 통증 때문에 신발을 신을 수 없었다.
달리자고 마음먹으려면
‘나는 왜 달리려고 하지?’ 스스로 질문해본다. 내가 매일 달리는 이유는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가 되기 때문이다. 달리는 동안 마음이라는 바탕에 일어나는 느낌과 생각을 바라보고 자문하며 확인할 수 있다. 마음으로서의 ‘나’를 관조하는 또 다른 차원의 ‘나’라는 의식이 명료해지기 때문이다. ‘대회 날도 달리면서 기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몸의 현 상태에 맞춰 달려보자.’ 대회에 나가는 것이 의미 있다고 확인하니 어떻게 할지 결정되었다. ‘얼마나 고될까?’ ‘달리다가 다시 부상이 재발하는 건 아닐까?’하며 망설이던 것이 없어졌다. 가볍지만 굳은 마음으로 35㎞ 장거리 훈련에 임했고, 무사히 소화해낼 수 있었다.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할 때 ‘그렇게 하려고 하는’ 자신의 의도를 스스로 이해하고 확인해야 한다.

내 의도와 상대 입장 이해하기
운배씨는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자신에 대한 비난 글 때문에 직장 내 갑질 의혹을 받게 되었다. 사내 조사까지 진행되자, 그는 억울하고 스스로 실망스럽고 상대방에게 배신감도 든다 했다.
“그동안 회사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나름 잘 해왔다고 생각했어요. 부서도 나름 잘 끌어왔다고 평가받았어요. 업무 결과도 좋고, 부서 평가나 부서원들의 고과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잘한 것이 아니었나 보아요. 자책하게 되고, 서운하고, 때때로 울컥 화가 나네요. 어디에서 잘못된 걸까요?”
업무를 하다 보면 부서 내부, 유관 부서, 협력사 등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 결정을 할 때는 ‘나는 왜 이렇게 업무를 지시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려고 하는지’ 스스로 납득하고, ‘상대방은 업무 지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많은 업무 관계에서 상대방이 업무 지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일방적인 업무 지시로 이어진다. 결국 갑질 아닌 갑질이 되어 상대방은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업무를 지시할 땐 스스로 의도를 명확히 하고, 상대방이 그 의도를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기를 이해함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나를 상대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상대가 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가 알도록 해야 한다.
“아이코!”
도넛을 사려고 진열대에서 꺼내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다. 슈크림 도넛을 집게로 집었는데 예상보다 무거워서 놓쳐졌다. 난감하던 순간 가게 주인이 다가와 떨어진 도넛을 치우며 새 슈크림 도넛을 쟁반에 담아주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떨어진 것도 함께 살게요.”
“아닙니다. 원래는 저희가 담아드려야 하는 일인데요. ”
“아, 그래도 얼마라도 더 받아주세요.”
“아니에요. 가끔 아이들도 꺼내다가 떨어뜨리곤 해요. 그리고 또 오늘 다 팔지 못하고 남은 건 폐기해요. 괜찮습니다.”
주인은 손님이 일부러 떨어뜨린 게 아니라는 점과, 당황해하는 손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영업하면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미리 알고 어떻게 대응할지도 자신의 마음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 주인이 손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 가게는 잘될 수밖에 없다.

내 마음 스스로 이해하기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발생한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이해하고 결정할 새 없이 발생한 일도 그 과정을 마음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행동한 상대의 의도와 입장,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렇게 발생한 주변 상황과 배경이 어땠을지 의문을 품고 확인해본다. 발생한 일이 내 편에선 옳지 않다고 생각되어 “왜 그렇게 했냐?” 나무라거나 다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 입장과 그러한 배경에서는 그랬을 수 있구나’ 이해할 수도 있다. ‘쟤는 왜 저러지?’로 끝내지 않고 ‘나는 왜 그렇게 받아들이지? 그러면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하지?’ 자신에게 질문해 볼 수 있다. ‘예측한 대로 되었구나,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구나’ ‘이런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기로 했었지?’ ‘이해하자, 지나가자’하고 답을 찾을 수 있다.
나는 35㎞ 장거리 훈련에 대해 스스로 의미를 찾고 진행할 수 있었다. 경험을 바탕으로 장거리 훈련 후 쿨링, 휴식, 근육 마사지 등으로 몸을 관리했지만, 부상 부위에 다시금 통증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해서, ‘아 괜히 훈련했네’하고 후회되지는 않는다. 당시에는 훈련에 대한 명백한 이유를 가지고 상황과 컨디션에 맞추어서 내가 달릴 수 있는 강도로 맞추어 훈련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부상 재발에 대한 가능성도 마음 안에서 이미 이해하고 훈련 여부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삶은 선택과 결정이 반복된다. 이럴까 저럴까 번민하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주시, 질문, 이해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글의 상담 사례로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은?
김세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는 세계 6대 메이저 베를린·보스턴·도쿄·시카고·런던·뉴욕 마라톤을 포함해 50여 차례 국내외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2024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7분30초다. 현재 삼성서초사옥 마음건강클리닉에서 사내 임직원을 진료하고 있으며 대한 육상연맹 이사를 맡고 있다.
마음이 속상하고 힘들 때,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스스로 마음을 보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답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데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필자는 마라톤을 하면서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성찰하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스스로 내면을 풍요롭게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새벽마다 달리며 지친 이들의 마음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 있다. 20년간 달리기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통해 깨달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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