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전남 신안 증도 5년, 시루섬에서 보물섬으로 [앵+글로 본 남도세상]

이건상 기자 2026. 3. 1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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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 짱뚱어 다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 우리에게는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이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익숙한 곳이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를 광각으로 넓혀 이 섬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뜻밖의 이름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섬은 별칭으로 '시리섬(시루섬)'이라 불렸다. 유입된 물마저 시루의 구멍처럼 쑥 빠져나간다는 척박한 땅. 그 메마른 곳이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섬이 되었을까? 바다와 시간, 그리고 사람의 의지가 빚어낸 4가지 반전의 기록을 인문학적 앵글로 포착하려고 했다.
 
태평염전

# 파편화된 조각을 하나로 묶다: 간척이 그린 지도의 반전

본래 증도는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전증도, 후증도, 우전도 등 여러 개의 섬으로 흩어져 있던 파편들이었죠. 기록에 의하면 주민들은 조선시대부터 갯벌에 '구언(내언)'을 쌓고, 그 너머에 다시 '신언(외언)'을 축조하며 끊임없이 땅을 확장했었다.

결정적인 것은 1953년 한국전쟁 직후였다. 피난민들의 터전을 마련하고 소금 생산을 늘리기 위해 두 섬 사이의 광활한 갯벌을 막는 대규모 공사를 하여 흩어졌던 섬들이 비로소 하나의 몸이 되었다. 삶을 개척하려 했던 사람들의 끈기가 땅의 형상을 바꾼 위대한 기록이다.

# 하얀 황금으로 일군 미래: '학교 염전'의 교육적 반전

증도에는 여의도 면적의 약 2배(460만㎡)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태평염전이 있다. 3km에 걸쳐 늘어선 소금밭과 60여 채의 소금 창고는 그 자체로 압도적인 시각적 리듬을 선사한다.

여기엔 뭉클한 사연이 숨어 있다. 섬 주민들은 가난 속에서도 자녀 교육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힘을 합쳐 방조제를 쌓고 '학교 염전'을 조성했다. 염전 수익으로 학교 운영비를 충당하며 미래 세대를 길러낸 것이다. 그래서 생산 시설을 넘어선 이 공간은 현재 등록문화재 제360호로 지정되어 그 숭고한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현장을 재해석하는 사진가의 관점에서 아쉬움 점은 지난 1월에 본 태평염전에는 염전을 대신하여 태양광 패널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속 가능한 미래 세대를 위한 또 하나의 학교 염전일까?
 
짱뚱어 다리
짱뚱어 다리
갯벌의 숨구멍
짱뚱어 다리 해변

# 심해에 잠든 700년의 세월: 침몰이 선사한 역사적 반전

1975년,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온 청자 한 점은 세계를 경악게 했었다. 1323년 중국에서 일본으로 향하다 침몰한 원나라 무역선의 파편이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수중고고학의 효시가 된 이 발굴을 통해 2만여 점의 도자기와 많은 양의 동전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700년 전의 비극적인 난파 사고가 오늘날 동아시아 해상 교역사를 증명하는 찬란한 보물로 되살아난 것이다. 
신안 증도 화도와 칠면초
신안 증도 화도와 칠면초
증도의 바다는 더 이상 죽음의 장소가 아닌, 멈춘 시간을 복원하게하는 경이로운 보물선 신안선은 '역사의 타임캡슐'이 되었다.
 
신안 증도 화도와 칠면초

# 고립이 지켜낸 순수: 화도 노두길이 가르쳐준 기다림

증도의 생태를 상징하는 짱뚱어다리와 화도 노두길은 우리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특히 밀물 때는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가 썰물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1.2km의 노두길은 이 섬의 백미입니다.

자연이 허락한 시간에만 건널 수 있는 이 불편한 길은, 오히려 화도를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섬으로 지켜주었다. '단절'이 어떻게 '보존'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바다의 호흡에 맞춰 길을 내어주고 감추는 노두길 위에서 우리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때'를 기다리는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

봄엔 일상의 빠른 속도에 지쳐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다면, 증도의 노두길 앞에 서보시길 권한다. 바다가 길을 열어줄 때까지 잠시 멈춰 서서 바람 소리를 듣는 동안, 당신은 700년 전의 보물보다 더 귀한 '삶의 여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김덕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덕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