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납치·감금해 15시간 강제 작업…피싱 범죄 온상으로 전락한 ‘이 나라’ [박민기의 월드버스]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6. 3. 1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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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온라인 피싱 ‘사기 공장’ 확산
‘고액 일자리’에 속은 외국인 강제 투입
미얀마·필리핀 등 동남아 전역으로 확대
취약한 통치 체제·내부 부패에 범죄 증가
AI 도입으로 사기 수법 갈수록 치밀해져
수익 규모 빠르게 늘어…지정학적 갈등도
캄보디아 경찰이 온라인 피싱 범죄 조직의 ‘사기 공장’을 수색하는 모습 [사진 출처 = 로이터 연합뉴스]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 지역에 마련된 한 작업장. 컴퓨터와 전화기가 설치된 책상들이 빽빽하게 놓인 장소에서 작업자들이 하루 15시간씩 근무하며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돌립니다.

이들은 전 세계 70개국에서 온 해외 노동자들로 캄보디아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온라인 피싱 범죄 조직을 위해 일합니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가상자산이나 허위 사업 투자를 미끼로 피해자들이 돈을 보내도록 유도하고 실제 입금되면 잠적하는 것입니다.

이는 최근 캄보디아에서 확산하고 있는 온라인 피싱 범죄 조직의 ‘사기 공장’에서 매일 벌어지는 풍경입니다. 사기 공장은 콜센터를 닮은 조직형 범죄 사업장으로 해외 노동자들을 배치해 하루 24시간 피싱 범죄를 위한 연락을 돌리도록 시킵니다.

그러나 이들 노동자들은 스스로 원해서 범죄에 가담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액의 해외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광고에 속아 입국하면 그 즉시 여권을 빼앗기고 감금돼 폭행과 고문에 시달리다 결국 연락책 역할을 수락하는 것입니다.

피싱 범죄 조직은 이 같은 방법으로 매년 수십 억 달러를 갈취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사기 공장을 운영하는 범죄 조직의 배후는 주로 중국계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외딴 지역부터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공격적으로 활동하며 매년 수십 억 달러를 빼돌리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당국은 올해 1월 초부터 2월 초까지 약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사기 공장 190곳을 단속하고 작업자 약 1만1000명을 추방했습니다.

온라인 피싱 범죄를 위한 사기 공장은 캄보디아를 넘어 미얀마, 라오스,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동남아가 온라인 피싱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사기 공장의 운영 방식도 점점 더 체계화되고 있습니다. 한 층짜리 건물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작업자들을 위한 기숙사와 각종 편의시설 등을 갖추는 등 대형 시설로 운영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이들을 감시하기 위한 높은 벽과 무장 경비도 배치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최대한 많은 표적들로부터 돈을 갈취하는 것입니다. 범죄 조직의 수법 역시 갈수록 치밀해지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피싱 이메일이나 가짜 구인 제안 등 단기간에 끝나는 사기가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몇 달에 걸친 사기 범죄도 급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른바 ‘돼지 도축’이라고 불리는 사기 수법으로 돼지를 도살하기 전 최대한 살을 찌우는 것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표적의 신뢰를 최대한 얻어 더 많은 액수를 갈취하는 것입니다.

사기 공장에서 발견된 100달러 지폐들 [사진 출처 = 로이터 연합뉴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는 오래 전부터 불법의 주 무대 역할을 해왔습니다. 온라인 피싱 범죄 전에는 마약, 무기 밀수, 인신매매, 불법 도박의 온상이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범죄가 활개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취약한 통치 체제가 지목됩니다. 지난 2021년 초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는 나라를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시켰고 내부 감독 기능도 약화시켰습니다. 소수민족 반군이 활동하고 국가 통제가 제한적인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사기 범죄를 위한 거점이 우후죽순 늘어났습니다.

아울러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해외 이동이 금지되고 불법 카지노 수입이 고갈되면서 범죄 조직은 수익 창출을 위해 오프라인 도박에서 온라인 피싱 사기로 방향을 빠르게 틀었습니다.

범죄 조직은 신축 건물 안에 사기 공장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건물주들에게 높은 임대료를 제공했습니다. 특히 캄보디아는 국제투명성기구(TI)의 지난해 부패 인식 지수에서 100점 만점에 20점을 받으며 182개국 중 163위로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가상자산의 확산은 온라인 피싱 범죄의 활동 무대를 동남아를 넘어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 전 세계로 넓히고 있습니다.

특히 범죄 조직이 온라인 피싱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기 시작해 수법이 더 정교해지면서 각국 정부의 도난 자금 추적과 환수도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조직 총책들이 적발을 피해 끊임없이 국경을 넘나들며 거점을 옮겨 단속 강화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국가마다 관련 법률과 집행 수준이 달라 국제 공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캄보디아는 최근에서야 온라인 사기를 겨냥한 별도 법률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온라인 피싱 범죄가 더 큰 우려를 낳는 이유는 막대한 수익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평화연구소는 온라인 피싱 등 사기 조직을 운영하는 글로벌 범죄 네트워크가 지난 2023년 전 세계에서 640억달러(약 94조원)를 빼돌린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미국 정부 집계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2024년 온라인 사기 피해액은 50억달러(약 7조4000억원)로 전년 대비 42% 증가했습니다. 피해자 상당수가 신고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온라인 피싱 등은 이제 단순 범죄를 넘어 지정학적 갈등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얀마 군정과 캄보디아 정부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사기 조직에 대한 더 강한 단속을 요구해왔는데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는 중국 정부가 이를 발판 삼아 동남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매일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알면 알수록 더 좋은 국제사회 소식.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주의 가장 핫한 이슈만 골라 전해드립니다. 단 5분 투자로 그 주의 대화를 주도하는 ‘인싸’가 될 수 있습니다. 읽기만 하세요. 정리는 제가 해드릴게요. 박민기의 월드버스(World+Univers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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