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충격에 日경제 성장·금융정책 ‘시험대[재팬인사이드]

서혜진 2026. 3. 1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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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중동에서 이란을 둘러싼 군사 충돌이 격화되면서 일본 경제가 다시 '지정학적 리스크' 시험대에 올랐다. 일본은 원유 수입의 9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에너지 수입국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와 국제 유가 상승이 동시에 현실화되면서 산업 생산과 금융시장, 거시경제 전망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중동 지역에는 일본 기업 약 400여 개가 진출해 에너지·화학·인프라 사업을 전개하고 있어 이번 사태는 단순한 원유 가격 상승을 넘어 기업 투자와 공급망, 금융정책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합 경제 충격으로 평가된다.

■일본 경제성장 ‘시험대’…하방 리스크 확대
일본 경제는 최근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회복 흐름을 보였다. 지난해 4분기 일본 경제성장률은 연율 기준 1.3%로 상향 수정되며 예상보다 견조한 모습을 나타냈다.

실질임금 상승도 나타나며 소비 회복 기대도 커지고 있다. 올해 1월 일본의 실질임금은 13개월 만에 처음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중동 리스크는 이러한 회복 흐름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다카히데 기우치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상승이 지속될 경우 일본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국제 유가가 1년 동안 배럴당 약 11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 일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약 0.39%포인트(p) 하락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유가가 배럴당 140달러 수준까지 상승하면 일본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는 임계점에 도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산업계 직격탄…에너지·화학·제조업 비용 상승
중동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는 산업계다.

일본 제조업은 구조적으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철강·자동차·반도체·화학 등 주요 산업 대부분이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다. 고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일본 기업들의 생산 비용이 상승하고 수출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중동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의 현지 사업 역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액화천연가스(LNG)와 화학 원료 수출이 차질을 빚고 있으며 일본 기업이 참여한 에너지·화학 프로젝트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 기업조사기관 제국데이터뱅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을 제외한 중동 13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2024년 8월 기준 443개로 집계됐다.

국가별로는 아랍에미리트(UAE) 289개, 이스라엘 95개, 사우디아라비아 78개 등이다.

일본 기업들은 중동 전역에서 에너지와 인프라 사업을 폭넓게 전개하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공급망과 에너지 조달 구조 전반에 파장이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랍에미리트의 푸자이라 F3 화력발전소다. 이 사업은 일본 마루베니와 호쿠리쿠전력이 공동 출자해 추진한 프로젝트로 지난해 10월 가동을 시작했으며 아랍에미리트 최대급 발전 규모를 갖는다.

카타르에서는 일본 이토추상사와 미쓰이물산, LNG재팬 등이 참여한 액화천연가스 생산 설비가 현재 생산을 중단한 상태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당 LNG 프로젝트의 생산 재개 일정은 불확실한 상황이다.

일본 플랜트 엔지니어링 기업 치요다화공건설은 카타르 LNG 플랜트의 설계·조달·건설(EPC)을 맡고 있지만 현재 건설 공사가 일시 중단된 상태다. 이는 일본 기업이 참여한 LNG 공급망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직접 노출돼 있다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화학 산업 분야에서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미쓰비시가스화학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탄올 생산 및 판매를 담당하는 사우디 메탄올 회사에 출자하고 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메탄올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플라스틱 원료 등 화학 제품 생산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시장 영향…엔화·주식·채권 변동성 확대
중동 리스크는 일본 금융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국제 유가 상승은 전기요금과 운송비,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본 소비자물가는 중앙은행 목표치인 2%를 웃도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어 추가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원유 가격 상승은 일본의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무역수지 악화는 엔화 약세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다시 수입 물가 상승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일반적으로 글로벌 주가 하락과 안전자산 선호 확대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일본 주식시장 역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행 ‘금리 인상 vs 경기 둔화’ 딜레마
이러한 상황은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에도 복잡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 일본은행의 정책금리는 약 0.75% 수준이다. 일본은행은 장기간 이어온 초저금리 정책에서 벗어나 점진적인 금리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올해 안에 추가 금리 인상이 단행돼 정책금리가 1%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기관은 일본은행이 올해 두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일본은행 내부에서도 긴축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중동 사태가 일본은행의 정책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여 금리 인상 필요성을 키우는 요인이지만 동시에 경기 둔화를 초래할 수 있어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오는 4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추가 금리 인상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 가능성이 변수로 지적된다.

■일본 정부 대응…비축유 방출에도 구조적 한계
일본 정부는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 비축유 방출, 휘발유 가격 보조금 확대, LNG 확보 외교,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국제에너지기구(IEA)와 협력해 비축유 방출을 추진하며 국내 휘발유 가격 상승을 억제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의 대응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원유의 9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LNG 역시 상당 부분을 중동에서 수입한다. 단기간에 대체 공급선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LNG는 원유와 달리 중동 의존도가 10% 정도로 낮은 편이다. 일본이 조달하는 LNG 가격은 원유 가격과 어느 정도 연동돼 중동 정세 악화가 장기화하면 LNG도 오를 수 있다. LNG 가격이 상승하면 전기요금도 연쇄적으로 뛸 수밖에 없다.

에너지 보조금 확대 역시 정부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일본은 이르면 16일부터 자국 내 소비량의 45일분에 해당하는 비축유를 시장에 방출할 계획이다. 이는 소비량 254일분을 보관 중인 일본 비축유의 18% 수준에 해당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비축유 방출은 시간 벌기용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석유류 가격 변동을 완화하기 위해 조성한 기금을 보조금 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기금 잔액은 약 2800억엔이다. 중동 전쟁이 단기간에 마무리되지 않으면 기금이 한두 달 만에 바닥날 수 있다. 미즈호 리서치&테크놀로지 측은 휘발유 소매가가 리터당 200엔으로 올라 보조금을 30엔씩 지급해야 할 경우 기금 2800억엔은 한 달 남짓 만에 고갈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은 이미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추가 재정 지출에 대한 부담도 크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14일 중의원(하원)에서 야당의 반발에도 2026회계연도(2026년 4월∼2027년 3월) 예산안 통과를 강행했다. 예산안 규모는 122조3000억엔으로 역대 최대다. 전년도 대비 7조1000억엔 늘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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