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관리자가 사라지는 나라 [김문경의 리더십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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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한국 기업들이 빠른 의사결정을 앞세워 조직을 슬림화하는 사이, 더 조용하고 더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간관리자들이 무너지고 있다. 어느 날 베테랑 팀장이 사직서를 낸다. 그 자리를 채울 후보가 없다. 아무도 그 자리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채용 컨설팅 기업 로버트 월터스(Robert Walters)가 Z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2%가 중간관리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69%는 "스트레스는 높고 보상은 낮다"고 인식했다.
국내도 다르지 않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의 설문에서 MZ세대 직장인 54.8%가 "임원까지 승진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으며, 가장 큰 이유는 "책임져야 하는 위치가 부담스럽다"(43.6%)였다. 이것이 바로 '의도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이다. 즉 관리자로의 승진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현상을 말한다. 언론은 이를 Z세대의 가치관 변화로 해석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세대 특성이 아니라 조직 구조에 있다.
그럼 왜 중간관리자일까? 그들은 태생적으로 '샌드위치' 위치에 있다. 위에서는 CEO와 오너가 ‘빠른 실행’을 압박한다. 아래에서는 팀원들이 ‘자율성과 존중’을 요구한다. 중간관리자는 그 사이에서 상위층의 지시를 현장 언어로 번역하고, 팀원의 반발을 조율하며, 자신의 판단이 요구되지만 최종 책임만 고스란히 짊어진다. 권한은 제한되어 있고, 책임은 전방위적이다. "팀장이 되고 싶지 않다"는 고백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다.
LG경영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간관리자의 절반 이상이 커지는 업무 부담 속에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단순한 과로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설계된 소진이다. 글로벌 디지털 코칭 플랫폼 미퀼리브리엄(meQuilibrium)의 분석은 더 직접적이다. "관리자를 돌보는 이가 없다면, 그들은 일반 직원보다 번아웃과 이직 위험이 더 높아진다."
실제로 블룸버그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기업 전체 해고의 3분의 1이 중간관리직에서 발생했다. 5년 전 5분의 1에서 크게 늘어난 수치다. 조직이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잘려나가는 계층이 바로 중간관리자라는 뜻이다.
이 위기의 실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온라인 신발 판매 기업 자포스(Zappos)다. 2014년 CEO 토니 셰이(Tony Hsieh)는 ‘관리자 없는 조직’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1,500명 직원의 직위를 모두 없애고, 150개 부서를 500개 자율 서클로 재편하는 '홀라크라시(Holacracy)'를 도입했다. 완전한 자율, 완전한 평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실험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냉혹했다.
도입 1년 만에 직원의 14%가 회사를 떠났다. 남은 직원들은 정작 가장 기본적인 질문 앞에서 멈춰 섰다. 이 결정은 누가 최종적으로 내리는지, 잘못됐을 때 책임은 누가 져야할지, 내 성과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게 되는 걸까? 자율은 주어졌지만, 그 자율을 작동시킬 구조가 없었다. 자포스는 결국 중간관리자를 부분적으로 복원했고, 2020년 아마존에 인수되면서 이 실험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모두가 관리자인 조직은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이 된다. 자포스는 그 사실을 가장 비싼 값을 치르고 알게 됐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중간관리자를 '보이지 않는 접착제(Invisible Glue)'라고 부른다. 이들은 단순히 위의 지시를 아래로 전달하는 통로가 아니다. CEO의 거시 전략을 현장 직원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고, 반대로 현장의 미세한 신호를 경영층이 읽을 수 있는 데이터로 끌어올린다. 위에서 내려오는 결정에 대한 팀원의 불만을 흡수하고, 팀원의 목소리가 경영층에 닿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다. 권한과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실패가 비난이 아닌 학습으로 전환되는 문화를 설계한다. 그리고 조직의 가치와 규범을 다음 세대 구성원에게 조용히, 그러나 지속적으로 전승한다.
한 마디로, 중간관리자는 조직이 조직답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사라지면 조직은 '명령과 복종의 기계'로 전락한다. CEO의 지시는 해석의 여지없이 직접 하달되고, 창의성은 고사하기 전에 심리적 안전감 자체가 먼저 무너진다. 이것이 조직심리학이 경고하는 '심리적 공동화(Organizational Hollowing)'다. 겉으로는 서 있지만 속이 빈 조직. 마치 척추뼈가 없는 몸처럼 말이다.
지금 한국 기업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CEO 직경영을 강화하고 중간 계층을 계속 축소하면, 단기적으로는 의사결정이 빨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중간관리자의 이탈이 시작되면, 조직이 수십 년간 쌓아온 암묵지(暗默知)가 함께 사라진다. 신규 채용과 재교육 비용은 폭증하고, 결국 CEO까지 번아웃에 빠진다. 빠른 차도 바퀴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해법은 있다.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CEO는 전략 수립에 집중하고, 중간관리자는 전략의 실행과 문화 설계를 맡는다. 이를 위해 다음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권한 위임의 명문화다. "이 영역에서는 팀장이 최종 결정을 한다"는 규칙이 문서로 존재해야 한다. 구두 위임은 위기 앞에서 항상 사라진다. 둘째, 심리적 안전감의 설계다. 실패했을 때 비난이 아닌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셋째, 경영진과 중간관리자 간 정기적 대화 채널이다. 월 1회 이상의 상향식 피드백 구조가 없는 조직에서 중간관리자는 결국 일방적 하달의 통로로만 소진된다.
중간관리자 붕괴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량 해고처럼 극적이지 않고, 구조조정처럼 공식적이지도 않다. 조용하다. 그러나 치명적이다. 척추뼈가 하나씩 약해지다가, 어느 날 조직이 이유도 모른 채 쓰러지는 것처럼 말이다.
강한 조직은 강한 CEO 혼자 만들지 않는다. 전략은 위에서 나오지만, 그 전략을 현장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중간의 힘이다. 그 힘이 지금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척추가 없는 몸은 겉으로는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지금 한국 기업들이 마주한 현실이 정확히 그렇다. 중간관리자를 소모품으로 볼 것인가, 조직의 근간으로 볼 것인가. 그 선택이 지금 이 순간 조직의 10년 후를 결정하고 있다.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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