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민족 아닌 국가로 관리해야”… 대북 전략 전환 제언
‘특수관계’ 넘어 국가 관계로…주권 인정 논쟁
북한 대신 주변국 활용…러·중·일 협력 우회 전략
북한을 더 이상 ‘통일 대상’으로만 볼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가 관계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지난달 열린 9차 노동당대회에서 ‘적대적 두 국가’를 사실상 공식화했고,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급변하는 안보 환경에 따라 대북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제언이 이어졌다.

◆정세현 전 장관 “남북연합 목표 명시해야”
정 전 장관은 북한이 한국에 선을 그은 현 상황에서 평화 공존 정책의 ‘종착역’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2024년 최고인민회의에서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다. 남북관계를 더 이상 민족 내부의 문제로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난달 9차 당대회에서는 이 같은 노선을 재확인했다. 남북 교류 통로는 대부분 차단되고, 북한이 국경선에 장벽을 세우고 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남측의 교류 제안을 결국 ‘흡수통일(독일식 체제 통합 모델)’로 가는 과정이라고 의심한다”며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남북연합’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당장 화해나 교류할 수 없다면, 서로의 담장을 인정하되 충돌을 막는 ‘좋은 담장’과 ‘차가운 평화’를 정책의 틀로 가져가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좋은 담장은 서로의 경계를 인정할 때 갈등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차가운 평화는 군사 충돌을 방지하고 제한적으로 접촉하면서 평화를 유지하는 개념이다.

현실적으로 북한을 가장 높은 수준인 국가 수준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남북 관계를 ‘특수 관계’에서 ‘국제법적 주권 관계’로 전환하자는 내용이다.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는 “교류 협력은 주권을 인정한 뒤에 나타나는 후속 전략이지 입구 전략이 아니다”라며 “체제 인정을 넘어서 주권 인정, 영토 보전 등 국가 수준의 주권을 인정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실상 ‘두 국가’ 개념이 이번 정부 들어 처음 등장한 건 아니다. 김대중정부는 이미 내부적으로 ‘두 독립 정부’, ‘두 독립 국가’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북한의 실체를 인정했다는 설명도 나왔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김대중정부처럼 주권을 인정하는 ‘소극적 공존’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경옥 충남대 교수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과 한국의 특수관계론이 병립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관리해야 한다”며 독일 모델을 언급했다. 과거 동서독도 1972년 기본 조약을 맺을 때 국가 인정 문제를 둘러싼 입장 차이를 해소하지 못한 채 각자의 해석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다만 독일과 한반도의 상황이 다른 점은 북핵 문제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부원장은 “비핵화가 당장 어렵다면 정책 목표를 ‘핵 폐기’에서 ‘전략적 안정성 확보’로 전환하고, 평화체제를 통해 비핵화를 견인해야 한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북한만 바라보던 눈을 돌려 주변국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무엇보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민족 문제가 아닌 대외관계로 격하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과거처럼 북한을 경제 협력으로 유인하기는 쉽지 않다. 이제훈 한겨레 북한전문기자는 “북한은 9차 당대회에서 ‘발전권(경제)’과 ‘안전권(핵)’을 양대 개념으로 정식화하면서 경제적 자신감을 보였다”며 “총알(핵)을 위해 사탕 알(경제)을 포기하던 시대에서 둘 다 가능한 시대로 진입했다고 자평했다”고 진단었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 ‘사탕알은 없어도 총알은 있어야 한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그러나 이번 당대회에서는 “사탕 알은 없어도 총알은 있어야 한다던 우리 인민의 신념이 이제는 사탕도 총알도 다 있어야 하며 우리는 결심하면 무엇이든지 모두 만들어 낸다는 자신감으로 승화됐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경제적 자립력을 키운 북한이 남북관계 의존을 줄이면서 대외 관계를 확대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파병을 계기로 무기 및 군사 협력에 나서며 러시아와의 교류를 확대하고 있고, 북·중 교역·여객열차 재개 등 중국과의 경제 관계도 유지하고 있다.
한국도 러시아와의 보건·환경협력으로 북한 참여를 유도하고, 중국 한반도사무 특별대표인 류샤오밍과의 만남으로 교류를 이어가는 등 북한 교류국과의 프로토콜을 확대해야 한다는 전문가 제언이 이어졌다. 미·일 동맹의 역할 분담이 재조정되는 상황에서 일본의 외교적 자율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대북 협상 채널에서 일본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자문단은 이날 나온 제언들이 실질적인 정책으로 구체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혜정 중앙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과 중국 모두 우리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도 의지도 없다”며 주변국의 속도에 맞추는 ‘페이스메이커’에서 우리가 평화를 주도적으로 설계하는 ‘피스메이커’로 넘어갈 때라고 강조했다.
장민주 기자 chapter@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45만 월세의 반란” 박군, 30억 연금 던지고 ‘15억 등기부’ 찍었다
- ‘200배 수익설’ 이제훈, 부동산 대신 스타트업 투자한 이유
- 냉동실에 오래 둔 고기 하얗게 변했다면 먹어도 될까
- 정비공 출신·국가대표 꿈꾸던 소년이 톱배우로…원빈·송중기의 반전 과거
- “인생 안 풀리면 관악산 가라”…역술가 한마디에 ‘개운 산행’ 열풍 [이슈픽]
- “언니 변호사, 동생 의사” 로제·송중기 무서운 ‘집안 내력’ 보니
- “편의점 도시락 그대로 돌렸는데”…전자레인지 ‘3분 습관’의 숨은 위험
- “포르쉐 팔고 모닝 탄다… 훨씬 편해”…은혁·신혜선·경수진이 경차 타는 이유
- 연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하정우·차인표·유준상 ‘제2의 직업’
- 똑같이 먹어도 나만 살찌는 건 ‘첫 숟가락’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