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병원서는 어렵다”는 장애인들을 활짝 웃게 해준 사람들 [온기]
전국 최초 장애인 전문 치과병원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 의료진
전신마취실 등 장애인 위한 시설 완비
20여 년간 누적 치료인원만 약 10만명
“장애인 치료…다들 근골격계 질환 앓지만
사명감 생겨…환자 보면서 느끼는 점 많아”
![서울시장애인치과병원의 의료진이 장애인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5/ned/20260315074706227pxeg.jpg)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우정(가명) 씨, 들어가요. 하나도 안 아프게 치료해 줄게요.” 진료실 앞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지적장애인인 우정씨는 진료실에 들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문턱에 주저앉았다. 꼼짝도 하지 않으려는 우정씨의 모습을 보고 간호사와 병원 직원이 다가왔다. 직원은 “저번에는 씩씩하게 잘 들어가더니, 오늘은 왜 이러실까”라며 우정씨를 능숙하게 달랬다. 몇 분간의 ‘대치’ 끝에 우정씨는 못 이기는 척 진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호사와 직원은 우정씨를 치과 의자에 눕힌 뒤 ‘페디랩(환자 몸을 고정하기 위한 벨트형 억제대)’으로 우정씨의 팔과 다리를 고정한 뒤 진료를 시작했다.
우정씨의 사례는 서울 성동구 홍익동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 병원의 전수빈공공의료사업팀장은 “우정씨 같은 지적장애인은 돌발행동을 할 수 있는데 치과에는 날카로운 도구들이 많아 위험하다”며 “그래서 우리 병원 체어(치과 의자)에는 페디랩이 설치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은 2005년 전국 최초로 설립된 장애인 전문 치과병원이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서울 지역 장애인의 구강 건강을 전담했던 유일한 기관이다.
지난달 27일 기자가 찾은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은 전동휠체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턱이 없고 입구가 넓었다. 총 4층으로 구성된 치과병원은 1층부터 3층까지 진료실이 총 9개가 마련돼 있었다.
전 팀장은 “병원에는 5~7명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는데 의사 한 명당 하루 20명 정도를 진료하고 있다. 하루 총 100명 넘게 진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특히 병원 2층에는 전신마취실이 있다. 여느 치과 의원에서는 찾기 힘든 시설이다. 전 팀장은 “장애인 환자 중에는 치료를 무서워하거나 아예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단순한 구강 검진이나 스케일링도 전신마취를 해야 할 때가 있다”며 “전신마취가 필요한 환자가 많아 전신마취실을 확장하고 마취과 전문의도 한 명 더 채용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치과병원의 장점은 일반 치과에서는 치료가 쉽지 않은 지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도 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이다.
실제 장애인은 치과 진료의 어려움 때문에 비장애인에 비해 구강검진 비율이 낮다. 국립재활원에 따르면 장애인 구강검진 수검률은 21.1%로 비장애인(30.3%)에 비해 9.2%포인트나 낮았다. 지난해 3월 국립재활원이 발표한 ‘2022년 장애인 건강보건통계’에서도 ‘치은염 및 치주질환’이 ‘코로나19 관련 응급 질환’에 이어 장애인의 다빈도 질환 중 2위를 차지했다.
조혜민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 치과위생팀장은 “장애인 환자들은 비장애인에 비해 치아 상실이나 치주질환 상황이 심각한 사례가 많다”며 “그래서 치료 난도도 높고 치료 기간도 긴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구나 치료 도중 움직이거나 치료를 거부하기도 해 일반 치과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병원을 방문한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구에서 틀니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청각장애인 손순자(72) 씨는 윗니가 6개, 아랫니가 4개만 남은 상태였다. 손씨는 “이가 별로 없어서 주로 누룽지를 끓여 먹거나 했다”며 “틀니를 하고 나면 맛있는 무를 꽉 깨물어 아삭아삭 씹어 먹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장애인의 치과 치료는 비장애인에 비해 어렵다. 이곳에서 장애인도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 잘 구축된 진료 환경도 있지만 여기서 근무하는 의료진의 진정성도 한 몫을 한다.
개원 때부터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황지영 진료처장(통합진료센터장)은 “이곳에 근무하는 의료진 대부분이 처음부터 어떤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온 건 아니었다”며 “그런데 여기서 근무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사명감 같은 게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함께 일하고 있는 다른 선생님들을 보면서도 배우지만, 사실은 환자 분들을 만나면서 느껴지는 것이 더 많다”고 털어놨다.
![황지영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 진료처장은 “이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사명감 같은 게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5/ned/20260315074706845vlei.jpg)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 중 몸이 성한 사람이 없다고 황 처장은 전했다. 비장애인에 비해 더 예민한 장애인을 치료하다 보면 몸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저를 포함한 여기 직원 대부분이 근골격계 질환 한두 개씩은 갖고 있다”며 “환자가 가장 편안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자세를 잡다 보면 체력적인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돌발상황으로 의료진이 다치는 일도 있다. 8년 동안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에서 활동보조사로 일한 박성욱(64) 씨는 “한 번은 여성 환자분 발길질에 걷어차여 몇 미터를 날아간 적이 있다”며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일하는데도 직원들은 항상 환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한다. 그 모습을 보고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은 서울대치과병원에서 수탁운영하고 있다. 운영비의 절반 정도를 서울시에서 지원받고 있는데 지난해 48억원을 지원받았다.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에서는 지난해 1만8200명이 찾아와 진료를 받았다. 개원 이래 누적 진료 인원은 9만2900명에 이른다. 서울시는 보다 많은 장애인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다음달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서부장애인치과병원’을 개원할 예정이다.
손원준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장(서울대 치의학전문대학원 보존학교실 교수)은 “이곳은 처음에 일본의 모델을 벤치마킹해 만들었는데 오히려 지금은 일본에서 우리의 운영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한다”며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지만 좀 더 접근성이 좋은 장소에서 확대해서 운영되면 더 많은 장애인 분들이 구강 건강을 되찾아 즐거운 삶을 사시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은 서울시 거주 장애인이 이용할 경우 비급여 치료 시 기초생활수급자 50%, 건강보험대상자 30%의 진료비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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