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하우스 오브 카드', 그리고 이를 막아선 연방대법원 [송호창의 워싱턴 인사이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에서 프랭크 언더우드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저지르는 인물이다. 얼음처럼 차가운 심장으로 모든 상황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휩(whip, 채찍)이라고 불리는 원내총무의 역할을 언더우드만큼 냉혹하게 수행하는 사람은 없다. 온갖 술수와 협박, 회유로 당 지도부를 따르지않는 의원들을 길들이고 ‘인생은 도박이다’라는 신조에 따라 주변 사람들을 단순한 도구로 쓰고 버린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여 거추장스러운 의회의 견제 절차를 무력화시킨다. 의회 승인 없이 중국에 19%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했다가 상대의 허점이 보이면 하루 만에 20%로 말을 바꾸기도 했다. 선거 과정에서 국가정보 기관을 악용하여 거짓 테러 위협을 만들고 투표 과정을 방해하기도 한다. 10년 전 이 드라마를 처음 볼 때는 혈기방자한 작가의 상상력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현실의 뉴스에서 언더우드를 보게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취임 첫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25년 4월 2일 ‘해방의 날’을 선언하면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라 전 세계에 10%의 상호관세와 국가별 추가 관세를, 중국·캐나다·멕시코에 펜타닐 공급망과 관련하여 별도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오랜 동맹국까지 새로운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갈피를 못잡고 혼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미국 의회는 전례 없는 대통령의 전횡 앞에서 무능할 뿐이다. 리사 머코위스키 상원의원(공화당)은 그린란드에서 트럼프의 합병 위협에 대한 덴마크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미국 헌법에 따라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그 답변을 하면서도 스스로도 그말을 믿지 못했다고 자괴감을 털어놓았다. 미 의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치적 편의를 위해 전쟁, 무역, 예산 배정 권한 등 헌법상 의회의 고유권한을 대통령에게 양도했다. 그 결과 이제는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이나 외국 정부에 대한 조치, 협의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동맹국을 위협하고 국제질서를 혼란시켜도 의회가 견제할 수 있는 힘은 사실상 없어졌다.
결국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가 나섰다. 나는 2026년 2월 20일 워싱턴에서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상호관세, 국가안보 관련 관세 등에 대해 위헌 무효 판결을 내리는 것을 직접 보았다(철강, 알루미늄 관세와 다른 법에 근거한 관세는 판단 대상이 아님). 9명 대법관 중 과반수 이상은 이미 트럼프 정부의 공개 변론 과정에서 위헌판결 가능성을 내비쳤었다. ‘비상권력은 언제나 비상사태를 야기하기 쉬운 경향이 있다’라는 오랜 문구로 시작되는 판결은 준엄하고 확고하였다. 이번 판결은 오랫동안 흐릿해졌던 미국의 권력분립 원칙에 조명을 비춰 그 경계선을 명확하게 확인시켜준 사건이다. 이번 판결은 한마디로 “의회가 비상법을 만들면서 관세라는 단어를 일부러 빼두었는데 대통령이 그 빈틈을 이용해 관세 권한까지 가져가는 것은 안 된다”는 선언이다.
판결의 중요 이유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한 6–3 다수의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IEEPA에 규정된 ‘수입을 규제(regulate importation)’하는 권한을 ‘세금을 부과(tax)’할 권한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면 대통령은 ‘비상사태’만 선포하면 언제든, 얼마든, 얼마 동안이든, 어느 나라에든 관세를 임의로 부과할 수 있게 된다.
둘째, 다른 관세법들은 의회가 권한을 위임할 때 세세하게 절차·상한을 정해 놓는다. 셋째, 미국 헌법은 세금·관세 권한을 의회에만 부여한다(Congress alone). 결국 “1977년 제정된 IEEPA를 근거로 한 상호관세는 헌법이 허용한 범위를 명백히 넘었고 의회 권한을 침해해서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트럼프가 재판 과정에서 ‘이 관세 권한이 경제, 정치적으로 중요하며 관세 파급 효과가 엄청 커서 미국이 부유한 나라로 남느냐 가난한 국가가 되느냐(Whether we are a rich nation or a poor one)가 달려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대법원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관세 권한은 대통령이 아니라 연방의회에 있다고 명확하게 판결문에서 밝혔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특히 “IEEPA에는 tariff·duty(관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더욱이 지금까지 어떤 대통령도 IEEPA가 관세 권한을 부여한다고 해석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조세와 관세 기본 원칙
미국 헌법의 기초를 만든 제임스 매디슨은 미국 헌정 구조의 핵심을 “권력은 권력으로 제어한다”는 원리로 설명했다. 그는 ‘연방주의자 논집(The Federalist Papers)’에서 인간의 권력 욕구는 선의로 억제되는 것이 아니므로 ‘제도(시스템)’를 통해 통제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인용하면서 대통령의 권력을 제도적, 구조적으로 통제한 사례다. 판결문에서도 밝힌 것처럼 사법부는 행정부의 정책 판단이 경제적으로 타당한지 여부를 다루지 않고 그 정책이 헌법이 허용한 권한 범위 안에 있는지만을 판단한 것이다. 이는 정부기관 권한의 정당성을 심사하는 사법 심사의 전형적인 기능이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헌법재판소가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대통령의 관세부과 권한의 한계, 경계선을 밝힌 것과 같다.
미국 헌법은 조세·관세 권한을 매우 분명하게 ‘의회’(특히 하원)에 둔다. 헌법상 조세조항은 “모든 세입 법안은 하원에서 발의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관세·무역 규정을 정하는 권한은 의회에 전속하는 입법권이라고 못 박혀 있다.
이 규정은 영국 의회가 왕의 자의적인 과세에 맞서 싸우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고 “대표 없는 과세는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라는 미국 독립혁명 구호가 미국 헌법에까지 이어진 오랜 역사를 가진 원칙이다. 현대에 와서 조세라고 하면 소득세, 법인세 등 국민들으로부터 징수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미국의 건국 초기 미국에는 국내 산업이 없었고 주로 유럽으로부터 물품 수입에 의존해왔으므로 연방정부의 주된 재원은 대부분 ‘관세’였다. 세금부과(과세)는 주로 수입물품에 대한 관세였던 것이다. 제1차 연방의회가 최초로 행사한 과세권도 그래서 ‘관세법’이었다.
이번 판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경제시스템을 만든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을 인용해 “과세권은 연방에 부여된 가장 중요한 권한”이며 ‘관세권은 과세 권한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과세 권한은 ‘파괴할 권력(power to destroy)’이자 국가의 존재와 번영에 필수적인 권력”이라며 이처럼 막강한 힘을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되기 때문에 연방의회의 전속권한으로 못 박았다는 제도의 역사까지 상세하게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정부는 의회의 통제 없이 관세권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중국·캐나다·멕시코 등을 상대로 한 관세율을 10%에서 단기간에 125~145%까지 자의적으로 폭등시키면서 혼란을 일으켰으니 한계를 넘은 권력행사로 무효라는 판단이다.
대법원 판결로 공은 의회로 넘어갔지만, 정작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는 힘도, 의지도 없다. 결국 11월 중간선거에서 미국인들의 선택이 미국의 미래를 좌우하게 되었다.
송호창 대륙아주 미국전략본부장(변호사,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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