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여, 이슬람을 받들라”…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된 천년전쟁[Book]
피로 이뤄진 신앙의 역사
이슬람 종교 창시자 무함마드
628년 개종 내세워 선전포고
8년 후 대규모 전투 벌어지며
동로마 군인 ‘궤멸’ 수준 완패
십자군전쟁 등 피의 역사 지속
오늘날 중동 분쟁까지 이어져

서기 628년께 서한을 보낸 발신인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 수신인은 로마제국 황제 이라클리오스였다. 그러니까 저 편지는 신흥종교 이슬람교 창시자가 기독교를 신봉하는 황제에게 개종(改宗)과 죽음 사이에서의 선택을 요구한, 서신 형태의 ‘협박’이었다. 기독교 학계는 “전승”이란 이유로 이 편지를 폄훼하지만 이슬람에선 ‘피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레이먼드 이브라힘의 신간 ‘기독교-이슬람 전쟁사’가 국내에 출간됐다. 이슬람 세계와 서방 간의 1400년간의 군사사를 다룬 책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란·미국·이스라엘 전쟁은 종교전이 아닌 지정학적 안보전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복음주의 목사들의 안수기도를 받고, 이란 하메네이의 죽음이 ‘교황 살해’에 비견되는 충격으로 번져 가는 풍경을 보노라면, 오늘의 전쟁은 기독교·이슬람 문명의 역사적 충돌 위에서의 이해를 요구한다.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636년 야르무크 전투에서 이 책은 열린다. 당시 황제는 이라클리오스. 이슬람의 침략자 칼리드가 로마령 시리아에 집결하자 3만명으로 구성된 제국의 군대가 27㎞에 달하는 장엄한 대열을 이루며 야르무크 강가에 도착했다.
이슬람교 병력은 2만4000명. 처음엔 협상 테이블이 구성됐다. 황제의 협상가가 “전리품을 허락할 테니 더는 피를 흘리지 말라”고 제안하자 칼리드의 충신은 받아쳤다.
“로마인의 피보다 더 달콤한 것은 없다. 우리는 죽음을 이득으로, 삶은 짐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승전하면 현세의 전리품을 보장받고, 전사하더라도 내세의 더 큰 보상이 예정돼 있었으니 이슬람 순교자를 뜻하는 샤히드(shahid)는 안 싸우는 것보다 죽더라도 싸우는 게 ‘이득’이었다. 혀와 혀가 독한 말로 뒤엉키자 남은 것은 칼끝이었다. “알라후 아르바크!”란 함성이 전장의 허공을 메웠다. 이슬람 병사들이 4000명의 기독교도 병사들의 ‘잘린’ 머리를 창끝에 꽂아 로마군 진영 앞을 행진하자 평정심은 무너졌고, 살아 있는 1000명의 기독교도 포로의 목을 내리치자 기독교도들은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생사 외엔 선택지가 없는 6일간의 전투, 그러나 전황은 좋지 않았다. 사막 생활로 야간 시력이 단련된 아라비아인들이 한밤중에 기습을 시도했다. 제국군은 무기를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이슬람의 곡도(曲刀·이슬람의 휘어진 칼) 아래 몸이 잘려나갔다. 이날의 전투를 한 사가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라클리오스가 1년간 엄청난 노력 끝에 집결시킨 동로마 군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1187년 하틴 전투도 두 문명의 충돌을 말해주는 결정적 한 장면이었다. 갈릴리호수 지역을 뜻하는 티베리아스가 살라흐 앗딘이 이끄는 이슬람에 포위되자 예루살렘의 왕 기 드 뤼지냥이 진두지휘하는 십자군은 티베리아스로 출정한다. 문제는 그들이 움직인 시점이 ‘한여름’이었다는 점이었다.
호수의 서쪽을 지나자 십자군은 갈증으로 지쳐버렸다. 바로 그 점을 노렸던 살라흐 앗딘은 쾌재를 불렀다. 천연 수원지가 없는 ‘함정’이었고, 내리쬐는 땡볕 아래 십자군이 포위됐다. 그 순간, 살라흐 앗딘은 땔감과 마른 풀을 전부 모아 장벽을 쌓으라고 지시했다. 가뜩이나 목이 타는데 불길까지 맹렬히 타오르니 십자군은 갈증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매번 기독교가 오욕을 뒤집어쓴 것만은 아니었다. 1212년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는 서유럽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스페인 북쪽 지역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기독교 연합군을 결성한 알폰소 8세의 대승이었다. 돌과 화살로 십자가와 이콘을 공격하는 모습에 격분한 십자군이 이슬람 병력 대열을 무너뜨려 그들을 떼죽음에 이르게 했다. 급료가 밀린 지하드 전사들의 무관심과 불만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어쨌든 이 전투는 기독교 사회에서 ‘기적’으로 받아들여졌다.
636년부터 1683년까지 기독교와 이슬람의 결정적인 전투 8개를 상세히 복기하는 이 책은, 문장마다 감당하기 어려운 피냄새가 난다. 극단주의자로 불리는 전투적인 이슬람교도들이 이슬람교에 충실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슬람교를 ‘납치’한 것인지란 도발적인 질문도 서슴지 않는다.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 이후 12년간의 전도 끝에, 친인척으로 구성된 100명의 추종자를 겨우 얻었을 뿐인 무함마드가 지하드를 주장하며 몇 년 뒤 자신이 치욕스럽게 추방당했던 메카를 탈환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특히 압권이다. 논픽션이란 장르는 이런 책을 위해 존재한다. 원제 ‘Sword and Scimitar(검과 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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