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 BiVAD 에서 심장 이식까지, 500일의 긴 여정

40대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생한 완전 방실차단은 결코 가볍게 볼 신호가 아니다. 단순한 전도장애에 그치지 않고, 심근 자체의 구조적 문제나 유전성 심근병증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에게 유전자 검사를 권유했고, 검사 결과 LMNA 유전자 병적 변이가 확인되었다. LMNA 관련 심근병증은 전도장애와 부정맥이 심부전보다 먼저 나타날 수 있고, 가족력 평가와 유전 검사가 중요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LMNA 유전자는 세포핵을 지탱하는 lamin A/C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다. 이 유전자에 병적 변이가 생기면 심장은 단순히 힘이 약해지는 데 그치지 않고, 전기 신호 전달체계까지 함께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이 환자처럼 완전 방실차단이 먼저 나타나기도 하고, 이후 심실빈맥이나 심실세동 같은 치명적인 부정맥이 갑자기 발생할 수 있다. 특히 LMNA 관련 심근병증에서는 남성이 악성 심실성 부정맥과 말기 심부전 위험이 더 높은 독립적 위험인자로 보고되어, 더 적극적인 추적관찰과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
당시 환자의 심기능은 이미 많이 떨어져 있었고, 최근 악화 속도도 빨랐다. 환자에게 이제는 약물치료만으로 버티기 어려우며, 심장이식이나 좌심실보조장치(LVAD)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드렸다. 하지만 환자에게 그 현실은 너무 갑작스러웠던 듯하다. 그는 일단 퇴원을 원했고,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선택은 하루도 가지 못했다. 다음 날 다시 심한 호흡곤란으로 응급 입원하면서,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좌심실보조장치 수술 승인을 기다리며 수술을 이틀 앞두고 있던 밤, 상황은 급격히 무너졌다. 환자에게 지속적인 심실빈맥이 발생했고, 여러 차례 전기충격에도 리듬은 안정되지 않았다. 결국 심실세동으로 진행해 에크모 지원이 필요했다. 밤중에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뛰어나왔을 때, 환자는 이미 반복된 부정맥과 전기충격으로 인해 좌심실뿐 아니라 우심실 기능까지 급격히 악화된 상태였다.
그 순간 분명해졌다. 이 환자는 단순히 좌심실만 도와서는 살릴 수 없는 상태였다. LVAD는 약해진 왼쪽 심장을 대신해 혈액을 전신으로 보내는 장치이지만, 오른쪽 심장이 폐를 거쳐 혈액을 충분히 보내주지 못하면 왼쪽 장치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결국 좌심실보조장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우심실 보조를 위해 CentriMag을 함께 적용하는 양심실보조장치, 즉 BiVAD 전략을 선택했다.
이 결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양심실 보조장치를 삽입한 뒤 우심실 기능의 회복을 기다렸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우심실은 서서히 제 기능을 되찾기 시작했고, 결국 CentriMag은 제거할 수 있었다. 환자는 좌심실보조장치만 유지한 채 회복 과정을 이어갔다.
하지만 회복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장기간 기관삽관으로 인해 삽관 제거 과정도 쉽지 않았고 이후에는 섬망이 심하게 나타났다. 중환자실에서의 섬망은 환자에게도, 의료진에게도 매우 힘든 시간이다. 섬망은 시간과 장소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면서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상태다. 갑자기 집에 가겠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 사람을 밀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 가족이 곁에 있으면 조금 안정되기도 하지만 중환자실에서는 보호자가 항상 함께할 수 없다. 그래서 환자의 안전을 위해 때로는 손이나 발에 억제대를 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그 과정에서 간호사나 코디네이터가 환자에게 꼬집히거나 휘두르는 팔에 맞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안다. 그 모습이 환자의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한 번은 환자가 진정제를 맞고 잠든 뒤였다. 이식 코디네이터가 환자 곁에 조용히 서 있었다. “많이 무서우셨죠.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보세요. 우리가 같이 가고 있어요.”
환자는 대답할 수 없었지만 코디네이터는 한참 동안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환자를 바라보는 이식 코디네이터의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중증 심부전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단순히 기계를 달고 수술을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 불안과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일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 과정을 지나며 환자는 조금씩 안정을 찾았고, 결국 병실로 올라와 재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퇴원하던 날, 우리는 큰 고비 하나를 함께 넘겼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러나 중증 심부전 치료는 한 번의 퇴원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심실 기능이 회복되어 CentriMag은 제거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LVAD 드라이브라인 감염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찾아왔다. 반복되는 감염과 입퇴원 속에서, 이 환자에게 남은 근본적인 치료는 결국 심장이식뿐이었다.
다행히 기증자 연락이 왔다. 다만 기증자의 심장은 스트레스 유발 심근병증(SICMP) 소견으로 박출률이 낮아 보였고, 상위 기관들이 수혜를 진행하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러나 단순한 숫자 하나만으로 심장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 혈액검사, 영상검사, 임상 경과를 함께 보면 이것이 회복 불가능한 손상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기능 저하인지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이번 기증자 심장은 충분히 회복 가능한 심장이라고 보았고, 우리는 그간의 경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식을 결정했다.
그 기증자는 20대의 젊은 여성이었다. 0뇌사 기증자를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한쪽에서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삶을 내려놓은 채 마지막 선택을 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결정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늘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한다. 그 젊은 생명의 마지막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심장이 우리 환자 안에서 다시 뛰어주기를”
기증자의 심기능은 일시적으로 매우 떨어져 있었지만,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환자에게는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이미 LVAD 드라이브라인 감염이 심해 두 달 이상 입원을 반복하고 있었고, 만약 감염이 심장까지 번진다면 패혈증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다.
결국 다소 경계에 있는 기증자 심장이었지만, 필요하다면 수술 직후 에크모 지원까지 감수한다는 전략으로 심장이식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수술 직후 기증자 심장은 즉시 힘차게 뛰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에크모를 삽입해 심장을 쉬게 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심장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고, 결국 에크모를 제거할 수 있었다. 환자는 중환자실을 지나 병실로 올라올 수 있었다.
가족을 위해 생계를 책임지던 40대 가장이 수술실로 향하며 끝내 눈물을 보이던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수술 후 통증과 섬망 속에서 환자는 때로 거칠게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치료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극한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드러난 모습이었다.
환자는 지금도 회복의 과정을 지나고 있다. 아직 치료의 여정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하루하루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 이 환자를 통해 저는 다시 확인한다. 심부전 진료는 때로 가장 어려운 순간에 가장 빠른 결정을 요구하지만 동시에 수치 너머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믿음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된다는 것을.
◇ 의학적 해설: 왜 LMNA가 중요한가
LMNA는 세포핵의 구조를 지탱하는 lamin A/C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다. 쉽게 말해 세포의 “골조”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 유전자에 병적 변이가 생기면 심장 근육세포의 구조적 안정성과 전기적 전달체계가 함께 흔들릴 수 있다.
LMNA 관련 심근병증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심부전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완전 방실차단, 심방성 부정맥, 심실빈맥 같은 전기적 이상이 먼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심장 힘이 좀 약해졌다”는 수준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치명적 부정맥으로 이어질 위험을 함께 봐야 한다.
또한 LMNA 관련 심근병증은 가족력 확인이 중요하다. 가족 중 젊은 나이의 심장박동기 삽입, 원인 모를 심부전, 돌연사, 반복되는 부정맥이 있었다면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평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순용 (sy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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