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가 가져간 2026년 프리츠커상… 가야 할 길 먼 한국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올해는 칠레가 가져갔다. 갈 길 먼 한국

아내이자 조각가인 마르셀라 코레아와의 공동 작업인 대표작 '직각의 시를 위한 집'(2013)은 르 코르뷔지에의 석판화 연작 '직각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주택이다. 위쪽을 향한 개구부를 통해 빛과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사유와 명상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라디치의 건축은 형태보다 재료와 질감, 공간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만든다"며 "건축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 돌아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탐구한다"고 평가했다.
◆건축계 최고 영예, 수상자 일본인 최다
1979년 시카고의 프리츠커(Pritzker) 가문이 하얏트 재단을 통해 설립한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권위의 건축상이다. 특정 건물 1개가 아니라 '완성된 건축 작업의 총체(body of built work)'를 대상으로 건축사무소·법인이 아니라 개별 '건축가'에게 수여된다. 인종·국적·이념 등과 무관하게 후보가 될 수 있으며 전 세계에서 추천을 받는다. 애초 노벨상 모델을 참고해 제도를 설계했다고 한다. 수상자 선정은 5~9명의 독립적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외부 영향 없이 독립적으로 결정하며 심의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한국은 건축 설계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나라지만 아직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건축계에서는 그 이유가 건축가 개인의 역량 부족이라기보다 국제 건축 환경과 제도적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국제 건축계의 중심이 여전히 미국과 유럽에 쏠려 있다는 점이 꼽힌다. 주요 건축 저널, 건축학교, 국제 전시, 학술 네트워크가 대부분 서구에 집중된 탓에 한국 건축가의 작업이 국제 담론 속에서 충분히 소개되지 못하고 평가 과정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쉽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독 높은 평가를 받아온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일본은 1960년대 이후 건축 연구·출판·전시 체계를 꾸준히 구축해 왔다. 건축가들의 작업을 영어 단행본과 국제 학술지, 해외 전시를 통해 꾸준히 알려온 결과, 자연과 공간을 중시하는 독자적인 건축 언어가 세계 건축계의 공용어처럼 자리 잡았다. 안도 다다오·이토 도요오·세지마 가즈요·반 시게루 등 9명의 수상자는 그 집적의 산물이다.
심사 방식도 변수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들은 후보 건축가의 주요 작품을 직접 방문해 공간 경험을 평가한다. 국제적으로 알려지고 접근하기 쉬운 프로젝트가 많을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축 기록의 빈곤도 문제다. 건축가의 작품을 도면·사진·연구서·사용자 증언으로 체계적으로 축적하는 문화가 국제 건축계에서는 일종의 관행인데, 한국은 그 인프라가 취약하다. 전문가들은 영어 모노그래프 출판과 공개 아카이브 구축을 서두르는 한편, 공공 건축 발주 방식도 단기 비용·일정 중심에서 벗어나 설계 품질과 사회적 성과를 함께 평가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건축가들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와 해외 대학, 국제 설계 공모 등에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변화다.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려면 개별 건축가의 역량을 뒷받침할 제도와 기록 문화가 함께 성숙해야 한다는 게 건축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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