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값 앞지른 경유값…중동발 고유가가 만들어낸 기묘한 풍경

박정원 2026. 3. 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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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 / 연합뉴스



지난 2월 28일 발발한 미·이란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했다. 정부는 1997년 IMF 사태 이후 ‘유가상한제’를 약 30년 만에 도입하려 한다. 경유가 휘발유값을 역전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해외에서는 각기 다른 대처를 보이고 있다.

석유는 세계경제에서 혈액 역할을 한다. 자동차, 항공, 화학, 플라스틱, 전력 생산, 물류 등 대부분의 산업이 석유와 직결된다. 유가가 들썩이면 금융시장 전체가 함께 흔들린다.

중동전쟁 여파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국내 휘발유값은 2000원을 웃돌고 있다. 이에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도입한다고 3월 10일 밝혔다.

유가가 상승하는 가장 큰 원인은 중동이 갖는 지정학적 리스크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UAE 등 세계 최대 산유국이 중동에 몰려 있다.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시장 내 공급은 감소한다.

이번 유가 상승은 호르무즈해협과 관련 있다. 이 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외해를 연결하는 바닷길이다. 전 세계 원유 공급의 약 20%가 이 길을 통해 이뤄진다. 전쟁과 같은 상황으로 이 통로를 차단하면 석유 공급이 감소한다는 우려가 생기고 시장은 가격이 치솟는다.

정부가 도입할 석유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에 상한선이 붙는 방식이 유력하다. 개별 주유소 가격을 일일이 규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제유가에 마진을 더해 공급가격에 상한을 설정하고 이를 2주 단위로 조정한다. 처음 정한 최고가격은 현재 시중 가격보다 낮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가 석유 가격에 개입한 것은 지난 1997년 유가 자유화가 마지막이다. 약 30년 전 IMF 때다.

 기름값 상승에 하이브리드차 인기 더 높아져 

9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국내 판매하는 석유 제품 중 경유가 가장 크게 올랐다. 3월 1일 리터당 평균 1600.85원이던 경유가 8일 1917.73원으로 300원 넘게 상승해 휘발유 가격을 뛰어넘었다. 같은 기간 휘발유는 약 200원 올랐다.

국제 시장에서 경유가 휘발유보다 일반적으로 비싸다. 정제 난도가 더 높고 실제로 유럽에서는 난방유를 비롯해 경유 수요가 많다. 다만 국내에서는 휘발유가 경유보다 더 높은 가격이 유지된다. 리터당 유류세가 휘발유는 763원인 반면 경유는 523원인 영향이다.

이란 전쟁이 터지며 국제 시장에서 경유가 휘발유보다 더 빠르게 올랐다. 이는 국내 유류세 차이를 상쇄할 정도다. 따라서 국내 주유소에서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뛰어넘었다는 것이 정유업계 설명이다.

휘발유는 자가용 중심이라 가격이 올라도 대중교통 등으로 수요가 조정 가능하다. 반면 경유는 자동차 외 대형선박, 난방, 발전, 농·어업, 건설, 화물 등 상업용 차량 비중이 높아 수요 범위가 더 넓다.

지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경유값이 휘발유값을 역전했다.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국제유가와 보통 2주에서 3주 정도 시차를 갖는다. 이번에는 중동발 공급에 직접 차질이 생겨 충격이 더 크고 빠르게 반영된다는 분석이 따른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내 주유소에서는 고급휘발유가 휘발유보다 더 저렴한 상황도 벌어졌다. 유통량이 가장 적은 고급휘발유의 가격 인상 속도가 제일 느린 영향이다. 실제 경유와 휘발유가 각각 300원, 200원 상승할 때 고급휘발유는 150원 올랐다.

고급휘발유 가격이 3000원 가까운 수준까지 상승하면 소비자들은 엄두를 내기 힘들어진다. 고급휘발유 수요가 더 낮아지는 동안 휘발유 가격이 역전할 수 있다고 풀이된다.

기름값이 급등하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온라인 신차 구매 플랫폼 카랩이 3월 1일부터 10일까지 접수된 신차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전체 견적 요청 1만1505건 중 친환경차(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차)가 6470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5%, 전월 대비 24% 증가한 수치다. 친환경차 견적이 처음으로 내연기관차(5035건)를 넘어섰다.

유가 급등으로 중장비 대여업체들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건설업이 불황이라 장비가 필요한 현장은 줄었다. 여기에 유가까지 오르며 비용부담은 더 커졌다는 해석이다. 대여업체들이 굴착기나 중장비에 대해 대여 요청을 받으면 장비를 현장까지 이동시킨다. 그러나 유가가 오르며 장비를 현장으로 옮길 경우 손해가 커져 요청을 받지 않고 장비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름값이 싼 주유소에 차들이 몰리고 있다.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경우 조금이라도 기름값을 절약하기 위해 30분 거리를 운전해 ‘원정 주유’를 한다.

미국·유럽보다 한·중·일이 더 충격

미국에서 기름값이 가장 크게 상승한 곳은 캘리포니아주다. 영국 인터내셔널비즈니스타임스(IBT UK)에 따르면 11일(미국 현지 시간) 휘발유 가격이 갤런(약 3.8리터)당 5.29달러(약 7800원)까지 올랐다. 전주 대비 62센트, 한 달 전 대비 80센트 상승했다. 한화로 계산하면 리터당 약 2054원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자동차 의존도도 높고 물류와 통근 이동량도 많다. 해당 주에서는 환경 규제, 수익성 문제 등으로 일부 정유소가 폐쇄되고 가동이 줄었다. 높은 수요에 공급이 감당을 못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남아시아 상황도 좋지 않다. 10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연료 사용과 정부 지출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국제유가 급등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은행을 제외한 정부 기관을 대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실시한다. 전체 직원 절반 정도는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학교는 다음 주부터 2주간 휴교하고 대학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또 각 부처 예산의 20%를 삭감하고 장관 및 공무원의 해외출장도 대부분 제한한다.

파키스탄은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 국제유가 상승에 취약하다. 최근 유가 급등으로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리터당 55루피(약 290원) 인상했다. 역대 가장 많이 오른 수치다.

남아시아 내 또 다른 국가 방글라데시는 이슬람 최대 명절 ‘이드 알 피트리’를 앞당겨 모든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다. 방글라데시 인구는 1억7000만 명이다. 석유와 가스 약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10일 기준 도쿄 시내 한 주유소에 리터당 160엔(약 1488원)을 확인할 수 있다. 회원 할인, 앱 결제 할인 등을 적용하면 약 153엔(약 1423원)까지도 내려간다고 알려진다. 국내 기름값에 비해 리터당 300~400원 정도 저렴한 수준이다.

이런 차이에는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정책을 내놓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따른다. 지난 202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약 80조원을 투입했다. 정유사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며 유가 상승을 막기 위함이다. 또 보조금 정책을 폐지하며 1974년부터 50년 넘게 유지한 ‘연료 잠정세율’을 없앴다. 기름값 안정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된다.

다만 일본도 원유 중동 의존도가 95% 수준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가격 안정 정책도 지속되기 힘들 수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CBS에 따르면 3월 5일(현지 시간) 기준 미국에서는 평균 기름값이 갤런당 26센트 올랐다. 갤런당 휘발유값이 3.246달러로 2025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미국인들은 평균 갤런당 4.765달러를 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정원 인턴기자 jason2014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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