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털어놔야 구원받아" 세 자매에 가짜 기억 심은 교회 장로... 형사 처벌 없었다

장수현 2026. 3. 1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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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교리로 '성적 회개' 강요한 장로 부부
검찰 수사관 이력 앞세워 어린 신도 협박도
'가짜 피해' 인정한 1심, 구형보다 높게 선고
2심·대법은 전부 무죄... "고의 단정 어려워"
"종교 범죄 현실과 형법 괴리 보여준 사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이한호 기자

"피해자들은 장기간 성폭력 피해를 입으며, 신체적 피해만이 아니라 정신적 지배까지 당했습니다."

2019년 8월. A씨에게 고소장이 전해졌다. 성폭력 혐의였다. A씨는 고소장을 읽는 내내 두 눈을 의심했다. 고소를 제기한 사람은 20년 넘게 애지중지 키워온 세 딸이었다.

터질 듯한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곰곰이 생각했다. 성적인 접촉을 한 적이 있었던가? 결단코 없었다. "감사하다"거나 "존경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만큼 사이도 좋았다. 아이들은 편지도 자주 썼다.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집안을 서성거리던 중, 짐작 가는 장소가 퍼뜩 떠올랐다. 아내와 딸들이 함께 다니던 교회였다.


없는 성폭행 피해 만들어내라 윽박

게티이미지뱅크

2016년부터 함께 다니던 교회였다. 서울 강남구의 그 교회는 다른 교회와 조금은 달랐다. 유독 '축사'(귀신을 내쫓음)와 '신유'(신의 힘으로 병을 낫는 것)에 집중했다. 그 중심엔 장로 이모(63)씨와 권사 이모(56)씨가 있었다. 둘은 부부였다.

교인들은 장로 이씨가 기도를 통해 귀신을 쫓거나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권사 이모(56)씨는 환상을 보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낸다고들 했다. 신도 4, 5명을 앉혀놓고 권사는 이들을 통해 봤다는 부정적인 환상을 차례로 이야기하고, 장로는 그걸 해석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쇼'를 자주 보였다. 부부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대언자"로 불렸다.

교회에서 딸들이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닐까. A씨는 곧바로 아내와 딸들이 있는 서울 집으로 찾아갔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정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A씨를 아내는 "경찰을 부르겠다"며 내쫓았다. 수면제와 우울증 약으로 버티는 나날이 계속됐다.

A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 "기억이 잘못된 건 없는지 생각해봐 달라"고 설득했다. 사건을 제보받고 취재하기 시작한 방송사 측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성폭행 피해가 없어 보인다"는 소견을 냈고, 그제서야 세 자매는 상상에서 깨어났다.


"내가 수사해봐서 안다" 몰아간 장로

'친족 성폭행'이라는 황당한 기억이자 위험한 상상의 경위는 이랬다. 2018년 12월 교회의 담임목사가 사임하자 이씨 부부는 적극적으로 교회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어린 신도들에게 '성적인 회개'를 강요했다. 이들은 조상의 죄 때문에 현재의 불행이 발생한다는 무속신앙에 가까운 교리를 믿었는데, 특히 성과 관련된 죄를 회개해야 원죄가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성폭력 상담소에서 일한 적 있는 집사 오모(56)씨도 궤변에 동참했다.

세 자매 중 둘째(당시 23세)가 첫 번째 피해자였다. 2019년 2월 둘째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권사 이씨와 오씨는 "교제를 끝내고 성생활을 고백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조언인 듯했지만, 사실상 협박이었다. 둘째가 과거 음란 영상을 본 경험 등을 이야기하자 "성적 욕구엔 원인이 있다"며 기억 못 하는 성폭행 피해가 있을 수 있다고 몰아갔다. 피해를 떠올리지 못하면 "구원을 못 받아도, 때려쳐라"고 윽박질렀다. 그렇게 가스라이팅이 집요하게 이뤄졌고, 둘째의 머리와 마음속에 아버지인 A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거짓 기억이 자리를 잡게 됐다.

2019년 11월 29일 방송된 SBS '궁금한 이야기 Y'. SBS 홈페이지 캡처

이씨와 오씨는 첫째(당시 24세)와 셋째(당시 22세)에게도 손길을 뻗쳤다. "언니가 피해자이니 너도 피해자다" "네 행동은 친부 성폭행 피해자의 특징"이라는 말로 A씨의 거짓 범죄를 주입했다.

피해 가족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동성애 성향을 고민하는 신도에겐 "동성애는 성폭력의 증거"라며 삼촌 B씨가 가해자라는 거짓 기억을 강요했다. 다른 신도에겐 한 적도 없는 임신중지의 증거를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장로 이씨는 서울중앙지검 4급 수사서기관이었던 직업을 활용해 어린 신도들을 겁박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검찰 수사관이라 죄인을 많이 만나는데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미성년 성폭력 사건은 3개월이면 처분까지 끝난다"고 사실상 고소를 설득했다.이들의 가스라이팅으로 허위 고소를 한 고소인이 4명, 피고소인들에게 제기된 혐의는 30개에 달했다.


1심 "전혀 반성 기미 없다"... 구형보다 높게 선고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 자매는2020년 1월 아버지 A씨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A씨는 곧장 장로 부부와 C씨를 무고로 고소했다. 경찰은 "자매가 실제 피해를 당한 줄 알았다"는 장로 부부 등의 말을 믿고 '혐의없음'으로 송치했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교회 관계자 대부분을 불러 조사하는 등 8개월간의 대대적인 보완수사를 마치고, 2021년 7월 이들을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장로 부부 등이 자신들을 이단으로 몰고가는 사람들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무고를 부추겼다고 봤다. 실제 A씨는 장로 부부가 참석하던 다른 교회의 목요집회에 문제제기를 해 이 집회를 이단으로 분류되게 만든 적 있었다. 선교사였던 또 다른 피해자 B씨는 "딸이 다니는 교회가 이상한데 알아봐 달라"는 누나의 부탁을 받고 교회를 조사하다 피해를 당했다.

2021년 7월 장로 부부와 오씨의 재판이 시작됐다. 증인으로 출석한 교인의 가족들은 장로 부부가 "TV에 나오는 사이비"와 같았다고 진술했다. 성폭행 피해를 믿는 아이를 가족과 분리하려는 듯 "(아이가) 휴대폰을 바꿀 수 있고 당분간 통화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B씨의 누나이자 피해 교인의 어머니는 법정에 출석해 "판사님, 정말 죽을 만큼 힘이 든다"고 절규했다. 반면 장로 부부는 사과 없이 "교인들이 말한 피해가 허위인지 몰랐다"는 논리로 일관했다.

1심 재판부는 2023년 11월 장로 부부에게 각 징역 4년, 오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구형보다도 높은 결과였다.재판부는 "A씨와 B씨의 성폭행은 피고인들이 교인들에게 잘못된 기억을 주입시켜 믿도록 만든 허구의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어 "피고인들이 꾸민 무고 내용은 유아 때부터 성폭행당했다는 것인데, 이는 법률상 최고 무기징역 대상으로 규정된 중범죄"라며 "피고인들은 범행을 부인하고 용납하기 어려운 변명을 해 전혀 반성의 여지를 찾을 수 없다"고 꾸짖었다. 세 자매가 이씨 부부와 분리된 후 기억이 허위라는 걸 깨닫긴 했지만 "가족이 겪은 정신적 고통과 훼손된 명예는 평생 회복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형사책임 피한 장로 부부

그런데 지난해 2월, 2심은 뜻밖의 무죄를 선고했다. 성폭행 피해는 허위가 맞지만 이씨 부부가 고의로 가짜 피해를 만들어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들이 신도들의 피해가 진짜라고 믿었을 가능성도 인정했다.무고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피고인들이 신고 내용이 허위임을 명확하게 인지했어야 했다. 2심 재판부는 "강한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던 피고인과 피해 신도들이 '성상담' 과정에서 상호작용하며 서로에게 잘못된 기억을 유도하고 확대 재생산한 결과라고 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신도들에게 허위 기억을 주입할 동기가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A씨가 이단 문제를 제기했더라도, 그 이후 상당 기간 장로 이씨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교인 수가 30명 정도인 소규모 교회라 교인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인다고 얻을 이익도 없다고 판단했다.재판부는 "교인들의 성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검찰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결과적으로 한 가정은 파탄이 났고, 이들을 부추긴 장로 부부 등 피고인들에게는 아무런 처벌이 내려지지 않았다. 검찰은 1심 선고 약 한 달 뒤인 2023년 12월 수사관 이씨를 파면했다. 종교 전문가인 탁지일 부산 장신대 교수는 "현실과 실정법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종교 관련 범죄에선 피고인들의 의도, 피해의 인과관계를 뚜렷하게 입증하기 어렵다보니 사각지대가 자주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탁 교수는 "신도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 자체가 (피고인들의) 강력한 동기일 수 있는데 간과된 게 아닌가 아쉽다"며 "종교 범죄의 특수성이 수사와 판결에 더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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