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쪼개고, 대표 넘기고…지방의원의 수의계약 ‘꼼수’[기울어진 나라 ②]

박송이 기자 2026. 3. 15. 08: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방의회 의원 배지. 연합뉴스

[주간경향] 한 지방의회 소속 A의원은 지역에서 20년 넘게 기업을 이끌어온 창업주다. 2022년 6월 제9대 지방의원으로 당선된 A의원은 임기가 시작되기 직전, 대표이사 자리를 형제에게 넘기고 본인은 사내이사로 내려왔다. 현행 이해충돌방지법은 의원 본인이나 배우자 등이 대표이거나 지분을 30% 이상 보유한 업체와의 수의계약을 금지한다. 대표직을 내려놓으면서 A의원은 정확히 그 조건을 비껴갔다. 이후 2022년 7월부터 지금까지 해당 업체는 관할 지자체와 100여건이 넘는 수의계약을 맺었다. A의원은 이해충돌방지법의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가지고 있던 지분은 정리 중이며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라며 “내가 의원이 됐다고 계약 건수가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다. 혜택을 본 게 없다”라고 항변했다.

또 다른 지방의회 소속의 B의원은 자신이 맡고 있던 건설업체 대표직을 10여년 전 형제에게 넘겼다. 이후 본인은 사내이사, 감사 등을 두루 거치며 해당 업체에 계속 겸직 근무하고 있었다. 해당 업체는 B의원 임기 중 지자체와 수차례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대표직 이양 시점이 의원 당선보다 훨씬 앞선 만큼 문제가 없다는 게 B의원 측 입장이지만, 사실상 가족기업에 가깝다는 점에서 수의계약 체결의 적정성에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B의원에게 해당 지자체와 수의계약을 맺는 것이 이해충돌방지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런 걸 왜 묻냐”며 더는 응답하지 않았다.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은 2021년 5월 제정돼 2022년 5월 시행됐다. 공직자가 직무수행을 하면서 관련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전에도 지방계약법에서 지방의원 본인과 배우자·직계 존비속 관련 업체의 수의계약을 제한했지만, 지분율 기준이 50%로 높아 지분을 49%로 맞추는 식의 편법이 성행하는 등 실질적인 규제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주식·출자지분 기준을 30%로 낮추는 등 규제 범위를 확대했다. 지자체 사무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지방의원이 감사 대상인 지자체와 수의계약으로 얽히게 되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지방의원과 이해관계로 얽힌 업체의 수의계약은 규제돼왔다.

‘꼼수’ 수의계약, 전국적으로 만연

그러나 이 같은 입법 취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직계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이나 제3자에게 대표직을 넘기거나 지분을 분산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경기도 평택시의 한 시의원은 아들이 운영하는 업체가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라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없게 되자 지인 업체 명의를 빌려 1200만원 상당의 소독 용역 계약 등 3건을 체결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4년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같은 꼼수는 전국적으로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익위는 민선 8기 출범 이후 2년(2022년 7월~2024년 8월)을 대상으로 전국 243개 지방의회 중 20곳을 샘플로 뽑아 이해충돌방지제도 운용 실태를 점검했다. 조사 결과 지방의회 및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에서 지방의원의 가족이 소유하거나 대표로 있는 업체와 총 1391건, 약 31억원 규모의 부적정한 수의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의원들의 신고 의무 이행률도 낮았다. 지방의원은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라 민간 부문 업무 활동 내역을 30일 이내에 제출해야 하지만 점검 대상 518명 중 308명(59.5%)이 이를 제출하지 않거나 부실하게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운영하던 영리업체를 누락한 채 신고하고 그 업체가 이후 수의계약을 따낸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권익위 관계자는 “20개 지역 샘플조사만 한 게 이 정도 규모인데 만약 전수 조사를 했다면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산된다”라고 말했다.

2024년 11월 27일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이해충돌방지법 운영실태조사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의원의 부적절한 수의계약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민간 기업이 지방의원을 수의계약을 따내는 통로로 활용하기도 한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기업이 지방의원을 사내이사 등으로 형식적으로 선임해 급여나 지분 일부를 제공한 뒤, 이들을 지자체 수의계약을 따내는 연결고리로 활용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지방의원을 명목상 직함만 올려놓는 이른바 ‘바지사장’처럼 두고, 실제 업무는 하지 않게 하는 대신 지자체와 업체 간 계약 과정에서 다리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전남 곡성군의회에서는 관급공사 수주 개입 의혹으로 의원 3명이 검찰 수사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군의회 재적 의원 7명 가운데 3명이 관급공사 수주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차명으로 건설업체를 운영하며 뇌물을 받고 공사 수주를 도운 혐의, 관급공사 계약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받은 혐의 등이었다. 전체 재적의원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한꺼번에 수사 대상에 오른 이 사례는 일부 지방의회에서 수의계약 비리가 개인 일탈이 아닌 집단적 관행으로 굳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지방의원 수의계약 문제는 김경 전 서울시의원 사례에서 보듯 공천헌금과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선우 의원에게 공천헌금 1억원을 건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경 전 시의원은 가족회사 또는 가족 관련 회사 7곳이 상임위 소관 산하기관으로부터 일감을 수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돈으로 지방의원 공천을 받고, 이후 의원직을 통해 수의계약으로 이익을 보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형수 예산감시전국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지역위원장이 공천을 휘두르는 지금 구조에서 (공천헌금 등으로) 지방의원으로 당선된 이들은 이후 사익을 추구할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해충돌 사각지대

지방의원의 수의계약 문제는 오래전부터 있었으며, 지방계약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패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지적돼왔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지방계약 관련 감사 지적사항을 분석한 ‘지방계약의 책임성 제고를 위한 부패 유형과 개선방안 연구’(조형석)에 따르면 지방계약 관련 부패 유형 가운데 ‘부당한 수의계약 사유 적용 및 추진’이 28.4%로 가장 많았다. 또 수의계약이 제한되는 배우자, 직계비속이 대표인 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사례들이 여러 자치단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규제를 강화해도 유사 사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자체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기초자치단체 관계자는 “지방의원들이 당선되면 현행법에 따라 수의계약 배제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를 회계과에서 각 부처에 내려보낸다. 이를 토대로 배제 대상을 걸러내는데 법이 제한하는 것 외의 동생이나 다른 가족으로까지 제한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1억원 공천헌금’ 의혹을 받는 김경 전 서울시의원이 지난 3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규제 범위를 좀더 확대하는 방안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정부 당국은 문제점은 알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방안을 찾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현행법을 악용, 우회하고 있는 현실이 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규제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떻게 하면 법의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 대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지금의 법적 테두리 안에서 좀더 강력한 규제를 적용할 필요성을 제안한다. 서휘원 경실련 정치입법팀장은 “형제·자매로까지 규제 범위를 또 확대하는 방안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지금 있는 규정이라도 잘 지켜지도록 감사원이나 권익위원회에서 계속해서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해충돌 사안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권한이 미비한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 조사권을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의회에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의원이 사적 이해관계자나 민간 업무 활동 내역을 신고하면 위원회가 검토해 의견을 내는 구조다. 그러나 작동의 전제가 ‘신고’이다 보니 의원이 스스로 신고하지 않으면 위원회는 움직이지 않는다. 동료 의원이나 주민의 민원, 시민단체 등의 신고가 없는 이상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역할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서 팀장은 “지금은 윤리심사자문위원회가 심사권만 가지고 있어 자체 조사를 착수할 수 없다.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 조사권을 주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수의계약 자체가 갖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도 지적되면서 지자체가 수의계약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권익위가 2025년 12월 공공기관 331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근 3년간(2022~2024) 수의계약 건수는 69만건으로 전체 계약 건수의 79.2%에 달했다. 금액으로는 73조원 규모다. 수의계약은 공개 경쟁 없이 특정 업체를 지정해 계약하는 만큼 구조 자체가 투명성의 구멍이 될 수 있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전문위원은 “수의계약은 경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부패의 여지가 생기는 것”이라며 지자체의 과도한 수의계약 체결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김형수 사무국장은 이 문제는 결국 정부 당국과 지자체의 관리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발주 문서나 청렴의무서약서에 ‘이해충돌 사실이 사후에 밝혀질 경우 계약 취소 사유가 되며 투입 비용도 환수할 수 있다’는 조항을 명시하면 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의원이 지분을 조정하거나 차명 형태로 계약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면 계약을 취소하고 비용을 환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두면 실질적인 억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 사무국장은 “정부가 의지를 갖고 관리하면 막을 수 있는 문제인데 신고와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