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 IS BETTER, 덜어냄으로써 가벼워지기②

정효림 기자 2026. 3. 14.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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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더 열심히, 더 많이"를 외치는 시대에 역으로 무언가를 비워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막상 내려놓고 나면 생각보다 훨씬 가벼워지는 것들이 있다. 덜어내고, 그만둔다는 건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진짜 나를 위한 것들만 남기는 일이다. 올봄, 당신이 비워내고 싶은 건 무엇인가.

나는 '직장'을 그만뒀다

김도훈 작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병원을 나오면서 마침내 깨달았다. 나는 급성 우울증 환자였다. 그리고 매체 편집장이었다. 컴퓨터 앞에서 기사를 편집하다가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독자들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검색할 법한 문장을 구글에 입력하고 있었다.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법'.

우울증은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병이다. 도대체 뭐가 원인인지도 알 수 없다. 그냥 가끔 뇌가 '죽고 싶다'는 문장을 자동적으로 떠올린다. 어떤 사람은 그 생각을 즉시 실행에 옮기고, 어떤 사람은 오래 붙들고 있다가 실행한다. 나는 언제나 꽤 행복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병이 어디서 기인한 건지 궁금했다. 기자답게 온갖 의학 서적을 붙들고 연구했다. 허망한 짓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우울증에 걸린다. 남의 우울증을 공부해봐야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애 처음으로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말했다. "확실한 우울증 증세네요.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약을 받고 나왔다. 그걸 먹으면 내일은 다시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약을 먹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병원을 네 번이나 바꿨다. 의사들의 말은 항상 같았다. 어떤 의사는 무심했고, 어떤 의사는 지나치게 친근하게 굴었다. 둘 다 상관없었다. 내게 필요한 건 갑자기 찾아온 이상한 생각들을 없애 주는 약이었다.

결국 큰 병원에 갔다. 그리고 입원을 권유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스스로 정신병동에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그 순간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 두뇌가 자기 멋대로 벌이는 무기력과 근심, 죽음의 파티를 내가 멈출 수 없었다. 눈을 질끈 감고 걸어 들어갔다. 거기서 정말이지 많은 사람을 만났다. 큰 디자인 회사 대표도 있었고 전직 아이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나는 알았다. 우울증이 사라졌다는 것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나는 병원을 걸어 나왔다. 완치였다.

몇 주 뒤 나는 사표를 냈다. 입원 생활은 수많은 감정적 자극으로부터 나를 완전히 격리시키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퇴원하는 순간 깨달았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할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을 보호할 방법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사실 나는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일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험한 세상에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건 언제 일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20년을 넘게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은 직장이 세상에서 제일 익숙하다. 4대 보험이 되고 마이너스 통장 개설이 쉬운 직장을 그만둔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하고 산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울증이라는 짐을 덜어내고 싶은 분들에게 실용적인 조언 몇 가지를 남기고 싶다. 자신에게 맞는 의사와 약을 찾는 건 매우 중요하다. 병동에 입원한다고 그깟 인생 끝나지 않는다.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필요하면 과감하게 걸어 들어가시라. 회사는 그만둬도 괜찮다. 인생 길다. 기회는 또 여러분 인생에 걸어 들어온다. 보험료는 오르고 마이너스 통장 만드는 건 좀 힘들 수도 있고 보너스도 없을 테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보너스는 아니다.

<김도훈 작가의 Less is Better 실천법>

① 무엇을 그만뒀나
직장을 그만뒀다.
② 왜 그 결정을 했나
우울증.
③ 가장 어려웠던 순간
영원히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냐는 걱정이 뇌를 잠식할 때.
④ 덜어낸 후 달라진 것
결국 다시 일은 돌아왔다. 통장은 조금 얇아졌지만 마음은 많이 가벼워졌다.
⑤ 독자에게 비움을 권한다면
비울 때는 과감하게 비워 버려야 한다. 영원히 채우기만 하는 삶은 결국 넘치고 터진다.

나는 '나이에 맞춘 사고방식'을 그만뒀다

정효림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만 29세다. 한국에서 누가 만 나이를 쓰냐고 하지만, 연예인 프로필에도 뉴스 속 취재원 이름 뒤 숫자에도, 전부 만 나이로 기재된다. 그러니 공식적으로 나는 아직 20대다. 물론 몇 달 뒤 생일이 지나면 아무 소용없는 선언이 되겠지만.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에서 유독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나처럼 탈선 없이 정규 교육과 졸업, 취업을 순서대로 이행해 온 평범한 한국인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주변이 모두 같은 트랙 위에 있으면, 의식하지 않아도 누가 인생의 어떤 단계를 거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인식한 정보는 어느새 나의 다음 선택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대학 졸업, 취업, 연애, 결혼, 내 집 마련. 그리고 출산으로 다시 이어지는 일반적인 삶의 사이클. 사람마다 속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한 순서로 인생의 사건들이 이어진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종종 질문 대신 기준을 먼저 받아들인다. '이 나이면 이런 걸 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들이다. 

동갑내기 친구들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이제 우리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해." 서른이 되면 연애도, 직장도, 삶의 방향도 더 이상 탐색이 아닌 정착의 단계에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관심사가 넘치고 더 해보고 싶은 게 많다고 했더니 돌아온 것은 의문이 섞인 칭찬이었다. "어떻게 너는 아직도 그렇게 열정이 넘치냐. 20대 같다. 멋지다."

사실 나는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공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서의 생활,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방식의 삶 등이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털어놓으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지금 이 시기에?" 혹은 "너무 리스크가 크지 않겠어?"하는 반응이다. 그럼 나는 그냥 한 번 말해본, 지나가는 말인 것처럼 웃어넘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스타 강사 김미경은 최근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100세인 시대인 만큼, 현재 나이에서 20살을 빼고 스스로의 나이를 인식해 보라고. 1994년 28세였던 한국의 중위연령이 2025년 46세로 올라갔으니,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는 설명이었다. 그 계산을 나에게 대입해 보면 나는 아직 10살 정도다. 10살이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왕성할 때가 아닐까.

나이라는 숫자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우리 모두가 하는 일이다. 어쩌면 나도 "나이에 맞춘 사고방식을 그만뒀다"면서도 그 기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앞서 원고를 함께 써준 조진혁 에디터, 임현서 변호사, 김도훈 작가도 아마 각자가 그만뒀다고 선언한 것들을 아직 조금씩은 붙잡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걸 그만뒀다"고 한 번 소리 내어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신도 한번 말해보시라. 나는 ___을 그만뒀다고. 

<정효림 기자의 Less is Better 실천법>

① 무엇을 그만뒀나
서른이라는 숫자에 몸과 마음을 맞추는 일.
② 왜 그 결정을 했나
나도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관심 가는 것들이 자꾸 생기는 걸 어떡하나.
③ 가장 어려웠던 순간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정착'하는 것처럼 보일 때. 
④ 덜어낸 후 달라진 것
무엇을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이 줄어든다.
⑤ 독자에게 비움을 권한다면
삶의 방향에 대해 억지로 선택지를 좁히려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들을 실제로 해보는 게 오히려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 가장 빨리 찾을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정효림 기자 jhli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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