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손잡고 가던 해장국집의 기억…미슐랭 사장은 오늘도 배고픈 아이들에 국밥을 차린다

김용재 2026. 3. 15.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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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溫記: 따스함을 기록하다)
장재현 안암 대표 인터뷰
배고픔에서 시작된 요리로 ‘결실’
“주변에서 받은 도움, 돌려주고 싶다”
장재현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안암 식당의 ‘국밥’. [장재현 대표 SNS 갈무리]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환경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그 가치가 제 손에 남는 돈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해요.”

서울 종로구에 있는 국밥집 ‘안암’. 미슐랭이 인정한 국밥집으로 유명하다. 가게 앞은 언제나 국밥을 기다리는 손님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곳을 운영하는 장재현(37) 대표는 아동 후원을 꾸준히, 그리고 각별하게 이어오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결식아동을 위한 식사 지원이나 정기 후원을 자기 명의가 아닌 가게 이름으로 한다. 개인의 선행으로 남기기보다 안암이라는 공간의 ‘태도’로 남기고 싶어서다. 실제로 그는 가게 이름으로 3명의 아이를 정기 후원하고 있다. 그는 ‘깊픈’이란 이름의 음식점도 운영하는데 여기서는 결식 아동들에게 급식 카드를 받지 않고 마음껏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한다. 결식 아동을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세이브더칠드런의 ‘선한 영향력 가게’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음식은 살아남기 위해 붙들었던 한 끼, 누군가를 기쁘게 했던 첫 칭찬, 부모의 손을 잡고 먹으러 갔던 오래된 기억이다. 그래서 안암의 한 그릇은 배를 채우는 음식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 미래를 남겨두는 방식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장재현 안암 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3주간 끼니를 거르며 버틴 어린 시절…그를 살린 건 ‘이웃·선생님’

그의 어린 시절은 지독한 배고픔으로 기억된다. 방학이면 집엔 먹을 것이 없었다. 길게는 3주 가까이 끼니를 거른 적도 있었다. 동주민센터에서 쌀을 받았지만 막상 밥 짓는 법을 몰라 며칠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살기도 했다. 또래 친구들이 학원에 다니고 수학 공부를 하는 시간에 그는 먹는 일이 얼마나 절박한지 먼저 배웠다.

돌이켜보면 그를 살린 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어른들의 시간과 배려였다.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의 가출, 이어진 어머니의 부재 속에서 그는 사실상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홀로 지냈다. 그런 그의 곁에는 선생님들과 이웃, 주변의 따뜻한 어른들이 있었다.

점심값이 없어 화장실에서 물만 마시던 시절. 한 선생님은 매번 5000원짜리 지폐를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고 한다. 학원비를 낼 수 없어 그만두려 했을 때 “너는 그냥 앉아 있어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 대표는 그 돈으로 편의점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너무 서러워서 간판 뒤에 숨어 먹던 날들도 있었다. 당시엔 누가 볼까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드러나지 않는 도움’을 중요하게 여긴다.

“도움은 꼭 드러나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상대가 상처받지 않고 자기 상황이 노출되지 않은 채 받을 수 있는 도움이 있잖아요. 제가 받은 것도 그런 방식이 많았어요.”

그에게는 이런 감사의 기억을 언젠가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음식과 함께 더 선명해졌다고 한다. 누군가 자신의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말하는 순간을 겪으면서였다. 그는 “평범하게 먹는 행위가 즐거운 행위가 될 수도 있구나, 그걸 처음 느꼈어요”라며 “사실 첫 칭찬을 받았던 게 음식을 만들었을 때였어요. 그때 음식이 제 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라고 말했다.

가난한 시절과 주변의 도움을 받는 상반된 모습을 표현한 그림. [챗GPT를 통해 제작]
음식점은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오래 붙들어 두는 장소
“식당 노키즈존은 미래를 포기하는 행위로 느껴진다”

그의 국밥집 안암은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성북구 안암동, 아버지와 함께 가던 해장국집의 기억을 모티브 삼아 구상한 식당이다. 미슐랭 투스타 식당인 ‘스와니예’ 출신인 장 대표가 굳이 국밥을 파는 가게를 꾸린 이유다. 그는 자신의 식당이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오래 붙들어 두는 장소로 기억되길 바란다.

“부모가 아이 손을 잡고 밥을 먹으러 가고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다시 그 가게를 찾게 되기 마련이잖아요, 저는 음식점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생각은 안암의 운영 원칙으로 이어졌다. 장 대표는 아이들에게도 열려있는 식당을 지향한다. 그는 “노키즈존은 미래를 포기하는 행위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음식이 문화로 남으려면 아이와 함께 먹는 자리가 있어야 하고 그래야 한 세대의 기억이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는 생각에서다.

어린아이와 장애인·노약자가 식사하기에 불편한 요소가 많다는 걸 체감한 뒤 테이블을 낮추는 공사까지 고민했다. 장 대표는 “좁고 불편한 구조 때문에 누군가 식사하기 어려운 공간이 된다면 그걸 정말 대중음식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다”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계속 해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가 꿈꾸는 장면은 단순하다. 언젠가 한 손님이 “어릴 때 부모님 손 잡고 왔던 가게”라며 다시 안암을 찾는 것이다. 그는 “음식이 저한텐 생존이었는데, 누군가에게도 한 끼는 즐거움이기 전에 생존일 수 있잖아요”라며 “음식으로 생존을 돕는 일과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라고 했다.

장 대표가 후원을 개인이 아닌 가게 명의로 하는 이유는 직원들과 함께 같은 방향을 보고 싶어서다. 그는 “한 사람이라도 그 방향으로 서 있으면 세상이 조금씩은 그 방향으로 간다”며 “월급을 주는 사람, 책임을 지는 사람이 그 가치를 붙들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도 적어도 한 번은 생각하게 된다고 본다”라고 했다.

“후원받던 아이가 나중에 성인이 돼서, 우리가 자기 유년기를 후원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이 가게에 와 밥을 먹고 가면 그게 정말 멋있는 일 아닐까요.”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암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 하고 있는 장재현 대표. 임세준 기자
“배고프고 서럽고 견디기 어려워도 ‘오히려 좋아’라고 생각해라”

장 대표는 지금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도 단순히 위로만 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어려움을 겪는 친구가 있다면 ‘오히려 좋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다만 이 말을 쉽게 꺼낸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지 않았다. 배고팠고 서러웠고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고 인정한다.

다만 그 시간을 통과하고 난 뒤에야 보인 것도 있다고 말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 버티는 내성, 상황을 읽고 생각을 전환하는 능력 같은 것들이다. 그는 “제가 남들보다 문제 해결을 잘하고 내성이 강한 편이라고 느끼는데 돌이켜 보면 그건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더라고요”라고 언급했다.

그는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를 더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신은 밥을 먹어야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음식을 시작했고 그 안에서 인연을 만나고 지금의 삶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누구에게나 아직 모르는 출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 대표가 후원을 지속하는 이유는 거창한 변화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한 아이가 환경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지 않도록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외롭게 건너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그가 믿는 온기는 오늘도 종로의 작은 국밥집에서 뜨거운 한 그릇으로 완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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